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2.20 절차탁마 S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9-02-16 14:17
조회
188
우리는 원인과 결과를 생각할 때, 흔히 원인에는 결과보다 더 많은 것이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를 원인으로 상정하고, 원인에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이렇게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라는 말은 상상에 불과하고 지금 일어난 결과에 대한 부정이기도 합니다. 결과를 놓고 원인을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마주하는 일을 필연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결과에서 원인으로 소급해 들어갔는데, 그런 식으로 결과보다 더 큰 원인을 상정하게 되면 요청되는 것은 초월적 신일 수밖에 없습니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와 반대 방향으로 사유를 전개합니다. 원인에서 결과로 가는 기하학적 방법을 채택했지요. 그 결과 모든 것을 쳐내고 오롯이 있는 주체가 아닌, 특정한 관념의 결합체인 '나'를 도출하게 됩니다. 원인인 '생각하는 나'가 아니라 일어나는 모든 것의 결합인, 결과로서의 '나'를 알게 되는 것이죠.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를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증해주는 초월적 존재로서 신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헌데 그렇게 되면 나 자신의 확실성과 신의 보증을 받은 정상성만 남고 나머지는 추방하거나 정상으로 되돌려야 하는 비정상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는 경직된 상황이 일어나게 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고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신의 뜻에 따라' 혹은 보편적 법칙을 담보하는 '국가를 따라서'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게 되지요. 하지만 스피노자의 세계에서는 애초에 초월적인 존재를 요청할 수 없습니다.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은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던 원인'의 결과가 아니니까요. 지금의 있음 그 자체가 원인이자 결과이니, 따로 이렇게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더 정상적인 것으로 돌아갈 필요도, 그런 것을 상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스피노자의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각자가 자신의 기쁨을 발명해야 한다고 대답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보편적인 정상성을 소환할 필요가 없다고 해서, '나의 행복과 너의 행복은 다르다'라는 상대주의로 바로 환원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상대주의는 자신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의문에 부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절대주의와 다르지 않습니다. 스피노자는 인간이란 자신 아닌 것으로 이루어진 제약된 존재이므로, 자신이 얽매이는 것을 알게 되면 그때부터 각자가 구성하는 사유가 시작되는 기획을 합니다. 그리고 이때 우리는 관계를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이가 보편적으로 따라야 할 정상성이 없는 와중에 나의 기쁨을 발명하며 다른 이와 함께 산다면 문제는 각자의 기쁨을 어떻게 함께 향유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남을 테니까요.

마슈레는 "적합성이란 관념의 기능은 우선 비판적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관념에 대해서, 그것이 지시한다고 전제하는 대상을 떠올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적합성이라는 말을 이러한 우리의 당연한 사고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 씁니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어떤 개념이 뭔가를 지시한다는 생각 자체가 상상적 인식이라는 것이죠. 왜냐하면 사유는 사유의 질서, 연장은 연장의 질서를 따르며 서로는 간섭할 수 없기 떄문입니다. 불교에 "一水四見"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천계에서는 보석으로 물고기는 집으로 인간은 물로 아귀는 피고름이라고 볼 때, 물은 과연 물이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죠. 몯느 존재는 각자의 신체성 안에서 뭔가를 인식합니다. 그리고 그 신체성은 모든 존재가 각자 다른 역사와 해석능력을 지니고 있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물이라고 말할 때 당연히 물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물이라는 관념이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 물이라는 관념과 대상 물은 각자 다른 질서와 연관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때 스피노자가 말하는 적합성이란 관념과 대상의 일치와는 관련이 없게 됩니다. 그러한 표상적 인식에 갇히지 않고 전체 속에서 사물을 만나는 것, 그 이행의 과정 자체를 적합성이라고 보는 것이죠.

다음 시간은 <윤리학> 1부와 <헤겔 또는 스피노자> 3부를 읽어오시면 됩니다.
과제는 1. 원인에 의한 인식이란? 2. 적합성이란 개념이 왜 스피노자에게 중요한가? 를 풀어오시면 됩니다.
발제와 간식은 정옥샘, 정수샘.
다음주에 만나요//
전체 3

  • 2019-02-16 21:04
    적합한 관념이라는 것이 '새로운 인식의 틀'이 아니라 인식과 대상을 일치시키려는, 하나의 관점으로만 세계를 보려는 사고방식에 대해 비판적 기능을 하는 개념이라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스피노자에게는 적합성이란 표상적이고 주체적 관점에서 전체적이고 실체(신)적 관점으로 이행하는 과정 그 자체를 말하는 거네요. 개념을 고정된 상태로 대상화해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스피노자의 세계ㅎㅎ

  • 2019-02-17 11:38
    혜림쌤. 논리정연한 글 잘 읽었습니다. 아직 제게는 스피노자는 너무 낮설어 현재 저는 혼란 그 자체의 소용돌이 속을 헤매이고 있어요. 이렇게 표류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스피노자의 세계에 뛰어들어 노닐 수 있을거라 희망을 가져봅니다.

    • 2019-02-18 12:41
      오! 박선영 선생님의 역량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