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2월 13일 공지 <에티카> 1부 정리 16-27

작성자
혜림
작성일
2019-02-01 12:46
조회
176
인식과 방법

저는 에티카 1부 초반부의 논증 과정이 스피노자가 초월성을 부정하기 위해 ‘신과 실체는 하나’라는 전제를 관철시키기 위한 증명과정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스피노자의 기하학적 논증 방법을 오해한 것입니다. 스피노자는 처음부터 실체를 신과 동일한 것으로 보지도 않았고, 초월성을 부정하기 위한 정향적 목적을 갖지도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신과 실체는 하나라고 상정한 게  아니라 기존에 사용되고 있던 개념인 실체의 모순을 의문시하며 사유를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식의 길이 확장되면서 신이란 개념을 전복시킨 것입니다. 그 당시 실체라는 개념은 자기원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데 이는 자기가 원인이면서도 결과인 모순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스피노자는 이와 같이 기존의 개념이 지닌 모순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모순이 있다면 온전히 이해했다고 보기 어려우니까요. 이런 문제의식으로 시작한 사유 과정이 전체적으로 기하학적 방법이 된 것입니다.

 기하학적이라고 하면 질서정연한 방법이라고 단편적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 방법대로 쓰여진 에티카는 정의와 증명들을 차례로 이해해야 마지막 결론에 도달가능한 방법으로 쓰여진 책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스피노자에게 질서는 단계가 아니라 ‘사고의 실제 운동’이었습니다. 채운 샘께서는 ‘즉흥적으로 생산되는 질서’라고 설명해주셨는데요, 이미 규정된 체계를 지키는 질서가 아니라 인식 활동 과정에서 생성되는 질서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고의 운동성 속에서 만들어지는 비정합적 순서. 그러니까 정의1을 '이해해야만' 정의10을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닌 겁니다.

저는 여행을 다녀와서 3주차 강의를 준비하면서 2주간의 공백을 메워야만 3주차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처럼 며칠을 끙끙댔습니다. 그런데  ‘좋은 시작도 도달해야 하는 진리도 없다’는 마슈레의 글을 보며 한 방 맞은 기분이 들었지요. 실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인식과정에서 정확한 답에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 좋은 방법으로 올바른 인식에 도달하겠다는 제 기존의 생각 자체가 허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올바른 방법으로써 기하학적 방법/도구를 들고 기존의 개념들을 인식한 게 아니라 모순된 개념을 모순없이 이해하기 위한 인식과정을 통해 생산된 것이 스피노자의 기하학적 방법이었던 겁니다. 그의 사유 실천처럼 실체와 신의 정의 자체가 아니라 이 개념을 이해하는 인식의 과정 중에서 자신의 지성을 교정해 나가는 게 중요하겠지요.

실체와 신

지성을 교정하기 위해선 스피노자가 말한 개념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 개념을 통해 자기 관념을 들여다보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스피노자를 공부한다는 것은 그의 개념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 사유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 같습니다. 3주차 공통과제였던 실체가 하나라는 것을 통해 ‘우리는 왜 외부에서 원인을 찾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원인을 외부에 두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것 일까요?  외부의 원인으로 존재가 규정된다면 현행하고 실존하는 조건을 부정함으로써만 존재를 긍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실체는  자기원인을 지닌, 외부에 원인을 두지 않고 실존하는 끊임없이 생성되는 장으로써 긍정을 통해 존재를 긍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체가 하나라는 정의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스피노자는 실체의 개념을 통해 신의 개념을 도출함으로써 존재하는 지평에서 삶과 윤리를 이야기합니다.  그는 우리 존재에 대한 능동적 이해로부터 삶을 구성하고자 했습니다. 현행적 차원의 신을 이야기하는 스피노자에게 무신론이냐 유신론이냐라는 논의는 무의미합니다. 그는 신을 믿고 부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존의 신에 대한 개념을 전복시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이 인격신이냐 자연신이냐는 논의가 아니라 스피노자가 신을 무엇이라고 이해하는가를 문제삼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신을 믿든 믿지 않든 신을 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믿음은 신을 관념으로 만들어낸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듭니다. 다시 말해, 완벽한 신이라는 척도, 완전함의 기준이 설정이 되면 존재와 존재의 지평 모두를  부정하게 됩니다. 스피노자는 존재의 지평 외부에 홀로 존재하는 완전한 신이란 개념을 존재의 지평은 단 하나라는 실체의 차원에서 설명합니다. 실체 차원에서 완전하다는 것은 실존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생성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스피노자에게 신이란  그 자체로 절대 완전성을 갖춰서 완전한게 아니라 실존을 멈추지 않기 때문에 완전한 것입니다. 이렇게 실존의  차원에서 붙잡을 수 없는 곳에 있었던 신이 지상으로 내려왔습니다. 지상으로 내려온 신은  우리가 인식할 수 있지만 규정적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우리가 인식불가능한 영역에 설정한 신을 인간의 형상으로 상상했다는 것입니다.

신 개념에 대한 언급은 다음 시간에도 계속 됩니다! 신이 나오기 시작하는 '정리 11번' 을 중심으로  실체로부터 도출된 신의 개념을 이해하면서 에티카를 읽으라는 채운샘의 당부 말씀이 있었습니다^^

설연휴 잘 보내시고 2주 뒤에 뵙겠습니다~


4주차 공지


-다음주 읽을 부분 : 『에티카』1부 정리 16-27 + 1부 부록 / 『헤겔 또는 스피노자』2부 92~126쪽 (추가 도서:스피노자 서간집』 분량은 댓글 공지)


-다음주 공통 과제 : 에티카 1부 부록을 읽고 각자 이해한 것을  정리해주세요. (A4 한 장 분량/ 화요일 저녁 6시까지 숙제 방에 올려주세요.)


-다음주 발제/ 간식/ 후기 : 혜림, 규창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12시 예복습시간이 있습니다.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숙제를 해오시면 됩니다.

전체 1

  • 2019-02-04 14:35
    채운임다. 연휴를 이용해 쉬면서 공부하고 계시겠지요?ㅋㅋ 스피노자의 편지는 나중에 읽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고로, 다음 시간에는 <서간집>을 제외하고, 공지에 있는 글들만 읽어 오시면(여러 번) 되겠습니다. 연휴 잘 보내시고, 다음주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