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비기너스 세미나

뉴비기너스 세미나 3기 1주차 후기

작성자
소정
작성일
2021-08-20 20:55
조회
64
뉴비기너스 플라톤 세미나 1차시 후기

세미나의 첫 시간에 우리들은 먼저 미하엘 보르트의 《철학자 플라톤》에서 <플라톤의 생애>를 윤독했다. 여기에서 시선을 집중시킨 것은 플라톤이 쓴 「제7서한」의 내용과 중복되는 3번의 시라쿠사 여행이었다. 처음 여행에서 플라톤은 시라쿠사를 지배하던 참주 디오니시오스1세의 처남인 당시 스물한 살의 디온과 사귀게 된다. 플라톤은 디온에게서 자신의 윤리학적 관념과 정치학적 관념에 열렬한 관심을 가진 한 젊은이를 발견하고 평생 동안 그와 깊은 교분을 나눈다. 하지만 1차 시라쿠사(시칠리아) 체류는 디오니시오스 1세와의 점점 고조되는 긴장으로 끝을 맺는다. 2차 시라쿠사 여행은 디오니시오스 1세가 죽고 그의 아들인 디오니시오스 2세가 즉위한 후 디온의 청을 받아 처음 방문한 때의 20년의 뒤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2번째 시라쿠사 방문에서 디오니시오스 2세에게 디온이 추방당한 후 좋지 못한 기억만을 가지고 플라톤을 억류하려는 디오니시오스 2세를 피해서 각고의 노력 끝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6년 후 마지막 3번째 시라쿠사 방문은 니오니시오스 2세가 이름 있는 철학자가 동참하고 있음을 자랑할 요량으로 플라톤을 초청하고 응한 방문이어서, 이 역시 성과 없는 여행으로 끝을 맺었다.

시칠리아 여행보다 더 성공적이었던 것은 플라톤이 기원전 387년 제1차 시칠리아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착수한 아카데미아라는 자신의 ‘학교’를 창건한 것이었다. 플라톤이 아카데미아를 창건하고 난 다음 무슨 일을 했으며 또 어떻게 살았는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자식이 없었다.

플라톤의 「일곱째 편지」에서는 디온의 생각이 나오는데 ‘당시 그는 시라쿠사 사람들이 최선의 법에 따라 살아가는 자유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라고 플라톤은 쓰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쓰여진 ‘최선의 법’에 대한 생각은 그 뒤의 ‘우리나라는 선조들의 습속과 제도에 따라 다스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새로운 다른 동지들을 얻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고요, 또 성문법이건 관습이건 간에 다 황폐해졌는데, 그 진행은 가히 놀라울 정도였습니다.’라는 내용으로 이어져 원칙 없는 참주정이나, 민주정을 비판하고 치우친 견해에 의존하지 않는 원칙과 비전 있는 통치에 대한 긍정을 말하였다.

그리고 「일곱째 편지」에서 플라톤의 철학이 엿보인 부분은 원에 관한 이야기였다. 여기에서는 ‘원이라 불리는 어떤 것이 있고(이름), 그것의 정의가 두 번째 것으로, 이름들과 술어들로 구성되고, 세 번째 것은 그려지거나 지워지면 돌림판에 돌려 만들어지거나 부서지는 원이고, 네 번째 것으로는 이 원들에 대한 앎과 지성과 참된 의견이 있고, 이것들은 소리에도 물체의 형태에도 없고 영혼들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들 모두를 한 가지라고 파악해야하고 그런 점에서 이것들은 원 자체의 본성과도 다르고 앞서 이야기 된 세 가지와도 다른 것이 분명하다고 말하고 이것들 중에서 지성이 친족성과 유사성의 측면에서 다섯 번째 것과 가장 근접한 반면, 그 밖의 것들은 더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한다.

뉴비기너스 플라톤 첫 번째 세미나는 소수 정예로 출발하였지만, 플라톤이라는 매력 있는 텍스트로 인해서 금세 <플라톤의 생애>와 「일곱째 편지」라는 텍스트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 세미나에서 만나기를 기대하며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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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24 12:50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기 <일곱 번째 편지>였습니다. '최선의 법'이란 무엇인지, 플라톤이 말하는 '진리'란 무엇인지 무언가 느낌은 오는데 설명은 안 되는! 답변을 구하는 마음으로 플라톤을 읽어나가 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