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티(불교&티베트)

<불티모아> 7월 1일 2학기 8회차 수업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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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7-03 15:54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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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티모아> 71일  2학기  8주차 수업 후기

 

감정 명상

이번 주는 지난주에 이어 감정 명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감정부터 알아차리려 했지만, 감정이란 것이 무작위로 일어나기 때문에 알아차림의 힘이 약하면 바로 휩쓸려 들어가기 쉽습니다.

감정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그 대상과 분리하여 그 감정에 반응하는 신체적 변화를 관찰합니다. 대상과 분리해서 보라는 것은 그 감정을 나와 동일시하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일어난 감정을 나와 동일시하여 자성을 부여하는 순간, 그 감정은 장작에 불이 붙듯이 타오른 것과 같습니다.

두 번째는 감정이 일어날 때 그 원인을 ‘누구 때문이야’가 아니라 대상과 분리하여 자기원인으로 감정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세 번째 부정적인 감정이든 긍정적인 감정이든 피하지 말고 지켜봅니다. 그러면 그 감정이 증폭될 수도 있고, 구름이 지나가듯이 흩어져버리기도 합니다. 이러할 때 감정이 증폭되는 것은 나의 알아차림의 힘이 약할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감정 나누기를 통해 각자의 상황에서 감정을 설명했습니다. 갑자기 외부환경에 의해 놀라는 감정이라든가, 어떤 대상과 의견이 다를 때 올라오는 감정 안에는 나의 방식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집착으로 인한 화가 내재 되어 있습니다. 이때 신체의 변화는 각자 다르게 반응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슴이 뛰기도 하고, 두통이 일어나기도 하고, 열이 오르기도 합니다.  감정 명상은 이러한 반응들을 미세하게 살피고, 궁극적으로는 자성이 없음을 알아차림 합니다.

10장 불과 땔감에 대한 고찰

10장은 16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앞장에서도 계속해서 행위자와 행위, 취자와 취, 푸드갈라와, 오온은 자성에 의하여 성립하지 않는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장에서도 계속해서  불과 땔감(연료)도 마찬가지로 자성에 의하여 성립하지 않다고 나가르주나는 논증해 나아간다.

그러나 여전히 대론자들은 그런 것이 아니다, ‘불은 땔감에 의존함으로 불은 자성이 있다’ 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불에서 열기와 연소성을 비롯한 자성의 결과가 인식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땔감도 불에 의존하여 존재하므로 땔감도 자성이 있게 된다. 대론자들은 이러한 논리로 행위자와 행위, 취자와 취도 의존하여 자성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나가르주나는 대론자들이 말하는 불과 땔감이 자성으로 존재한다고 계속 주장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동일한 것으로 존재하든지, 아니면 서로 다른 것으로 존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둘 다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만일 불과 땔감이 같다면, 행위와 행위자도 동일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렇게 되면 도공과 그가 만든 항아리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또 질그릇과 옹기장이도 나무꾼과 나무도 동일하다는 오류가 따라 붙는다.

또한 만일 불과 땔감이 서로 다르다면, 땔감에 의존하지 않는 불이 인식될 것이다. 의존하지 않는 불은 항상 연소할 것이며 불에는 연소의 원인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불은 무행위자가 되어, 남에게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원인이 없는 불이 된다.

이것이 저것과 다를 때, 이것은 저것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경험적으로 관찰되었다. 예를 들어 질그릇과 다른 옷감이 질그릇에 의존하지 않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불은 남에게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연소의 원인이 없는 무행위자인 것이다. 무행자가 되면 불은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게 된다.

8~13게송 까지는 불과 땔감을 관거래품에서 나오는 방식을 적용하여 설명한다. ‘불은 다른 것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불은 땔감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불은 다른 것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또한 땔감 없는, 즉 원인 없는 불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가고 있는 것과, 이미 간 것과, 아직 가지 않은 것에 의하여 나머지가 설명된다’

불과 땔감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불에 의하여 땔감을 연소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미 연소된 것은 연소되지 않는다. 아직 연소되지 않은 것은 결코 연소되지 않는다. 이미 연소된 것과 아직 연소되지 않은 것과 분리되어 별도로 현재 연소되고 있는 것은 연소되지 않는다 이렇게 불에 의하여 땔감이 연소되지 않음을 말한다.

14게송에서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을 5종에 대입하여 파척하고 있다.

동일성 : 불은 땔감과 동일하지 않다.

상의성 : 불은 땔감과 다르지 않다.

소유성 : 불은 땔감을 소유하지 않는다.

상제(상주) : 땔감들은 불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상주 : 그것은 그것들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상주하지 않는다는 것은 서로서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 라고 설명할 수 있다.

다섯 가지로 고찰해 볼 때, 불이 존재하지 않듯이, 마찬가지로 자아(아뜨만)에 대해서도 확대 적용되며, 불과 땔감의 방식에 의하여 자아와 취에 대한 논증도 모두 남김없이 파척된다.

여기서 ‘모두와 남김 없음’의 의미상의 차이는 ‘모두’라는 단어는 앞에서 말한 5종을 가리킨다. 5종은 불과 땔감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자아와 취에 대해서 남김없이 부정되었음을 말한다. 뿐만 아니라 행위와 행위자, 취와 취자도 5종에 의해 모두 파척된다.

다섯 가지로 諸法을 고찰해보면 육근(안이비셜신의)은 자성과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고, 육근은 자성을 소유하지도 않고, 육근이 자성속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대입해 보면 온과 처와 계도 안으로도 공하고 밖으로도 공함이 드러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제법이 무상이며, 무아이고, 무자성임을 중론의 해석으로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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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03 21:06
    우왓~ 빠르게 올라온 길샘의 후기가 이리 반가울수가! ^_^
    저희가 엊그제 불과 땔감을 가지고 무려 2시간을 토론했었죠!!! 불과 땔감처럼 서로 연하여 발생하는 것들에 자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그토록 치밀하게 논쟁해 나가는 인도 논사들의 자비심(!)에 나중엔 저희가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었던 것 같습니다. ㅋㅋ
    그나저나 꼭 집어 정리해주신 게송 14번을 저의 어설픈 기억력으로도 꼭 기억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길례샘의 정리에 정성이 느껴져 그러한가 보옵니다... _()_

  • 2021-07-05 20:35
    길샘의 촘촘한 후기 감사합니다. 세미나시간에는 머리를 맞대로 고민하면서 이해에 가까와지는 듯하다가 혼자 읽으면 또 갸우뚱해지는데, 이리 정리를 해주시니 또 정리가 되네요. 보고 느끼는 감각의 문제라기보다는 감각을 원인으로 규정하고 미리 걱정하거나 예측하면서 있지도 않은 결과를 창조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중론 덕분에 손에 쥐지도 그렇다고 놓지도 못하는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손에 쥐거나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또 자성을 부여하는 것이겠죠. 오직 겪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