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NY

절탁 NY 2학기 에세이 발표 후기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0-07-15 22:12
조회
181
2학기 에세이가 끝났습니다~~ 다들 고생이 많으셨어요! 에세이 뒷작업(?)이 남은 분들은 조금만 더 힘내 주시고요^^ 저는 사진과 함께 간략한 후기를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다양한 주제로 에세이를 써 오셨지만 이번 에세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주제는 바로 '준비'였습니다. 설샘과 정아샘이 이 주제로 글을 써 주셨죠. 설샘과 정아샘이 써주신 것처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결국 각종 보험과 재테크로 귀결되는 노후 대책과 미래 계획은 우리의 삶을 좀먹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의미의 '준비'는 모든 불확실성을 부정하고 자신의 노력이 합당한 결과로 돌아오기를, 투자가 더 큰 이익을 가져오기를, 자신의 협소한 의도와 계획안에서 삶이 굴러가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삶을 부정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현실주의자'를 자처하며 '먹고살 만큼'의 재산과 대책을 마련해놓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식으로 우리의 '생존'을 추상화할 때 '먹고 살기'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되죠.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어야 우리는 안심할까요? 이미 세계를, 모든 불확실성을 자신의 계산과 계획안에 욱여넣으려고 하는 순간에 '안정'이란 불가능한 미션이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요? 무언가를 철저히 준비해서 확실하게 해내고자 하는 태도에도 마찬가지로 함정이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전부임을 부정하고 계속해서 더 완전하게 준비가 된 완벽한 상황을 상상하는 것. 잘 살자고 하는 ‘준비’는 아이러니하게도 삶을 불완전한 것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되는대로 살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채운샘이 말씀하신 것처럼 준비하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겨울이 닥쳐올 것을 알고 추위를 대비하기 때문에 한 해를 무사히 살아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준비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입니다. 노후 대책과 미래 계획, 그리고 완벽한 결과에 도달하기 위한 준비. 이때의 준비란 무언가를 ‘겪지 않기 위한’ 준비입니다. 우리는 왜 평생 다 쓰지도 못할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할까요? 그건 돈이 삶에서 우리가 겪어야 할 여러 사건들을 우회하고 모면하게 해주는 수단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돈은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어떤 비전을 갖고 살아갈 것인지, 어떻게 비굴하지 않게 살 수 있을지, 사람들과는 어떻게 관계해야 하는지, 질병과 고통 죽음을 어떻게 대면할 것인지 등등의 여러 문제들을 손쉽게 피해가도록 해줍니다. 우리가 계획과 준비와 돈에 더욱 의존할수록 우리는 삶에 속하는 온갖 문제들과 사건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해하고 겪어내는 데 무능해지게 됩니다.

"용기를 다시 영예로 존중하게 될 더 남성적이고, 더 전사적인 시대가 다가오는 것을 알려주는 모든 징후를 나는 환영한다! (...) 이를 위해서는 용기를 지니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다. (...) 그런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덕성을 지닌 인간이어야 한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활동에 묵묵히 고독하고 결연하게 만족하는 불굴의 인간. 자신들이 극복해야 할 것을 모든 사물에서 찾으려는 내적인 성향을 지닌 인간. 쾌활함, 인내, 소박함을 지니고 있으며, 커다란 허영심을 경멸할 뿐만 아니라, 승리했을 때는 관대할 줄 알고 패배한 자들의 작은 허영심에 관용을 보일 수 있는 인간. 모든 승자들에 대하여, 모든 승리와 명성에서 우연이 차지하는 부분에 대하여 예민하고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는 인간. 자기 방식의 축제일과 근무일과 애도일을 지니고 있고, 명령하는 일에 익숙하고 확고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경우에는 복종할 준비도 되어 있으며, 이런저런 일에 한결같이 긍지를 지니고 자신의 일에 복무하는 인간. 보다 많은 위험에 부딪히고, 보다 생산적이고, 보다 행복한 인간! 왜냐하면 - 내 말을 믿으라! - 실존의 가장 커다란 결실과 향락을 수확하기 위한 비결은 다음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위험하게 살지어다! 그대들의 도시를 베수비오 화산가에 세우라! 그대들의 배를 미지의 바다로 내보내라! 그대와 동류의 인간들, 그리고 그대들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 살라!"(니체, <즐거운 학문>, 책세상, 261~262쪽)

전혀 다른 준비도 있습니다. 니체는 <즐거운 학문>에서 용기를 가지고 다가올 시대를 준비하는 자들에 대해 말합니다. 그런데 이때 준비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너무나 다른 이미지입니다. 니체에게 있어서 준비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곧 위험하게 산다는 것을 뜻합니다. 삶이 주는 모든 것을 충실히 겪어내기 위한 준비. 니체에게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은 우리의 관념에 부합하는 상태에 도달하려는 부질없고 탐욕스러운 노력이 아니라, 무엇이 오더라도 그것을 긍정하고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삶을 회피하고 부정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도처에서 자기 자신이 극복해야 할 것을 찾고 자신과 동류의 인간들,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투쟁 속에서 살아가며, 스스로 명령하고 능동적으로 복종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체의 해석학>에서 푸코가 보여주는 그리스-헬레니즘-로마 철학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들은 철학을 ‘paraskeue’라고 정의하는데, 이는 ‘준비(preparation)’를 뜻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마치 스포츠선수가 당장 시합에 필요한 근육을 키우고 거기에 맞는 신체 상태를 유지하고 또 경기에 필요한 기술들을 연마하는 것처럼,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삶의 문제들을 어디에도 예속됨 없이 겪어내기 위해 진실한 담론들을 몸에 새기고 수중에 두는 일을 뜻합니다. 결국 준비의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회피를 위한 준비인가 긍정을 위한 준비인가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공부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왜 머리 아프게 어려운 책을 읽고, 불편하게 자기 자신에 직면하고 또 스스로를 극복하려고 하는 걸까요? 왜 굳이 이렇게까지? 결국 대답은 하나인 것 같습니다. 구질구질하지 않게 살기 위해서. 삶이 주는 그 어떤 것도 기다렸다는 듯이 맞이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기르기 위해서. 그런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공부를 한다는 게 아무런 의미도 없겠다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된 에세이 발표 시간이었습니다.

지루한 후기는 이쯤 하고, 사진들을 보시죠~


'준비'라는 주제를 야무지게 풀어내주신 정아샘의 글은 (여기)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다정한 NY(내영, 나영)커플의 모습도 보이구요,



저는 졸음에 점점 침몰해가고 있네요... (다음 에세이 발표는 꼭 최상의 컨디션으로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ㅠㅠ)



'멀쩡한 사진만 올려달라'고 하셨던 내영샘... 죄송합니다. 멀쩡한 사진이 없더라구요(솔직하고 정의롭게!).



오늘(수요일) 스피노자 에세이 발표까지 에세이 코멘트 대장정을 마치신 채운샘의 모습도 보입니다.

제 후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방학 잘 즐기시고 7월 25일에 건강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첫 주 과제는 따로 카톡방에 공지할게요)
전체 3

  • 2020-07-16 14:22
    회피를 위한 준비인가 긍정을 위한 준비인가! 베수비오 화산가에 집을 지으라는 니체 표의 '준비하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아우라가 우리의 리스크 관리자이자 보험 의존자로서의 준비하는 인간을 주눅들게 하네요. "구질구질하지 않게 살기 위해서. 삶이 주는 그 어떤 것도 기다렸다는 듯이 맞이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기르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을 준비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 2020-07-16 19:10
    솔직하고 정의롭게ㅋㅋ 이거 너무 아무때나 막 쓰십니다요. 에세이 10장 이렇게 길지 않고 5장 정도로 쓰니깐 집중도 잘되고 여러 번 읽으면서 곱씹게 되더라고요. 무척 알찬 시간이었습니다! 고은샘과 희진샘 에세이도 기대하고 갈게요.

  • 2020-07-20 09:32
    헐;;; 저는 생각보다 잘 나왔다고 생각하고 다 저장했습니다만.... ㅠ ㅠ 그렇군요... 안멀쩡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