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아나키즘팀 모임 후기(2)

작성자
혜연
작성일
2020-04-04 17:14
조회
92

이번 주 아나키즘 팀에 지영샘이 합류하셨는데요, 무척 든든했습니다. 나카자와 신이치의 [곰에서 왕으로]의 전반부를 읽고 '대칭성의 사고‘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지영샘이 불교와 접속되는 지점이 있다하셔서 그 부분의 이야기를 좀 더 들었는데, 불교에 관한 지식이 미천한 저로서는 온전히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또 불교가 아나키즘과 연결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불교를 공부하고 계신 지영샘으로부터 앞으로 도움의 말을 많이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규창샘께서 현대 사회가 오히려 야만을 품고 있는 문명이며, 무지한 소비는 어떻게 야만과 연결되는지, 타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타자와 접속할 수 있는 윤리가 대칭성 사고의 회복과 관계되는 부분을,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행위로서의 변신의 의미에 대한 정리를 토대로 토론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곰에서 왕으로]의 저자는 대칭성 사고와 신화적 사고를 같은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신화가 이야기되던 사회에서는 인간이 동물에 비해 일방적인 우위에 있거나, 구체적인 인간간계를 초월한 권력 같은 것이 사람들에게 강압적으로 힘을 휘두르는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탐욕에 무지하지 않았고, 계층의 차이도 발생했지만 인간과 동물 사이의 대칭관계는 엄격하게 유지되었습니다. 대칭성 사회의 사람들은 권력은 원래 인간의 소유가 아니고 이 세계의 진정한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은 동물이라 생각했으므로 인간은 신화나 제의를 통해서 동물과의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자연의 힘’의 비밀에 접근하고자 했습니다. 이 세계에 비대칭의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악으로 여긴 대칭성 사회의 사람들은 신화적 사고를 이용해 실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신화는 상징과 비유로 가득한 숲입니다. 곰이 자주 등장하는데 대칭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곰은 자연계의 가장 좋은 친구이며, 숲의 왕으로 모든 동물들의 정령의 수장입니다. 현실의 표층에서는 인간이 곰을 뒤쫓아서 죽이고 그 몸으로부터 털가죽과 고기를 얻어 생활하는 대립적 관계이지만, 현실의 ‘시적인 층’에서는 그것과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신화는 이야기 합니다. 위대한 자연의 수장인 곰이 좋아하는 친구인 인간에게 선물로 기분 좋게 털가죽과 고기를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곰의 넋보내기’ 제의의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에 일어나고 있는 것은 그저 단순한 곰 살해에 불과하지만, 대칭성 사회의 사람들은 인간과 곰이 서로의 존재를 유동적으로 왕래할 수 있는 유동적 생명의 레벨까지 내려가서 ‘전체성’을 사고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자가 다양한 신화를 그의 특유의 방식으로 분석하면서 왕과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을 논리적으로 안내하는 힘에 이끌려 책을 단숨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중심 권력이 없는 정치를 사유할 때 대안적 힘으로써 그레이버가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에서 제시한 ‘대항권력’이 떠올랐습니다. ‘자연’권력이 비대해지면서 국가가 형성된 이후 이에 대한 대항세력으로서의 ‘문화’의 힘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신화적 사고, 대칭적 사고의 회복이 대항권력을 유지하는 하나의 태도로서 유의미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덧붙여 대항권력에 포함시킬 수 있는 요소로써 일상적 정치행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다음 주엔 책의 후반부에서 대칭적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려 했던 신화적 사회의 내부로부터 국가라는 체제가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어떤 과정에 의해 현재 우리 삶에 비대칭적인 ‘야만’이 고정되었는지, 대칭성의 회복을 위해 문명, 기술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에 대해 세부적으로 이야기하게 될텐데요,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인류학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아나키즘과 접속되는 부분이 많다고 느꼈었는데, 그레이버가 ‘인류학적 사고는 인간이 가진 가능성의 범위 자체를 첨예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아나키즘과 친연성을 갖고 있다’고 말해 반가웠습니다. 타자와 새롭게 관계 맺는 것을 공부하면서 새로운 신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 중에 있는 저에게 ‘신화적 사고’는 현재를 살아가면서 ‘오래된 미래’를 사유하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 감사와 감응이 일어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전체 1

  • 2020-04-05 21:50
    캬~ 재밌게 읽고 계시는 게 글에서도 느껴집니다. 저도 아나키즘을 어떻게 사유해야 할까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대칭적 사고를 바로 가져올 수는 없겠지만 아나키즘에서는 인간을 어떻게 긍정하는지 조금 감이 잡힌 것 같기도 해요. 책 자체도 재밌지만, 어떤 것들을 읽으면서 공부해나갈까를 그리니 확실히 더 재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