격몽스쿨

[격몽복습시간] 공야장 10-17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6-11-28 18:33
조회
420
161204 격몽 공지
10. 子曰 吾未見剛者 或對曰 申棖 子曰 棖也 慾 焉得剛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아직 강직한 자를 보지 못하였다.” 누군가가 말했다. “신장이 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장은 욕심이 있으니 어찌 강직하다 하겠는가.”

剛 堅强不屈之意 最人所難能者 故 夫子歎其未見 申棖 弟子姓名 慾 多嗜慾也 多嗜慾 則不得爲剛矣
程子曰 人有慾則無剛 剛則不屈於慾 謝氏曰 剛與慾 正相反 能勝物之謂剛 故 常伸於萬物之上 爲物揜之謂慾 故 常屈於萬物之下 自古 有志者少 無志者多 宜夫子之未見也 棖之慾 不可知 其爲人 得非悻悻自好者乎 故 或者疑以爲剛 然 不知此其所以爲慾耳
강직하다는 것은 굳세고 강하여 굽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이 가장 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그것을 보지 못하였다고 탄식하셨다. 신장은 제자의 이름이다. 욕慾은 좋아하여 욕심을 많이 낸다는 뜻이다. 좋아하여 욕심을 많이 내면 강직할 수 없다.
정자 말씀하셨다. ‘사람이 욕심이 있으면 강직할 수 없고 강직하면 욕심에 굽히지 않는다.’ 사씨가 말했다. ‘강직함과 욕심은 서로 정 반대이다. 외물을 이길 수 있으면 강직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늘 만물 위에서 자신을 펼칠 수 있다. 외물에 가려진다 욕심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늘 만물 아래에 굴복한다. 예로부터 의지가 있는 자는 적고 의지가 없는 자는 많았으니 공자께서 강직한 자를 보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 장의 욕심은 알 수 없지만 그 사람됨이 고집이 세고 자기를 좋아하는 자가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누군가가 그것을 강직함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욕심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을 뿐이다.

11. 子貢曰 我不欲人之加諸我也 吾亦欲無加諸人 子曰 賜也 非爾所及也
자공이 말했다. “저는 남이 나에게 함부로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저 역시 남에게 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야 네가 미칠 바가 아니다.”

子貢言 我所不欲人加於我之事 我亦不欲以此加之於人 此仁者之事 不待勉强 故 夫子以爲非子貢所及
程子曰 我不欲人之加諸我 吾亦欲無加諸人 仁也 施諸己而不願 亦勿施於人 恕也 恕則子貢或能勉之 仁則非所及矣 愚謂 無者 自然而然 勿者 禁止之謂 此所以爲仁恕之別
자공은 내가 남에게 가하기를 원하지 않는 일을 나도 남에게 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는 인한 사람의 일이니 노력에 기댈 수 없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자공이 미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정자 말씀하셨다. ‘내가 남에게 가하기를 원하지 않는 일을 나도 남에게 가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은 인함이다. 나에게 베풀어져서 원하지 않는 것을 역시 남에게 베풀지 않겠다는 것은 恕이다. 恕는 자공이 힘쓸 수 있을지 모르나 인은 미칠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無는 스스러 그러하여 그렇게 되는 것이고 勿은 금지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것이 仁과 恕의 다른 점이다.

12. 子貢曰 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 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의 문장은 들을 수 있었으나 선생님께서 본성과 천도를 말씀하시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다.”

文章 德之見乎外者 威儀文辭皆是也 性者 人所受之天理 天道者 天理自然之本體 其實 一理也 言夫子之文章 日見乎外 固學者所共聞 至於性與天道 則夫子罕言之 而學者有不得聞者 蓋聖門敎不躐等 子貢至是 始得聞之 而歎其美也
程子曰 此 子貢聞夫子之至論而歎美之言也
문장은 덕이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니 위엄과 의로움, 문장과 언행이 이것이다. 본성이라는 것은 인간이 천리로부터 받은 것이다. 천도라는 것은 천리라 스스로 그러한 본체이다. 그 실상은 한 가지 이치이다. 공자의 문장은 날마다 밖으로 드러나 진실로 배우는 자들이 함께 들을 수 있었지만 본성과 천도에 이르면 공자께서 드물게 말씀하셨으니 배우는 자들이 들을 수 없었다. 성인의 문하에서는 등급을 건너뛰지 않으므로 자공은 이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것을 듣고 그 훌륭함에 감탄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정자 말씀하셨다. ‘이는 자공이 공자의 지극한 의론을 듣고 탄미한 말이다.’

13. 子路 有聞 未之能行 唯恐有聞
자로는 가르침을 받고 그것을 행하지 못했다면 다른 가르침을 받을까만을 두려워했다.

前所聞者 旣未及行 故 恐復有所聞而行之不給也
范氏曰 子路聞善 勇於必行 門人自以爲弗及也 故 著之 若子路 可謂能用其勇矣
전에 들은 것을 행하는 데 미치지 못하였으므로 다시 들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행하는 것이 충분히 못함을 두려워한 것이다.
범씨가 말하였다. ‘자로는 좋은 가르침을 받으면 반드시 실행하는 것에 용감하였으니 다른 제자들은 미칠 수 없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기록한 것이다. 자로와 같다면 그 용감함을 능히 썼다고 할만하다.’

14. 子貢問曰 孔文子 何以謂之文也 子曰 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文也
자공이 물었다. “공문자는 어째서 文이라고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영민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였고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文이라 한 것이다.”

孔文子 衛大夫 名圉 凡人性敏者 多不好學 位高者 多恥下問 故 諡法 有以勤學好問爲文者 蓋亦人所難也 孔圉得諡爲文 以此而已
蘇氏曰 孔文子使太叔疾出其妻而妻之 疾通於初妻之娣 文子怒 將攻之 訪於仲尼 仲尼不對 命駕而行 疾奔宋 文子使疾弟遺 室孔姞 其爲人如此 而諡曰文 此子貢之所以疑而問也 孔子不沒其善 言能如此 亦足以爲文矣 非經天緯地之文也
공문자는 위나라 대부이니 이름은 어(圉)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성품이 명민하다면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많고, 높은 지위에 있다면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자가 많다. 그러므로 시호를 내리는 법에 부지런히 배우고 묻기를 좋아하는 것을 文이라고 하였으니 이 역시 사람이 하기 어려운 것이다. 공어는 文이라는 시호를 얻었으니 이 때문이다.
소씨가 말했다. ‘공문자는 태숙 질에게 본부인을 내쫓고 자신의 딸과 결혼하도록 했다. 질은 처음 아내의 여동생과 통정하였는데 문자가 노하여 그를 공격하려 하며 공자를 방문했으나 공자는 대답하지 않고 수레를 명하여 떠났다. 태숙 질은 송나라로 도망갔으니, 공문자는 그의 아우 유(遺)에게 자기 딸 공길을 시집보냈다. 공문자는 사람됨이 이와 같았는데도 文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니 이 때문에 자공이 의문을 느껴 물은 것이다. 공자께서는 그의 선한 점을 펌하하지 않으시고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또한 文이라고 할만 하다고 말씀하셨으나 천지에 획을 긋는 경지의 文은 아니다.

15. 子謂子産 有君子之道四焉 其行己也恭 其事上也敬 其養民也惠 其使民也義
공자께서 자산을 두고 평가하셨다. “군자의 도가 네 가지 그에게 있다. 그의 몸가짐은 공손하였고 그의 윗사람을 섬기는 것은 공경스러웠다. 백성을 기름에 은혜로웠으며 백성을 부림에 마땅했다.”

子産 鄭大夫公孫僑 恭 謙遜也 敬 謹恪也 惠 愛利也 使民義 如都鄙有章 上下有服 田有封洫 廬井有伍之類
吳氏曰 數其事而責之者 其所善者多也 臧文仲不仁者三 不知者三 是也 數其事而稱之者 猶有所未至也 子産有君子之道四焉 是也 今或以一言蓋一人 一事蓋一時 皆非也
자산은 정나라 대부 공손교이다. 恭은 겸손한 것이고 敬은 삼가는 것이다. 惠는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것이고 백성을 부림에 마땅했다는 것은 가령 도시나 시골의 법식에 차이가 있고 높고 낮은 계급에 따른 복장이 있으며 밭과 도랑이 있고, 마을 밭을 다섯 가구가 담당한 것과 같은 것이다.
오씨가 말했다. ‘수를 세면서 그 일을 들어 그를 책망하는 것은 그가 선한 바가 많다는 것이다. 장문중이 인하지 못한 것이 세 가지이고 지혜롭지 못한 것이 세 가지라 한 것이 이것이다. 수를 세면서 칭찬하는 것은 오히려 미진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자산에게 군자의 도가 네 가지 있다는 것은 이것이다. 지금 한 마디로 한 사람을 단정하고 한 가지 일로 한 시대를 단정 짓는 것은 모두 그르다.

16. 子曰 晏平仲 善與人交 久而敬之
공자께서 말슴하셨다. “안평중은 남과 사귀기를 잘한다. 오래되어도 그 사람을 조심하며 대한다.”

晏平仲 齊大夫 名嬰 程子曰 人交久則敬衰 久而能敬 所以爲善
안평중은 제나라 대부이니 이름은 영(嬰)이다. 사람은 사귐이 오래되면 조심스러움이 옅어지니 오래되어도 조심스러울 수 있다면 사귀기를 잘하는 것이다.

17. 子曰 臧文仲 居蔡 山節藻梲 何如其知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장문중은 큰 거북을 보관하면서 기둥머리 두공에는 산을 조각하고 들보 위 동자기둥에는 수초를 그렸다. 어찌 그를 판단력 있다 하겠는가.

臧文仲 魯大夫臧孫氏 名辰 居 猶藏也 蔡 大龜也 節 柱頭斗栱 藻 水草名 梲 梁上短柱也 蓋爲藏龜之室而刻山於節 藻藻於梲也 當時 以文仲爲知 孔子言其不務民義而諂瀆鬼神如此 安得爲知 春秋傳所謂作虛器 卽此事也
張子曰 山節藻梲 爲藏龜之室 祀爰居之義 同歸於不知 宜矣
장문중은 노나라 대부 장손씨이니 이름은 신(辰)이다. 居는 보관한다는 뜻이다. 채(蔡)는 큰 거북이다. 절(節)은 기둥머리의 두공이다. 조(藻)는 수초의 이름이다. 절(梲)은 들보 위 동자기둥이다. 이는 모든 큰 거북을 보관하는 방을 마련하면서 기둥머리 두공에는 산을 조각하고 들보 위 동자기둥에는 수초를 그려넣은 것이다. 당시 문중은 판단력 있다고 여겨졌으니 공자께서 ‘그가 백성에게 마땅한 데 힘쓰지 않고 귀신에게 아첨하고 친압하는 것이 이와 같았으니 어찌 판단력이 있다 하겠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춘추전>에 ‘쓸데없는 기물을 짓는다’고 하였으니 이 일을 가리킨다.

강직함과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고집하는 것을 구별하는 구절이 인상 깊었어요. 그것과 함께 배움을 실천하지 않으면 또 배울까 두려워하던 자로의 이야기도요. 강직함이나 용기는 겉모습을 보며 판단하기 쉬운 덕목 같아요. 딱 봐도 용기 있거나 강직한 사람은 센 기운이 감돈다고 해야할까^^ 그런데 저게 용기인지 아니면 고집인지 구별하기는 어려운 덕목인거 같습니다. 분명 겉으로 보기에는 강하고 용기 있어 보이는데 저 행실의 기준이 자기에게 있는지 아니면 외물에 휘둘리는 것인지는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으니까요.
다음주 간식은 오영쌤.
다음 시간에 만나요~
전체 5

  • 2016-11-28 20:36
    배운 것을 아직 실천하지 못했는데, 또 새로운 것을 배워서 충분히 실천하지 못할까 걱정한다니! 캬~ 자로의 진실된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 2016-11-29 00:14
      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 웃기지

      • 2016-11-29 03:26
        격하게 공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16-11-30 11:18
    敏而好學 不恥下問 몇 번을 써보았습니다.
    이 구절이 머리에 남는 것을 평소 공부를 게을리 한 내 모습 때문이겠지요.
    영민하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으나 나머지는 부끄럽네요.

    • 2016-11-30 19:44
      부끄러움을 느끼셨으니 스스로 달라지실 수 있지 않을까요...! 건창의 모범이 되어 이끌어주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