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비기너스 세미나

뉴비기너스 시즌3 : 4주차(09.16)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1-09-03 16:08
조회
63
이번 주에는 《항연》을 읽고 세미나를 했습니다. 《항연》은 기원전 416년 경 비극 경연에서 우승한 아가톤의 집에서 열린 연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플라톤의 대화편입니다. 전날 술을 진탕 마신 향연의 참가자들은 에뤽시마코스의 제안에 따라 술취함이 아닌 다른 즐거움, 대화의 즐거움으로 향연을 채워보기로 결의합니다. 그래서 누가 에로스를 더 훌륭하게 찬양하느냐를 두고 논변을 다투는 잔치가 벌어지죠. 《항연》을 두 번에 나눠서 읽다보니, 이번 주에는 소크라테스의 연설과 그 이후의 분량을 제외하고 파이드로스, 파우사니아스, 에뤽시마코스, 아리스토파네스, 아가톤의 연설을 읽었습니다.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소크라테스의 연설이 빠져 있어서 샘들이 어떻게 읽으셨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좀 걱정되기도 했으나, 생각 이상으로 다들 재밌게 읽어 오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풍성하게 나눠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그렇게 많이 읽지는 못했으나) 《항연》이 플라톤의 문학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극작가를 지망했던 플라톤이 비극 경연에 참여하려다 원고를 제출하러 가는 길에 소크라테스와 만나고, 철학으로 전향한 뒤 자신의 원고를 불태웠다는 전설이 전해질 정도로, 플라톤은 어렸을 때부터 시가와 극작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 부분들이 여실히 드러났던 것은 플라톤이 다양한 인물들의 연설을 각각 뚜렷한 색깔이 두드러지도록 구성한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플라톤의 주인공은 소크라테스지만, 소크라테스 앞에 연설을 한 다섯 명의 인물들이 단지 소크라테스의 논지를 첨예하게 하고 그의 연설을 돋보이게 하는 부품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플라톤은 다른 연설자들의 이야기를 지나칠 정도로(?)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는데, 저는 혹시 이것이 진리에 대한 플라톤의 관점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지난 시간에 읽은 《편지들》에서 플라톤은 진리란 말이나 글로 다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한 오랜 교유와 공동생활 속에서 불꽃처럼 댕겨져 피어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죠. 어쩌면 플라톤은 자신의 대화편이 이런 식으로 읽히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숨에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파이드로스와 파우사니아스와 에뤽시마코스와 아리스토파네스와 아가톤의 이야기에 차례로 익숙해지고 그 맛을 보면서 진리로 향해가는 과정을 독자들이 오롯이 경험하기를 바랐던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파우사니아스의 찬양이었습니다. 그는 어떤 행위가 그 자체로 아름답거나 추한 것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행해지느냐에 따라서 겉으로 보기에 같은 행위라도 아름다울 수도 있고 추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여기에서 아테네인들의 세련됨이 느껴졌습니다.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소년애를 완전히 금지하는 민족이나 그 자체로 좋은 것으로 여기는 민족들과 달리 아테네인들은 그것이 아름답게 행해질 경우에는 좋은 것으로,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추한 것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사랑하는 자는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으로, 사랑받는 자는 지혜에 대한 열망으로 변용될 때에만 소년애는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중하고 섬세한 시선이 전제될 때에만 ‘윤리’의 문제가 적극적으로 제기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타자와 관계할 것인지, 무엇에 자기 자신을 내어주고 또 어떤 것에는 내어주지 않을 것인지를, 입체적으로 고려하는 것. 그리하여 특정한 규칙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좋음을 스스로 규정하고 그에 따르는 것으로써 스스로를 윤리적 주체로 세우는 것. 이것이 아테네인들의 윤리적 기예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다음 주는 한 주 쉬어갑니다. 다다음주에는 《항연》을 끝까지 읽어오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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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13 09:08
    다시한번 정리해주셔서 세미나 시간에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상기되고, 파우사니아스의 이야기는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경계하게 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