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절차탁마S 6월 24일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0-06-19 15:53
조회
85
어느새 에세이가 훌쩍 다가왔습니다. 발표는 한 달 후인 7월 15일입니다. 7월 1일이 9주차인데, 한 주 쓰는 기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주제는 정념과 정치입니다. 정념을 이해함으로써 다른 정치론을 사유할 수 있었던 선생님들만의 독특한 고민을 풀어 오시면 됩니다. 이번에도 선생님들이 정치에 관해서 어떤 고민들을 풀어주실지 기대가 됩니다.ㅎㅎ 다음 시간에는 마트롱 4부, 《한비자》 나머지 다 읽어 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경숙쌤께 부탁드릴게요~

 

고백하자면, 사실 이번 프로그램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정치론을 공부하는 게 마땅치 않았습니다. 《에티카》만 다시 읽어도 어려운데 관심도 없는 정치를 같이 공부하면 갈피를 못 잡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이제야 알겠습니다. 정치론이 빠진 스피노자의 철학은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거라는 사실을..! 정치와 철학의 문제는 함께 사유해야 합니다. 개인이 이성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는 것은 철학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성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자가 필요하고, 타자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고민은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이걸 알지 못했던 저로서는 《에티카》를 정치와 무관한 철학 텍스트로만 읽었고, 이성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는 것은 순전히 개인에게 달린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이성을 발휘하는 것이 개인의 의지에 달린 일이라면 굳이 정치에 대해 얘기할 필요가 있나?’라고도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정치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한 철학 역시 추상적으로 접근하게 됩니다. 채운쌤은 ‘마음이 다스려지도록 돕는 것이 이성’이라고 하셨죠. 스피노자에 따르면, 우리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정념에 예속되지만, 동시에 타자와의 관계에서만 정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타자와의 관계는 우리가 자유로워지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평생 동안 겪어나가야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갈등을 역량이 증대되는 방향으로 겪을 수 있을까?’입니다. 이것은 단지 ‘더 열심히 이성에 따라 살아가겠다’는 개인의 결의로는 부족합니다. 개인이 이성에 따라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도 이성에 따라 살아가게 만들어야 합니다. 기본소득 같은 복지를 고민하는 것도 그들이 이성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서죠. 스피노자의 철학은 이미 정치론을 그 안에 품고 있다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스피노자의 철학/정치의 문제를 하나로 요약하면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차차 더 공부해야겠지만)우리에게 마음이 개입하지 않는 문제는 없습니다. 이념, 정의 등 모든 것의 가장 아래에는 마음이 자리하고, 제도를 둘러싼 논쟁 등 타자와의 관계에서도 부딪치는 것은 결국 마음입니다. 우리는 항상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동시에 누군가의 마음과 부딪히면서 살아가는 것이죠. 그런데 마트롱 스피노자의 정치론을 분석하면서 보여줬듯이, ‘이상적인 민주정’은 끊임없는 토론이 일어나는 시끄러운 사회입니다. 지도자들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이상적인 신정’과 대조되죠. 그러나 정치적 역량이란 갈등 없음의 지속이 아니라 갈등을 통해 집단적 균형을 구성하는 데서 발휘됩니다. 이상적인 민주정의 구성원들은 토론을 통해서 모두가 ‘납득 가능한 결론’에 이르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오류를 교정하면서 보다 이성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반면에 이상적인 신정의 구성원들은 이성을 개발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들의 정서적 일치는 대단한 것 같아도 수동적인 일치이고, 이상적인 민주정에서의 정서적 일치는 시끄럽지만 능동적인 일치인 것이죠.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시국이 시끄러울수록 평화로운 캐나다로 이민가려고 하지만, 과연 캐나다 사회의 정치적 역량이 높다고 할 수 있을까요? 캐나다 뉴스 1면에는 고래, 총리의 패션 등에 관한 매우 일상적인 토픽을 다룬다고 합니다. 반면에 한국 뉴스 1면에는 ‘이게 정치냐’라는 (여러 의미에서) 문제적인 토픽을 다루죠. 우리는 그럴 때마다 혀를 차면서 캐나다의 평온한 사회를 꿈꾸지만, 어쩌면 그들의 평온함이란 스스로 정치적으로 문제제기하지 못하는 무기력의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에 한국 사회의 시끄러움은 그 자체로 우리가 이성을 발달시킬 좋은 조건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토론에서도 태극기 부대가 있음으로 인해 여러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는 얘기가 나왔었는데요. 확실히 한국 사회는 이념뿐만 아니라 역사, 이해관계 등 여러 요소들 때문에 정서적 일치가 이뤄지기 쉽지 않은 사회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 형성된 심리적 조건은 동적 균형을 이루기에 적합한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한국 사회를 ‘헬조선’이라고 깔봤었는데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으로 위안부, 광주, 제주도 등 어떤 문제도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르게 보면, 한국 사회만큼 정치적으로 의견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회가 몇이나 있을까요? ‘헬조선’이라고 깔본 스스로를 반성하면서, 이번 에세이는 이러한 한국 사회에서 ‘마음의 통일’이란 무엇일 수 있을지를 고민해봐야겠습니다.



반가운 얼굴이 보이지 않나요? 저~~~ 멀리서 오랜만에 돌아오신 선영쌤입니다. 얼굴이 많이 좋아지신 것 같은데, 쉬셨으니 다시 공부에 매진하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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