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Q

절탁Q 3월 15일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7-03-08 20:16
조회
200
 

안녕하세요~ 저번 주에 이어서, 이번시간에는 그동안 베일에 감춰져있던(?) 플라톤의 국가를 조금 더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플라톤의 철학에 들어가기 전에 채운쌤은 ‘우리는 왜 철학을 하는가?’에 대한 얘기를 하셨습니다.

플라톤이 던지고 있는 근본적인 질문은 ‘우리는 어떻게 행복에 이를 수 있을까?’입니다. 이런 질문을 저에게 던진다면, 지금 나의 생활을 제한하는 여러 장애를 넘으면 행복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러면 여기서 ‘생활을 제한하는 장애는 뭘까?’하고 생각을 해보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물질적 풍요로움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좋은 이야기를 들어도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하고, 그런 여유는 일차적으로 물질이 풍요로워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특정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근대 이후에 발명된 것이라고 합니다.

시대를 약간 거슬러 올라가면, 공자님의 시대에서 행복이란 개념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처럼 명확한 의미를 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논어>를 보면, 행복한 삶에 대한 단서로 학(學)이나 붕(朋)이라는 글자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런 단어들을 종합하면, 안(安), 어떤 생활에 처해도 무의식적으로 그 생활을 편안히 여기는 것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현실도피처로서 하나의 유토피아 같은 생활을 행복한 생활이라고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외부의 상황이 어떠하든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 곧 공자님이 생각한 행복한 생활 혹은 편안한 생활인 것입니다. <논어>의 옹야 9장은 ‘안’을 가장 잘 실천하는 안회를 보여줍니다.

안회는 대나무통 하나만큼의 밥과 표주박 하나만큼의 물을 먹으며 누추한 곳에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안회처럼 비루한 생활을 했다면, 그 가난한 생활에 얽매여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안회는 이런 생활에도 불구하고 즐거움을 미루지 않았으니 공자님께서 그 현명함을 칭찬하신 겁니다.

<논어>뿐만 아니라 노자를 봐도, 여러 단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삶에서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까지 끌어내고 있습니다. 채운쌤은 우리보다 앞서서 다른 시대, 다른 환경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 삶이 낯설게 보이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지면 익숙한 방식으로만 살았던 내 삶에 균열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게 공부를 하는 유일한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통해 내 삶을 계속해서 낯설게 보는 것. 채운쌤은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텍스트의 인물들을 평가하는 위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dikaiosyne’는 올바름, 정의 등으로 번역되긴 하지만, 여기에도 동양의 선(善)처럼 단순히 번역된 언어로만 볼 수 없는 어떤 함축적 의미가 담겨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플라톤은 그것을 자기만의 맥락에서 또 다르게 문제시할 텐데, 그렇다면 그것을 보는 우리는 우리들 각자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균열을 낼 수 있을까요? 그리고 플라톤은 폴리스라고 하는 공동체의 삶과 개인의 삶을 분리시키지 않았는데, 이것은 또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등등...! 풀리지 않는 것이 너무나 많군요. 그것들은 이소영 쌤과 배현숙 쌤의 후기를 통해서 좀 더 곱씹어보고, 다음 주에는 5권과 6권을 한번에 읽어 오시면 됩니다. 평소보다 좀 분량이 많긴 하지만 발심만 하신다면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 ㅎㅎ;;

1조에서는 현정쌤과 영님쌤, 2조에서는 미영쌤과 현희쌤, 3조에서는 지연쌤과 길례쌤이 발제를 맡아주셨습니다. 간식은 길례쌤과 소영쌤입니다. 모두 힘내시고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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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08 22:34
    우왕~~ LTE급 후기. 오늘 저는 마음의 관료화라는 말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제 생활을 콕 집어낸 말이라서 깜짝 놀랐습니다. 몸을 바꿀 때도 됐는데, 왜 이렇게 미련을 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