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 세미나

성역 3학기 일곱 번째 시간(9.10)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1-09-03 16:35
조회
79
 

이번 주에는 《히포크라테스 선집》을 끝까지 읽고 세미나를 했습니다. 책의 후반부에 배치된 두 개의 장에서 히포크라테스는 전통의학과 인간의 본질에 관해 논합니다. ‘전통의학에 관하여’는 푸코의 《쾌락의 활용》에서도 언급된 챕터인데요, 놀랍게도 여기에서 히포크라테스는 의술의 기원이 요리술이라고 말합니다. 히포크라테스에 따르면 과거에 사람들은 별다른 조리가 되지 않은 억센 음식들을 먹었는데, 이는 체질적으로 강한 사람들에게는 적절했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부합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체질적으로 약한 사람들이 우연의 도움과 여러 시행착오 끝에 자신의 체질에 적합한 음식을 만들어내기 위한 기술을 터득했는데, 그것이 요리술이며 의술의 기원이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요리법들을 만들어낸 사람들과, 병에 걸린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에게 이러저러한 섭생법을 처방하는 의사는 본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저는 히포크라테스가 의술을 기본적으로 섭생법이라고 보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우리는 흔히 의술이라고 하면 째고 도려내고 꿰매고 하는 외과수술을 떠올리는데, 히포크라테스는 비교적 밋밋해 보이는 섭생의 조절이 의학의 핵심이라고 보는 것이죠. 아마도 이것은 병을 환자의 삶의 표현이라고 보는 그의 관점과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병은 환자가 환경과 또 자기 자신과 맺는 총체적 관계의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질병을 일으킨 가까운 원인을 제거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합니다. 환자가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환자는 건강에 이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죠. 의사는 훨씬 더 많은 원인들을 폭넓게 고려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치료의 방향과 건강의 이미지 자체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원체 유약한 사람이 갑자기 강건해질 수는 없을 테고, 특정한 체질을 지닌 사람이 특정한 환경조건에서 살아가는 한 어떤 질병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생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때 건강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기 신체의 성향과 자신이 놓인 조건을 고려하여 자기 자신과 최상의 관계를 맺는 것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토론 중에 경혜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우리는 건강을 우리의 삶 바깥에서 찾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 그렇습니다. 우리가 좋은 음식과 명의와 신비로운 요법과 좋은 약에 환장하는 것은 그것들이 우리의 고통을 씻은 듯이 없애줄 수 있다거나 우리 몸을 갑자기 활력이 넘치게 바꿔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죠. (일리치 식으로) ‘더 좋은 건강’에 대한 이러한 기대를 내려놓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고통과 질병과 우리의 독특한 신체성들을 부정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건강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이런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식이, 상품이, 훌륭한 멘토가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반면 고대인들의 ‘자기 배려’의 핵심은 ‘자기 구원’입니다. 자기 조건 속에서, 자신의 삶에 속하는 것들을 재료 삼아 스스로의 고유한 삶의 양식을 만들어내는 것. 이러한 의미의 실재적이고 내재적인 구원에 대해서 좀더 생각해보아야겠습니다.

다음주에는 《수다에 관하여》를 3장(‘아내에게 주는 위로의 글’)까지 읽고 오시면 됩니다(~112쪽). 이번주에 불참하신 분들도 많고 과제를 안 해오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들쭉날쭉 세미나에 참여하시면 공부가 되지 않을뿐더러 세미나의 동력이 안 생깁니다! 세미나에 필히 참석해주시고 정리가 되지 않았더라도 정리가 되지 않은 나름의 과제를 작성해오시기 바라겠습니다. 다른 세미나원들에 대한 예의입니다! 제발!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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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06 02:25
    건화샘을 만난지 한 삼사년 된 것 같은데 ᆢ"제발!" 이라는 말을 들어 본 건 처음이예요. 조원들에 대한 예의ᆢ 새겨듣겠습니다. 천날만날 윤리타령을 하면서 정작 세미나의 윤리를 실천하지 못하다니 ᆢ반성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