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절탁 S] 1월 30일 공지 <에티카> 1부 정리 9-15

작성자
선민
작성일
2019-01-24 12:31
조회
190
실체란 무엇인가?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신을 설명하기 위한 정의와 함께 시작됩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신은 실체이자 자연입니다.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정의 1. “나는 그 본질이 실존을 함축하는 것, 곧 그 본성이 실존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것을 자기원인으로 이해한다.”

정의 3. “나는 자신 안에 있고 자신에 의해 인식되는 것, 곧 그 개념을 형성하기 위해 다른 실재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실체로 이해한다.”

정의 6. “나는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자, 곧 각자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표현하는, 무한하게 많은 속성들로 구성된 실체를 신으로 이해한다.”

신이나 자연이라는 말은 일상적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떠올릴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자 또는 심판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신’이 저 변화무쌍하고 자유의지라고는 없어 보이는 ‘자연’과 어째서 같은 것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스피노자의 『에티카』(윤리학)가 어째서 ‘신’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는 것인지? 헤겔은 왜 스피노자의 신 개념에 만족할 수 없었는지는 차차 더 공부하기로 하고요. 우선 ‘신=자연’을 이해해 보아야겠습니다.

스피노자의 ‘신, 즉 자연’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실체’ 개념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럼 실체는 무엇일까요? 정의 1과 정의 3을 따르면, ‘자신 안에 있고 자신에 의해 인식되는 것’ 다시 말해 자기원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곧 실체입니다. 자기원인으로서만 존재함은 그 실존을 설명하기 위한 어떤 외부적 요인도 없음을 뜻합니다. 아이가 있으려면 부모가 먼저 있어야 하겠지요. 꽃이 피려면 씨앗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자기 원인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부모나 씨앗과 같은 외부 요인이 없어도 됩니다. 자기원인이란 ‘결과이자 곧 원인’임을 뜻합니다. 원인이 결과를 낳는다기보다는 결과를 통해 원인이 현현하게 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과거가 있기에 현재의 기억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관점에서 지나간 일을 떠올림으로써 그것이 특정한 형태의 과거로 출현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세계에서 죽음은 無가 되지 않습니다. 죽음은 사라짐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 다만 현현하지 않을 뿐인 상태입니다.

우리는 현상을 인식할 때 인과율을 따집니다. 다음과 같은 식이지요.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다. 그럼, 그 원인의 원인은 또 무엇인가?’ 이런 식으로 원인을 계속 소급해가다 보면, 결국 모든 것을 가능케 한 제1원인을 상정하게 됩니다. 많은 철학자와 신학자들이 인간의 오성으로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논리적 설정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이 제1원인으로 신으로 꼽기도 했지요.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원인이 결과를 낳는다고 하는 인과율적 사고 방식은, 결국 초월론적 지평을 도입하게 됩니다.

스피노자는 ‘자기원인’을 통해 이와 같은 제1원인을 제거합니다. 때문에 스피노자의 실체 개념에는 초월성이 부재하게 됩니다. 정의 1에는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자기원인이란 정의상 ‘그 본질이 실존을 함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원인으로 존재하는 것’이란 어떤 초월적 원인도 없는, 시간의 선후에 구애받지 않는, 있음 그 자체가 됩니다. 있음 그 자체는 하나의 결과입니다. 존재론적으로 선행하는 원인이 없다면, 이 현상적 세계라고 하는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을까요? 이것은 무수한 인연 조건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스피노자는 개체적 사유를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의 숨쉬기를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나라고 하는 개체가 숨을 쉬고 살아가려면 공기를 마셔야 하지요. 그럼 공기는 나인가요, 내가 아닌가요? 정확히 구분할 수 없겠지요. 이렇게 생각하면 나란, 공기, 미세먼지, 박테리아, 또는 여러 가지 관념들을 비롯해서 정말 내가 헤아릴 수도 없을만큼 절대적으로 무한한 인과의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눈앞에 개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과 사물, 자연의 온갖 현상들도 무한한 인연 조건 속에서 출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원인으로 존재하는 실체란 이와 같은, 무한하고 영원한 있음 자체입니다. 이것을 ‘운동과 정지의 끊임없는 생성 자체’라고 설명할 수도 있겠지요.

헤겔이 스피노자를 읽으면서 자기 논리의 한계와 가능성을 찾았던 것처럼, 스피노자를 읽을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자기 문제의식일 것 같습니다. 자, 열심히 읽어보아요!

다음주 읽을 부분 : 『에티카』1부 정리 9~15 / 『헤겔 또는 스피노자』2부 60~91쪽

다음주 공통 과제 : <실체는 왜 하나인가? (‘실체개념 정리)>(A4 한 장 분량 / 화요일 저녁 6시까지 숙제 방에 올림)

다음주 발제/ 간식/ 후기 : 봉선샘, 선민

*참, 절탁 S 스피노자 팀은 나머지 공부 시간도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12시. 쌈박하게 각자 숙제를 해 와서, 토론도 하고 예복습을 합니다.

참가자 : 오경숙 선생님, 박선영 선생님, 최규성 선생님, 혜림, 혜원,정옥,영님,규창, 선민 (복사물이 있을 경우 출력은 9부)

 
전체 3

  • 2019-01-24 20:57
    실체라고 하면 뭔가 고정되어 있는 것 같은데.. 스피노자가 말하는 '자기 원인으로서 존재하는 실체'는 끊임없이 생동하며 무한한 인과의 결과와 연결되는 개념이었네요. 실체란 개념을 파헤치다보면 제가 지닌 어떤 논리의 한계와 만나게 될지 궁금합니다~ 2주의 공백이 걱정이 되지만... 다음 주에 수업시간이 기대가 됩니다!

    • 2019-01-25 03:48
      어여와, 어여와~ 스피노자 선생님이 아주 우리를 휘두르셔! 마구 멋지셔!

  • 2019-01-26 11:15
    후기만 읽어도 제 한계가 보이는 듯 합니다. @_@ 스피노자의 자기원인은 주체로의 회귀보다 무수히 많은 것들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드는 개념인 것 같아요.
    벌써부터 스피노자의 난해함이 닥쳐오는 군요. 허허;; 이 난해함을 즐기며 갈 수 있도록 잘 부탁드립니다. _(합장)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