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절차탁마S 6월 10일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0-06-06 20:23
조회
102
정치란 어떤 활동일까요? 공부하면서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정치적인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됐지만, 의사를 대변할 누군가를 뽑거나 제도를 수정·보완하는 영역의 활동과 나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불만들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간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시간에 마트롱이 정리한 스피노자의 자연 상태·사회 상태를 따라가면서, 나름대로 정치적 활동이 무엇일지 조금 잡힌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치적 활동이란 이성을 개발하는 활동입니다. 즉, 정치 영역이나 정치 활동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지평, 문제의식을 정치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부터 어렴풋하게 ‘정치란 서로가 잘 살기 위한 실천’이라 생각해온 것이 이제야 구체화된 느낌입니다.

사실 채운쌤께서 전부터 이 말씀을 하셨죠. 하하;; 그래도 이 말이 이해되지 않았던 것은, 여전히 이성은 정신 중에서도 우월한 능력이라고 그리고 자연 상태에서 사회 상태로의 이행을 ‘단절’로 이해한 탓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수쌤이 과제에 쓰셨듯이, 이성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활동이 아닙니다. 저희가 대화와 토론을 통해 다른 사람과의 차이와 공통점을 알아가면서 함께 기쁨을 누리는 어울림이 이성을 작동시키는 활동입니다. 사회라는 것은 혼자 있을 때보다 더 이성적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외부환경입니다. 따라서 개인이 이성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노력은 그 자체로 다른 사람과 연대를 이루고자 하는 노력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스피노자의 자연 상태, 사회 상태가 홉스의 그것들과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습니다. 홉스는 개인의 보다 유리한 생존을 위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서의 자연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로 이행하는 계약이 필요하다고 했었죠. 그러나 이러한 구도 속에서는 개인과 사회의 대립구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반면에 마트롱은 스피노자의 자연 상태를 해석하면서, 자연 상태에서조차 이미 인간은 다른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통찰합니다. 다만 이때 인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체로 정념에 예속되어 살아갑니다. 마트롱은 이러한 자연 상태를 ‘동요하는 상호의존’으로 정의합니다. 정치란 동요에 갇혀 살아가는 정념의 예속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실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치적 실천에 의해 ‘동요하는 상호의존’으로부터 ‘견고해진 상호의존’으로 이행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스피노자에게 자연 상태와 사회 상태는 분명하게 단절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유한양태로서의 한계에 의해 언제든 다른 사람과 동요하는 상호의존의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있지만, 동시에 그러한 동요를 극복하려고 본능적으로 노력합니다. 그런 점에서 마트롱이 “정치사회는 이성의 작품이 아닌 정념의 작품”이라고 말한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456) 정치사회는 정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 자신의 유한한 조건 속에서 더 잘 살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은 ‘정념을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는 초월적 의식으로서의 이성’이 아닌 우리를 예속하는 것과 같은 “정념들의 놀이”(450)로부터 따라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정치에서의 목표를 생각할 때도 고려해야 할 것은 정념과 이성의 상호보완입니다.

그렇다면 정치적 실천이라는 것은 정의로운 이념의 실천이 아니라 우리가 타인과 관계하는 데 장애가 되는 정념으로부터의 해방일 것입니다. 과거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로서의 올바른 정체성을 갖게 되면, ‘의식화’가 일어나면 사람들은 서로를 도우며 잘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스피노자적으로 접근해보면, 정념의 해방이 먼저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은 부차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각 개인의 정치적 실천이라는 것도 그 자신을 예속하는 정념들과의 투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왜 고대 중국의 통치론은 통치자의 자기 수양으로부터 시작하는지 연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자는 자기의 통치를 이렇게 표현한 적 있습니다. “송사를 담당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 같지만 반드시 송사가 없도록 하겠다(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 《논어》 〈안연〉 13장).” 송사는 이미 사람들 사이의 연대가 끊어진 뒤에 처리하는 일입니다. 여기서는 아무리 지혜롭게 처리해도 이미 끊어진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는 평소에도 사람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회를 목표로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는 완벽한 시스템의 확립으로도 부족합니다. 통치자가 그들이 어떤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지를 구체적으로 듣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통치자가 잘 듣기 위해 자신을 비워내는 수양을 거듭하는 만큼 백성들도 서로에게 보다 견고하게 의존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얼마나 주위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지, 스스로 정념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실천하고 있는지 고민하는 만큼 정치적 실천도 보다 구체적으로 사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마트롱 3부 9장 〈분리:소외된 저이사회와 분열된 개체성〉, 한비자 2권 〈외저설 우하〉까지 읽어 오시면 됩니다. 과제는 이번에 하신 것처럼 문제화할 수 있는 지점들을 정리해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현정쌤과 제가 준비할게요. 그럼 다음 시간에 봬요~!

 



이번에는 선생님들 2차 세미나 가시는 장면을 포착했습니다. 공부 잘하고, 잘 노는 우등생이란 이런 걸까요? 저도 언젠가 뒤따라 가야 할 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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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07 13:41
    저는 인간이 동요하던지 견고해지던지 '상호의존'에 의해서만 실존할 수 있다는 것을 자주 잊습니다. 나 혼자서 잘 살 수 있는 윤리는 없다는 것을 말이죠.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려고 지속해서 공부를 함께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규창샘 언제라도 시간되시고 힘되시면^^ 2차에 합석하세요.~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