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마이너스

니체마이너스 8주차 후기

작성자
인영
작성일
2019-11-13 00:14
조회
110
이번 주에는 1장 비극 중 10번 '현존의 결백'과 11번 ‘주사위 던지기’를 함께 읽었습니다. 이번 주도 역시 함께 헤매고, 서로 찾아가며 매우 열띤(?) 분위기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열기로 그만 한 선생님이 급히 냉수를 찾으실 정도였답니다. 저는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을 통해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서 제대로 꿰어서 이해하지 못한 고통, 죄, 차이, 긍정, 삶의 미적 정당화 등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는 기회를 얻고 있습니다. 거기다 제가 민호 선생님께 ‘좋은 문장이란 무엇인가요?’ 물었더니 ‘들뢰즈를 보세요!’라고 사사하셨답니다. 그제야 들뢰즈의 간결하고 함축적이며 강렬한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 접하는 들뢰즈의 문장들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초심자로서 묵묵히 따라가 보고자 합니다

10. 현존의 결백

니체는 현존의 결백을 다음과 같은 근거로 제시합니다. 전체 밖에는 현존의 유죄를 판결하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전체라는 고정된 세계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니체는 인간이 삶에 부조리한 국면에서 고통이라는 죄에 대한 책임, 자책을 해석하는 힘의 차원에서 비판하고자 했습니다.

‘결백은 다수의 진리’라 함은 힘과 의지의 철학의 원리로부터 이해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그것을 해석하는 힘으로 관계되며 원한, 자책, 책임을 지우지 않고 서로 긍정하는 방식으로서 결백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신이나 심판자와 같은 전체 밖의 존재에게 힘과 의지에 해석과 평가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힘을 억제하는 하는 것은 ‘가치 있는 것’으로 우리의 힘이 분명이 드러나는 것은 ‘유죄인 것’으로, 그렇게 힘과 행동을 분리합니다. 그 분리된 능력을 타고난 자유의지의 중립적 주체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자유의지 주체는 현존 그 자체를 부인하고 해석을 비하로 대체합니다. 그리고 그 비하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방식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래서 놀이에 서투른 자들이라고 묘사합니다. ‘결백은 현존, 힘, 의지의 놀이다’를 이해해보기 위해 바닷가에서 모래성 쌓기를 예로 들어보았습니다. 썰물 때 쌓은 아이의 모래성이 밀물 때 다시 해변의 모래로 돌아가는 것에 어떤 목적이나 의도나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주체적으로 보면 자신이 이 우주를 인식하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데 익숙합니다. 그러다보면 삶의 책임은 그 주체에게 돌아오게 되거나 또다른 원망의 대상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우주 속에서 인간의 삶은 한 순간의 모래성 쌓기 놀이처럼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라면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까요? 어제 바닷물이 어제의 모래성을 쓸어가 마치 자신만의 세상인양 자신의 성을 즐겁게 쌓아도 결국 때가 되면 떠나야 하는 것에 누구에게 책임과 원망이 있을까요? 현존의 결백을 증명한다는 것은 주체를 넘어서 우주 속에서 현존을 사고하는 과정 중에 하나로 이해해 봅니다. 그렇다면 우주는 끝없이 생성하고 있으며 현존도 힘의지를 그 안에서 생성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니체는 자신을 쇼펜하우어에 대립시키듯 헤라클레이토스를 아낙시만드로스에 대립시킵니다. 해라클레이토스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모든 것을 생성 속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존재는 있는 그대로의 생성 속에 있다고 합니다. 생성을 긍정하는 노동자의 사유와 생성의 존재를 긍정하는 사유는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자연과 이성처럼 하나의 동일한 요소에 생각이라고 합니다.

되돌아오기는 생성되는 것의 존재이다’ 이 문장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되돌아오기를 생멸이라고 상정하고 풀어보고자 했습니다. 생멸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생멸로 이어져 그것은 생성 그자체이며 생성 속에서 긍정되는 존재라고 이해해보았습니다. 이것을 ‘존재로서의 영원회귀’라고 한다면 현존은 책임도 없고, 유죄도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하나는 다수다’라는 것을 좀 더 이해하고 싶은 과제로 남기며 이만 후기를 줄이고자 합니다.
전체 3

  • 2019-11-13 12:49
    인영샘의 후기를 잘 읽었습니다. 저도 들뢰즈의 엄청난 내공이 담긴 문장들에 거의 매주 짖눌려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민호샘께 사사받으신대로 들뢰즈의 문장은 그저 사람을 괴롭히려고 일부러 꼬아만든 문장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서 자꾸 끌려들어가네요. 들뢰즈의 문장은 나를 낮추는 만큼 아주 잠깐씩 뜻을 열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저도 이문장 "결백은 현존, 힘, 의지의 놀이다’ 에서 멈췄더랬습니다.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은 어린아이의 비유에서 이런 구절도 떠올랐고요. 과학자뉴턴은 거의 수도승처럼 살았다는데 그의 프린키피아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는군요. “세상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가 백사장에서 장난치면서 아름다운 조개와 조약돌을 찾는 작은 소년이라고 생각한다. 진리의 바다가 내 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다.” 멋지지않나요?
    후기 쓰시느라 애쓰셨어요. 덕분에 사고로 잠시 발이 묶였던 탓으로 놓칠 뻔 했던 챕터를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 2019-11-13 13:00
    들뢰즈 책 주문하러 갑니다아

  • 2019-11-15 13:32
    왁 제가.. 사사를 했었군요? 단지 문장이 짧아서 좋다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나 그 문장의 내공을 따라가는 것은 매우매우 쉽지 않은 일 같구 저도 난희샘 말씀에 동감합니다!
    특히 "하나는 다수다." 이 짧은 문장이 그런 것 같아요. 머리를 맞대어 주사위 놀이를 가지고 우연과 필연, 결백을 이야기하던 것이 생각나네요. 후기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