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NY

절탁 NY 2학기 에세이 발표 후기

작성자
정아
작성일
2020-07-17 18:40
조회
133
드디어 모든 반의 에세이 발표가 끝나고 한 학기가 마무리되었네요. 샘들 모두 잘 쉬고 계시지요? 건화샘이 이미 사진과 함께 에세이 후기를 올려주셨지만, 저도 이번 에세이 발표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을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저는 이번 에세이 코멘트 중에서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에 관한 내용이 가장 마음에 남습니다. 물론 공부를 시작한 이후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채운샘은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가 ‘삶이 내게 주는 모든 것을 받기 위해서’라고 정리해주셨죠.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사건 앞에서 의연하기 위해 공부하는 거라고요.

우리는 삶이 주는 좋은 것만 받으려 하고 나쁜 것은 받지 않으려 합니다. 칭찬만 받으려 하고 비난은 받지 않으려 하지요. 자기에게 닥친 일을 감당하지 않으려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탐욕이고 집착이고 무지라고 샘은 말씀하셨어요. 왜냐하면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일에는 내가 ‘인’이자 ‘과’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게 벌어지는 일 중에 나와 무관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남는 것은 ‘내가 그것을 어떻게 맞이하느냐’의 문제뿐입니다.

어떤 일이 어떻게 닥칠지 모르지만 그것들을 평온하게 맞이할 수 있는 ‘준비,’ 그게 바로 공부이고 수행입니다. 삶을 필연성으로부터 사유할 수 없다면 그런 평온함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이 바로 삶을 긍정하는 것이고, 우리가 매 학기 에세이 쓰기를 통해 실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삶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 삶을 부정하고 있었는지 들여다봐야 합니다. 내 행위가 어떻게 나를, 삶을 부정하는 방식일 수밖에 없는지 논증을 통해 이해해보려 하는 겁니다. 그걸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면 그렇게 살지 않게 됩니다. 이해하려는 노력을 거듭하다보면 이해한 만큼 마음의 구조가 바뀌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세상을 느끼는 방식과 일치하는 순간이 옵니다.

그런 점에서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에세이는 중요합니다. 계절로 치면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겨울과도 같습니다. 겨울에는 다음해에 싹틔울 씨앗이 옹골차게 맺혀야 합니다. 그래야 봄이 되면 힘차게 땅을 뚫고 솟아오를 수 있지요. 한 학기를 매듭짓는 에세이에서 새로운 질문 하나를 심고 끝나면 다음 학기에 그 씨앗이 발아하게 됩니다. 한 학기 동안 배우고 생각하고 써낸 것들 중에서 다 쳐내고 본질만 남겨야 하는 작업이므로 물론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하는 공부는 인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서 지금의 눈에는 별다른 성과가 보이지 않습니다. 샘은 죽을 때의 마음이 성과라면 성과일 수 있다고 하셨고, 그건 누구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죽음에 관한 이야기도 마음에 많이 남습니다. 에세이와 겨울이 끝이 아니고 하나의 매듭이듯이, 죽음도 다음 생에 어떤 기운을 가지고 태어날지를 결정하는 하나의 매듭입니다. 따라서 죽음의 순간에 갖는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순간을 여일하게 살다가 죽음의 순간도 그렇게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발버둥 치며 살다가 발버둥 치며 맞이할 것인가. 샘은 ‘어떻게 더 살고 싶은가’를 생각해보라고 하셨어요. ‘어떤 삶이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은 삶인가.’ 그리고 결정했다면 그냥 그렇게 살면 됩니다. 어떤 방식의 삶을 선택했건 그건 비난받을 일이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선택에 대해 핑계를 대거나 자신을 기만하는 삶은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걸 손에 넣으려 해서도 안 될 뿐 아니라, 그건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선택하지 않은 것은 놓아버려야 합니다.

장장 12시간 가까이 진행된 에세이 발표가 끝났을 때, 저는 힘들고 긴 하루였지만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샘이 언젠가 수업 시간에 하신 말씀처럼, 우리가 이런 장에서 이런 공부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이렇게 벌써 두 학기를 마치고 세 번째 학기를 맞이하게 되었네요. 3학기에는 우리 니체님(을 대신해서 채운샘)이 우리에게 또 어떤 과제를 안겨주실지 기대가 됩니다. 그게 무엇이든 기다렸다는 듯이 맞이하는 연습을 함께 해보아요, 샘들!^^
전체 2

  • 2020-07-18 17:51
    꽉 응축해서 씨앗을 심기... 어떻게 매듭짓느냐가 다음에 터뜨리고 나오는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 그렇게 매번의 매듭이 조여질 때, 무엇이든 기다렸다는 듯이 맞이하는 힘도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다음학기에는 저도 발버둥을 조금 그치고 더 여일하게 공부하는 걸 목표로 하겠습니다. 화이팅!!

  • 2020-07-18 17:57
    삶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유로운 의지와 부자유한 의지가 아니라 강한 의지와 약한 의지라고 했던 니체의 말이 떠오르네요. 우리는 이미 우리가 겪는 모든 것들 안에 원인이자 결과로서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의지는 자유로운 동시에 부자유하기도 하다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오직 우리 자신과 무관하지 않은 모든 일들을 어떻게 겪어낼 것이냐 하는 문제 뿐이라는 것! 공부와 글쓰기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후기 감사히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