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앓이

21. 편안함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6-04-08 10:01
조회
443

21. 편안함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 貧而樂 富而好禮者也 - 論語 學而


자공이 물었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함이 없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함이 없는 것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괜찮으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자만은 못하다.”


자공(子貢)은 공자의 제자 중에서도 꽤나 다재다능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학문에서도 뛰어났으며 외교·정치, 상공업 분야에서도 두각을 보였다고. 주자의 언급 중에는 “자공은 재물을 늘린다(子貢貨殖)”는 것이 있기도 하다. 오늘의 논어 구절은 이 자공과 공자의 문답이다.


자공이 물었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함이 없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함이 없는 것은 어떻습니까?” 자공은 내심 기대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무엇을? 공자의 인정을. “암, 그렇고말고. 그 정도로 할 수 있다면 훌륭하지 않겠나. 그대가 잘 알고 있구나.” 이와 같은 스승의 칭찬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일까. 만약 그랬다면 자공은 스승의 답변에 마음이 철렁했을지도 모른다. 공자의 대답은 “괜찮긴한데…”다. ‘그대가 말한 태도도 나쁘진 않지만 아직 미치지 못한 바가 있다’는 것.


貧而無諂 富而無驕(빈이무첨 부이무교. 가난하면서도 아첨함이 없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함이 없다)”과 “貧而樂 富而好禮(빈이락 부이호례. 가난하면서 즐거워하고 부자이면서 예를 좋아한다)”. 이 두 태도는 정확히 어떤 지점에서 갈라지고 있는 것일까.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잠시 《중용(中庸)》의 한 구절을 읊고 간다.


이런 구절이 있다. “素富貴行乎富貴,素貧賤行乎貧賤 (소부귀 행호부귀 소빈천 행호빈천. 부귀한 처지가 되어서는 부귀에 마땅하게 행하고, 빈천한 처지가 되어서는 빈천에 마땅하게 행한다.”(《중용》) 이 구절이 주는 기쁨은  어떤 명령도 하지 않는 데 있지 않을까. 공자는 ‘부자라면 근검절약하라! 가난해도 부자처럼 베풀라!’고 말하지 않는다.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부귀하면 부귀한 대로. 공자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맞게 행하라’ 고 말할 뿐이다.


물론 ‘각자가 처한 상황에 맞게 행하라’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답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자공에게는 “가난하여 아첨하지 않고, 부귀하여 교만하지 않는 것”이 그 답이 될 것. 자공의 이 태도는 물론 훌륭하다. 가난한데 아첨하지 않고, 부귀한데 교만하지 않기란 어렵다. 가난하면 비굴하게 되고, 부유하면 방자하게 된다. 좋으면 좋은 대로 고달프면 고달픈 대로 몸도 마음도 휘청거린다. 주자는 스스로를 지킬 줄(自守) 아는 자라야 이런 경지가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자공과 같이 말하는 이는 끊임없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 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가난하여 아첨하지 않고, 부귀하여 교만하지 않겠다’. 이것은 하나의 결심이다. 그런데 위태로운 결심으로 보인다. 그는 그 자신 행여 도리에 맞지 않는 인간으로 전락할까봐 불안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자는 이런 마음을 뚫어 본 것이 아닐까.


“貧而樂 富而好禮(빈이락 부이호례. 가난하면서 즐거워하고 부자이면서 예를 좋아한다)” 이 구절은 여러 가지를 묻는다. 너에게 가난함이란 무엇인가, 부유함이란 또 무엇인가, 가난은 즐거움과 양립 불가능한가, 부유함은 예를 좋아하는 것과 같이 갈 수 없는가…. 사람은 결국 자신이 갖고 있는 갖가지 규정들 속에서 위태로워진다. 인간에 대해서든 세계에 대해서든 자신이 갖고 있는 선관념들 속에서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살아있는 자에게는 언제나 그가 알고 있는 이상의 일들이 쏟아진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폭탄처럼 또 선물처럼 쏟아진다. 가난도 부귀도 그 하나일 뿐. 자공은 가난에 처하면 가난에 처한 대로, 부귀에 처하면 부귀에 처한 대로 불안해하고 자기를 끊임없이 경계하는 인간이었던 것 아닐까. 그의 세계는 그 자신을 위태롭게 하는 위협들로 가득하다. 가난이든 부귀든, 모든 것이 그를 흔들리게 한다. 행여 자기를 잃을까, 일을 그르칠까 전전긍긍하면서 어떻게 이 이상한 세상에서 편하게 살 것인가. 공자는 자존심 강하고 뛰어난 점도 많지만 또한 짠하고 어리석은 구석이 있는 이 제자를 일깨워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가난한 대로, 부귀한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으리. 그러니 어떤 일도 미리 경계하고 있지 말 것. 언제 어디서든 즐거울 수 있고 예를 좋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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