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 절차탁마

절탁 서양 2학기 11주차 후기

작성자
김훈
작성일
2021-08-10 15:38
조회
82
절차 서양 2학기 11주차 후기

오전에는 스피노자 에티카를 함께 낭송하고, 중요구절을 암송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암송에 있어서는, 처음에는 다섯, 여섯 줄 정도로 외웠는데, 지금은 비록 서툴지라도 열 줄씩 외우는 장족의 발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식사 후 산책은, 덥기도 하고 장마철 비가 내려서 몇 주째 못했는데, 금일은 여전히 더웠지만 습했던 기운이 다소 누그러져서 그런지 저번 주 보다는 덜 더운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산책을 감행~!! 산책로 중간에 있는 동네 운동기구로 체육 활동을 하는 활기찬 시간을 보냈네요. 낭송-암송-산책은 다소 지루한 시간일 수도 있지만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한 감각을 체득하게 해주고 그것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해준달 까요. 일주일 중에 다들 개별적인 자신의 삶을 살지만 이렇게 한 주에 한번 오전에 그런 시간들을 가짐으로써 함께 한다는 감각이 가져다는 주는 것은, 비록 당장에 어떤 유용하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지만 무의식중에 그런 감각들이 우리 정서에 자리 잡게 되고 일주일을 살아가는데 알게 모르게 활기를 넣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정서적 괴로움은 대부분 개체적 의식에서 비롯되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평소에 자신의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을, 다른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보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금일은 스피노자 동물우화에 19. 말의 성욕, 20. 꿀벌과 비둘기, 21. 사자 부분을 각자가 읽고 써온 과제들을 중심으로 토론을 했습니다. 연주샘은 ‘자기 자신 이외에는 의존하지 않는 기쁨과 욕망을 겪는다’는 부분에 있어서 결국 믿을 사람은 자기 자신 뿐이라는 것이라는 것일까? 그리고 자기 자신만을 의존하는 것이 정말 기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진 과제를 써왔습니다. 이렇게 써오긴 했지만 연주샘이 우리는 결국 다른 것들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반문도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 부분의 텍스트로만 이해를 한다면 자기 자신만 의존하라는 식으로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스피노자는 그렇게 말한 이유에 대해 전체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우는 비둘기에게 있어 질투가 악이 아닌 것이 인간에 있어서 질투는 악이 아닌가. 그런 점이 잘 이해가 되지 않고 혼란을 가지게 만들었다는 등의 내용을 썼습니다. 우리가 윤리라는 하는 것이 모두가 다르다는 차이를 인정하고, 거기서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이 윤리가 아니야, 자기 도덕도 발명될 수 있다 등의 토론이 오갔던 것이 기억이 나네요.

수경샘은 주변의 영향을 받아 내가 형성된 것이라면,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내 것이라는 것이 없고 허무한 생각이 든다는 내용을 과제로 썼습니다. 정말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 들었습니다. 그것이 불교에서는 말하는 허무주의로 빠지게 되는, 스피노자로 말하면 적합하지 않는 관념을 가지게 할 수도 있겠더군요.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자기로부터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자신이 형성되는 것이라면 거꾸로 생각해보면, 스피노자가 말하는 자기 원인으로써 모든 것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또한 자신이 아닐까요. 한 사람분의 존재가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 어마어마해진 다는, 그런 상상을 하게 되네요. 건화샘은 욕망을 실체화하는 사고방식에 대한 흥미로운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다양한 충동들이 동시에 작동되고 사회적 관계나 그에 대한 이해를 통해, 그 충동들이 욕망으로서 작동된다는 내용들이 재미있었습니다. 건화샘의 번뜩이는 논리가 토론 시간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네요. 그리고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주체화에 대한 연주샘의 궁금증이 증폭되는 가운데 푸코의 주체의 해석학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고, 그에 대해 앞서 공부를 줄곧 해왔던 건화샘의 간략한 설명이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다들 눈을 반짝거리고 귀를 기울였던 모습이~^^

민호샘은 자신의 본성과 부합하는 기쁨, 능동적인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거기에 살짝 시기심에 대한 이야기도 썼는데, 민호샘의 글에서 모든 정서에는 오류가 없다는 점을 생각해봤을 때, 그것을 가늠하는 것은 선악의 기준이 아닌, 그것이 적합한지의 여부와 능동적인지 수동적인가로 기준을 삼을 수 있다는 문장에 줄 쳤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내가 욕망한다고 여기고 살았던 것이 결국 타자가 욕망하는 것을 모방하는 방식으로 살았던 것이 아니었는가? 등을 질문에서 시작한 글을 썼습니다. 그러면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자신의 본성에 따라 능동적이게 살기 위해서는 적합한 관념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냐. 등의 내용으로 토론을 했었습니다.

벌써 11번째 후기라니, 올 초 플라톤의 <국가>에서부터 지금의 스피노자에 이르기까지 다들 어려운 텍스트 임에도 꿋꿋이 공부를 이어올 수 있는 것이,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대견스럽게 느껴집니다. 특히 현정샘이 아니라면 스피노자의 <에티카>라는 험난한 산을 어찌 넘을 수 있었을지. 아찔하기까지 ㅎ 어떻게 앞으로 남은 여정동안 정말이지. 다들 민호샘의 글에서처럼 자기 본성에 부합하는 기쁨, 능동적인 행복을 위한 적합한 관념들을 몸에 새길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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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10 22:26
    모두에 대한 격려가 담긴 '훈훈'한 후기네요 ㅋㅋㅋ 1주일 단위로 생각하면 절탁 일요반을 시작하고 저나 다른 멤버들이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도 들고, 공부가 지지부진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국가>를 처음 펼쳐들던 연초를 생각하면 서로 정말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생각도 들고, 어떻게 이번 학기를 잘 마무리해볼 수 있을지 고민도 되네요. 암송은 이번 학기가 끝나기전에 20줄 달성을 목표로 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