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글쓰기

8.9 주역과 글쓰기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20-08-05 22:27
조회
102
200809 주역과 글쓰기 공지

수(隨)괘는 따르는 괘입니다. 못 아래에 벼락이 내리치는 형상을 그린 이 괘는 움직임이 물밑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지요. 수괘가 나오면 자기를 내세우고 활동하기 보다는 따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뭘 어떻게 따른다는 것일까요? 단사를 보면 "때를 따르는 뜻이 크도다"라고 나옵니다. 수괘의 '따른다'는 것은 결국 때를 따르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반복해서 말하는 '때를 따르는 도리'란 뭘까요?
주를 보면 그건 선(善)을 따르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단순히 '착하게 살아라' 같은 게 아니죠. 선을 따른다는 것은 언제나 자신을 큰 흐름 속에서 보는 시야를 가지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이걸 모르면 우리는 언제나 당장의 자기 앞의 이익에만 주목하게 되지요. 그게 정말 좋은지 물어볼 지혜 없이 말입니다.
채운샘은 강의에서 '어디서부터 하늘이라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늘과 땅을 나누는 사고방식에 익숙하지만, 하늘이라는 공간은 생각할수록 감이 잡히지 않는 곳입니다. 구름이 떠 있는 곳이면 하늘일까요? 잘 때 내 귓가를 엥엥거리며 낮게 나는 모기는 지금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일까요? 이런 질문을 하다보면 하늘과 땅은 붙어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천지의 경계인 인간은 하늘과 땅의 운동을 내재화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 또한 천지에 물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천지의 경계라는 어마어마한 차원을 산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무척 지엽적인 것에 집착하게 되겠지요. 주로 자신이 소유했다고 생각하는 것에 한해 생각을 펼쳐나갈 것입니다. 내가 소유한 것/그렇지 않은 것이라는 뚜렷한 경계를 짓고 말입니다. 하지만 천지의 운동을 내가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변화의 국면에 자신이 어떤 흐름 안에 있는지 먼저 묻게 될 것입니다.
택뢰수의 상을 본 군자는 ‘날이 어두우면 들어가 편안히 쉰다’고 합니다. 여기서 밤은 내가 어쩔 수 없는 영역을 의미합니다. 군자는 자신의 영역이 아닌 것, 즉 이 일을 하고 나서 받게 될 평가나 얻게 될 결과물에 대해서는 편안하게 거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집착이 그냥 내려놓아지지는 않지요.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영역을 알고 편안해하기 위해서는 그 때를 따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택뢰수는 그 때에 따르는 태도를 위치마다, 재질마다 다르게 보여줍니다. 만약 이런 지혜를 익히지 않는다면 우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가령 ‘돈’ 같은 것에 쏠려 밤낮 없이 불안하게 살겠지요. 수괘는 자신에게 좋은 것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산풍(山風)고(蠱)괘는 상황 자체는 정말 ‘개판’입니다. 그릇에 벌레가 우글우글거리는 형국이지요. 그런데 괘사를 보면 의외로 형통합니다. 주에서도 다스려지는 이치가 있다고 하지요. 고괘를 보면 <주역>이 변화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하는 상황에서 <주역>은 문제가 드러났으니 이제 해결할 일만 남았다고 하는 겁니다. 위험한 것은 위기가 보이지 않을 때지요. 아예 썩은 상태가 눈에 훤하다면 깔끔하게 정리할 일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산풍고의 상은 어지러운데 괘사는 꽤 명료합니다. ‘큰 강을 건너면 이롭다’ 입니다. ‘해결하라!’ 라는 말이죠.
그런데 해결을 그냥 하는 건 아닙니다. 괘사를 더 보면, ‘甲에서 먼저 3일을 하고(先甲三日) 甲으로 뒤에 3일을 하라(後甲三日)’고 나옵니다. 일이 망하고 새로 시작할 때의 원칙입니다. 주에서 선갑은 그 일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연구하는 것이라 나옵니다. 어쩌다 이런 꼬라지가 되었는지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고 생각하라는 것이죠. 일이 벌어졌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이 나쁘게 돌아가면 그걸 덮어보겠다고 더 무리를 하게 되지요. 고괘는 그런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일의 시작을 살펴야 합니다. 벌레가 꼬였다고 그 그릇만 냅다 치우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지요. 주변을 살펴 혹시 비슷한 피해를 입은 건 없는지, 벌레가 꼬일만한 환경이 조성된 건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지요. 이 적절함을 모르기 때문에 인간은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에 휩싸여 이상한 욕심을 부립니다.
후갑이란 결단력과 행동입니다. 이미 벌어진 일을 수습하고 이전처럼 살 수는 없지요. 그럼 또 같은 일이 벌어질 테니까요. 고괘는 일을 수습하는 괘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살까 고민하는 괘이기도 합니다. 일의 시작(甲)은 항상 이 전후를 따지는 역동성을 띠고 있다고 알려주는 괘이기도 하지요.
고괘의 특징은 어떤 사고가 났을 때, 누군가를 탓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괘는 자기 앞에 놓인 당면 문제를 너무 지나치지도 소극적이지도 않게 처리하는 中道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자기가 너무 못했다고 부정하거나 누구 탓에 더 잘 할 수 있는데도 못했다고 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것. 우리가 위기 앞에서 늘 놓치고 마는 이 원칙을 되새기게 해줍니다.

 
다음 시간은 臨괘와 觀괘 읽고 써 옵니다.
(은남샘과 저는 둘 다, 정옥샘과 규창과 영주샘은 임괘, 태미샘과 수정샘은 관괘)
후기는 수정샘
간식도 수정샘입니다.
시몽동의 책은 서문을 읽어오시면 됩니다.

 

일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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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06 13:15
    밤이 오면 자면 될 것을, 내일 출근할 생각에 일 분이라도 더 버티어 놀고 지쳐서 자는 제 모습이 떠오르네요. 마음 편히 두 발 뻗고 자기, 근대인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