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티(불교&티베트)

<불티모아> 6월 17일 2학기 6주차 수업후기

작성자
이경아
작성일
2021-06-26 18:25
조회
92
중론 제8. 행위와 행위자에 대한 고찰

#1교시 – 명상

이번 주는 걷기 명상을 배웠습니다. 게다가 오늘은 날씨가 살짝 흐려 규문근처 길로 천천히 걷기 명상을 하기에 최적의 날씨가 되어주었습니다. 천천히 걷는 동안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순간을 알아차리는 게 방법입니다. 중간에 길에서 벌어지는 작은 공연을 즐기고 오신 분도 계셨고 돌아와야 하는 시간에 임박해짐을 느끼자 발이 저절로 빨라졌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저도 천천히 걸으며 걷고 있는 다리근육의 느낌에 집중하고 팔꿈치를 훑는 바람의 느낌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순간순간 들어오는 시각적 감각에 금방 집중력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기 위해 장착한 모든 감각들이, 우리가 그 느낌을 알아차리는 순간조차 기다려주지 않을 만큼 야멸찬 놈이란 걸 깨닫습니다. 그럴수록 강력하게 주의를 앗아가는 이 감각들에 끄달리지 않고 그 순간을 잠시나마 붙들어 두기위해서라도 매일 꾸준히 명상하는 습관을 들여야겠습니다.

#2교시 - 입중론 낭송

드디어 제비뽑기를 통해 암송할 구절이 결정되었습니다. 아직도 단어나 불교용어들이 생경해 게송의 의미가 저 멀리 있습니다만 한 페이지나 되는 게송을 암송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그 의미를 조금은 엿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3교시 –토론

이번 주는 8품 행위와 행위자에 대한 고찰에 대해 토론을 했습니다. 다음의 12게송과 13게송이 이 품의 결론인 것 같습니다.

행위자는 행위에 연하여,

행위는 행위자에 연하여 발생한다.

우리는 그 밖의 다른 성립 원인을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이 취(取)를 알아야 한다.

행위와 행위자를 부정하였기 때문이다.

행위와 행위자에 의해서 나머지 존재들도 알아야 한다.

행위자는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고 행위를 통해서만이 행위자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행위도 그 자체로서는 존재할 수 없고 그 행위를 하는 행위자에 의해 행위라는 의미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취자와 소취가 오직 상호의존에 의해서만 성립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중론을 공부하면서 세상에는 절대적인 기준 따위는 없으며 오로지 연기만 있다는 생각에 확신이 들고 있습니다. 8품 이전 품들의 주제들을 훑어보면 주체와 행위에 대한 이야기, 보는 감관과 보이는 대상에 대한 이야기,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이야기, 부분과 전체에 대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잘 들여다보면 한 결 같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주체와 행위도 서로 상호의존에 의해서만 성립하는 의미들이며 원인도 결과 없이 원인일 수 없고 결과도 원인 없이는 결과일 수 없습니다. 두 개념들은 그 자체로서 독립적으로 성립하는 개념들이 아니라 서로 연기에 의해 성립하는 상호의존적인 개념들입니다. ‘모든 것은 연기한다.’입니다.

우리도 사고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준을 연하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고 속에 깔린 전제, 즉 어떤 좌표점을 붙들 수밖에 없는데, 거기서 집착도 관념도 그리고, 기억도 생기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이 세상에 절대적인 기준은 없으며 오로지 연기만 있을 뿐이라는 것을 다른 방향으로 설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연기를 설명하기 위해 나가르주나가 중론에 제시한 27개의 고찰 주제들이 어떤 맥락에서 제시한 건지 궁금해지네요. 나가르주나가 궁금해했던 주제를 목록으로 했을까요 아니면 사람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오류순일까요? 아무래도 이 주제대로 우리의 고정관념을 파척해나가다 보면 책의 끝에 가서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는 수순을 토대로 한 것이지 않을까요?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희론의 늪에 빠지는 윤회를 끊기 위해 27편의 연습문제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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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30 10:23
    중론은 "나와 사물을 보는 고정관념을 파척해나아가는 것,"
    우리는 너무나도 익숙한 해석체계로 구조화되었있습니다.
    중론은 이러한 구조에 생채기를 내는 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경아샘 어려운 과정을 겪으시면서도 후기를 올려주시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