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 에이징 세미나

예스 에이징 시즌 1 후기

작성자
류수
작성일
2021-06-02 15:36
조회
95
오늘날 우리가 우리의 몸을 사유하는 시간은 아프고, 병이 드는 것과 같이 우리의 몸이 예전 같지 않을 때입니다.

그런 시간이 오면 우리는 우리의 몸을 달리 사유하기 보다는 환상 속에 존재하는 몸으로 우리의 몸을 맞추기 위해 병원을 가서 치료를 하거나 또는 과거의 영광 속에 있던 몸을 회상하며 지금의 몸을 부정하며 하루 하루 견디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동의보감에서는 몸이 고장(?)나기 전에 미리 몸을 보살피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병이 난 후에 침과 약을 쓰기 보다는, 평상시에 내 몸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펴보고,  몸의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리는 예방의학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전 서양에서 양생술이 자기 자신과의 최선의 관계를 맺기위해 존재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다면 내 몸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동의보감은 기승전 "마음 다스리기"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몸을 단련하는 요령은 정신을 통일하는 데 있다. 정신을 통일하면 기가 모이고, 기가 모이면 단이 이루어지며, 단이 이루어지면 형체가 튼튼해지고, 형체가 튼튼해지면 정신이 건강해진다" 라고 하였다. 그래서 송제구는 "형제를 잊어서 기를 기르고, 기를 잊어서 정신을 기르며, 정신을 잊어서 잡념을 없는 마음을 기른다. 이 "잊을 망"자가 곧 아무런 것도 없다는 것을 말한다. 본래 아무 것도 없는데 어느 곳에 티끌인들 있겠는가"

-동의보감 (허심합도 중 일부)-


동의보감에서는 몸과 마음이 균형이 맞지 않으면, 기와 혈이 불균형해지고 이는 곧 병으로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

병이 나타나서 치료한다고 해도,  근대에서 이야기하는 정상성에 맞춰서 몸의 이상 부위를 도려내고, 정상의 상태로 회복하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안에서 사는 것이 아닌 지금 여기 몸이 사는 것이기에, 매 순간 어떠한 몸에 상태에서도 기와 혈이 균형을 맞출 수 있습니다.

달리 이야기 하면 살아가는 매 순간이 삶의 과정이고, 이 과정에서 몸이 산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동의보감 파트에서 재밌는 것은 천지의 운동성은 생으로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목화토금수가 있습니다.

목은 화를 생하고, 화는 토를 생하고, 토는 금을 생하고, 금은 수를 생하고, 수는 목을 생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천지의 운동에서 형이 나오려면 극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이 극하면 토를 낳고, 화가 극하면 금을 낳는 것과 같습니다.

우주의 운동성은 생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우주의 운동성이 불균형할 때, 어떠한 물질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음양이 불균형한 상태에 형인 몸이 나오고, 음양이 균형이 맞아지는 순간 죽음을 맞이하면서 다시 자연의 운동성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균형이 맞아서 사는 것이 아니라, 불균형해야 사는 것이고, 불안정 해야 사는 것이고, 이 불안정은 또 끊임없는 운동성을 낳아 삶을 이어가게 합니다.

동의보감은 이러한 불균형이 너무 심하게 되면 정을 손상한다고 하였고, 특히나 감정의 불균형으로, 감정을 크게 사용하는 것을 경계하였습니다.

그래서 섭생을 잘하는 사람은 늘 생각하는 것, 걱정하는 것, 욕심을 내는 것, 일을 하는 것, 웃는 것, 근심하는 것, 즐거워하는 것, 기뻐하는 것, 성내는 것,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모두 적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많은 미디어들이 감정 표현을 크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웃는 것도 과잉으로 하여, 웃음 치료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감정의 과잉이 당연히 되는 시대에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배운 혈자리는  사관혈입니다. 사관혈은 인체를 흐르는 기혈의 4개의 관문입니다. 우리 몸 전체의 기혈 순환을 도와 소통을 이루는 4개의 혈자리입니다.

사관혈에는 합곡혈과 태충혈이 있습니다. 합곡혈은 엄지와 둘째 손가락 사이, 소위 체했을 때 사람들이 눌러주면 입이 다물어지게 아픈 자리입니다.

태충혈은 발등으로 첫째 발가라과 둘 째 발허리뼈 사이에 있는 자리입니다.

사관에 침을 놓을 때 핵심은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머리가 아프면 태충혈을 먼저 놓고, 체하는 것과 같이 하초가 아프면 합곡을 먼저 놓는 것입니다.

놓는 순서가 발-손-발-손으로 놓거나, 손-발-손-발로 놓아야 합니다. 이는 사관의 핵심이 순환이기 때문입니다.

침을 빼는 순서는 놓는 순서로 해줘야 합니다.

끝으로 새벽 세시의 몸들에게 마지막 파트를 읽고 이야기 했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치매를 이야기하는 부분과 앞선 아픈 몸들의 다른 사유를 총체적으로 정리하는 크게 두 부분 이었습니다.

치매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인식이라는 것은 돌연변이 입니다. 내 사유의 지평에서 남의 사유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같은 것을 항상 다르게 사유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다르지만 또 조금의 같은 부분이 있기에 우리는 대화를 하고 소통을 합니다.

우리가 치매를 두려워 하는 것은 우리가 사유를 하지 못한다는 두려움입니다. 우리가 상호작용할 수 없고, 남과 단절된 삶을 산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치매를 환자로 분리하고, 그들이 가지는 행동을 하나의 병증으로 분리하고, 끝내 치매 환자를 사회에서 격리합니다.

치매를 걸리더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인지 체계로 인식 되지 않을 뿐, 아직도 반응하며사는 몸이 있습니다.

단지 언어로 소통 불가능할 뿐, 아니 논리적인 언어로 소통 불가능할 뿐, 어떤 것에 반응하는 몸의 시간성으로 사는 몸이 있습니다.

치매를 사유하면서 우리는 우리 사회가 우리의 주체를 어디에 두는 지에 대해서 달리 사유해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우리에게 부여되는 권리, 평등과 자유,를 가지는 인간이라는 주체는, 인간이 최소한이 것이 있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지"할 수 있는 가 입니다. 무엇을 인지 할 수 있는가 라고 하면, 우리의 문화 또는 사회적 계약, 거래 등을 인지할 수 있는 가 입니다.

그러한 인지 없이는, 법적인 보호를 받을 없고, 법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없으며, 그러하다면 우리 사회가 말하는 인간이아닐 수 있습니다

수 많은 법적인 조항에서 금치산자, 제한적 금치산자, 치매 환자와 같은 많은 정신 질환자들은 제외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우리의 몸을 어떻게 대하는 것을 보면 현재 우리의 주체가 어떻게 호명이 되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호명이 바뀌어야 하고, 호명이 바뀌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하에 호명이 되는지를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이 단순히 개인의 역할과 인식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과학으로서 이것들을 우리 사회가 해가야한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음 주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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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03 14:17
    하나의 '주체'로 인정되는 기준이 '인지' 가능 여부라는 게 저에게도 당연한 기준이었던 것 같아요. 치매환자는 자신을 표현하는 다른 매커니즘을 가진 존재인데 말이죠.
    우리는 다르게 관계맺고 생각해볼 역량을 발휘하기보다는, 그들이 정상적인 삶의 영역에 발들이지 못하게 법적, 사회적 규제를 강화해 버리고 말지요.
    전 이 책이 병에 걸릴 자신을 상정하고 있어서 좋았어요. 나는 마치 아프지 않을 것 처럼, 돌봄을 받을 일이 없을 것처럼 사는데,
    타인의 돌봄에 대해 기분 좋은 방식으로 반응하는 몸을 가지는 것을 평소 기도하며 살라는 말에 울컥 공감하고 말았지요. 빠른 후기 감사드리고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