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티(불교&티베트)

<불티모아> 8월 5일 3학기 2주차 수업후기

작성자
이경아
작성일
2021-08-12 18:41
조회
161
중론 제14. 결합에 대한 고찰

이번 주는 14품 결합에 대한 고찰에 대해 토론을 했습니다. 제가 이해한 부분만 올려봅니다.

대론자는 자성(自性)이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눈과 색(色)이 연(緣)해서 안식(眼識)이 발생하고 눈과 색과 안식이 합해져서 촉(觸)이 되는 것이며 또한 촉(觸) 직후에 수(受)가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상(想)과 수(受)가 결합하기도 하고 결합하지 않기도 한다는 이러한 부처님의 결합에 대한 가르침이 있으므로 자성은 존재한다는 주장에 대해 3,4,5 게송에서 나가르주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서로 다른 것들의 결합은 존재한다.

보이는 대상 등의 상이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들은 결합하지 않는다.”

“상이성은 보이는 대상에게만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에게도 상이성은 타당하지 않다.”

“다른 것은 다른 것에 연(緣)하여 다른 것이다.

다른 것은 다른 것 없이 다른 것이 아니다.

어떤 것(甲)이 어떤 것(乙)에 연(緣)하여 존재한다면,

그것(甲)이 그것(乙)과 다르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보이는 대상과 보는 감관 그리고 보는 자 모두 상이성이 없기 때문에 결합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만약 그 개념들이 서로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면 결합이라는 개념도 있겠지만 상이성이 없으므로 결합이랄 것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예를 든 눈의 감관 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것에서도 상이성은 없다고 설명합니다. ‘다른 것’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홀로 다를 수 없고 반드시 ‘다른 것’에 연하여 상대적으로 다른 것이라는 개념이 되는 것이므로 이 ‘다른 것’은 다른 것 없이는 ‘다른 것’이 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스스로 다름으로 존재하려면 상대성을 부여해주는 어떤 “다른 것”이 없어도 다른 것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에서 볼 때도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길다’는 다른 특징도 ‘짧다’는 다른 특징이 없으면 ‘길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결합이 성립하려면 결합 이전의 조건인 ‘다름’ 즉 상이성이란 개념이 자성을 가질 때에야 가능한 것이겠지요. 나가르주나는 결합에 대해 논파를 무자성으로 설명해주었습니다.

쁘라산나빠다에 인용된 <우바리문경>에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구절이 있습니다. “제법이 무자성임을 아는 용맹한 자들은 세간에서 열반에 도달한다. 왜냐면 그들은 욕락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으며,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이다. 중생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은 중생의 이익을 행한다.”

존재하지 않는 중생들을 위해 이익을 행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다가 지금 내가 존재하지도 않는 고(苦)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자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그 고민이라는 것이 또한 내가 말로 분별하고 단어에 자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며 나름대로 무자성의 의미를 이해하려 애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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