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비기너스 세미나

3주차 후기~~플라톤의 호접몽

작성자
정호
작성일
2021-09-03 20:13
조회
103
플라톤의 호접몽

그간 두루뭉술하게 알고 있던 에로스를 낱낱이 파헤쳐보게 되었다. 아리스토파네스와 아가톤이 했던 말을 바탕으로 다시 써본다.

배추흰나비 한 마리가 둥치 위에 앉아 있다. 멀리 다른 나비들이 두 날개로 들판을 깨우며 날아다니는 게 보인다. 그들의 날갯짓을 쫓을 때마다 눈부시지만 이내 사라져버린다. 그들도 배추흰나비처럼 한때는 반쪽짜리 삶이었다. 여기 나비들은 왜 부조화의 몸으로 태어나는지 아무도 모른다. 오른쪽 날개를 찾아 빈 옆구리에 깊이 꽂으면 자신도 창공을 저렇게 날아갈 수 있을까, 골똘하다가 배추흰나비는 그만 잠이 든다.

주변엔 온통 한쪽 날개로만 뒤뚱거리는 나비들뿐이다. 뒤뚱거리며 긴 숲길을 올라간다. 흙냄새를 털어가며 밤낮으로 올라간다. 산꼭대기에는 온전한 생명체들이 살아간다는 소문에 이끌려서다. 배추흰나비도 밀물처럼 휩쓸려 올라가는 중이다. 간혹 올라간 만큼 떨어져도 갈망은 끊임없이 밀어 올려준다. 이따금 스쳐가는 바람은 두근거림에 가깝다. 모였다 흩어지길 반복하는 구름 모양은 그날의 일기 속 문장을 닮았다.

산꼭대기가 턱밑까지 이른 지점, 어떤 나무 밑에 몇몇 나비들이 쉬고 있다. 위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신기루 같은 향에 나비들이 젖어든다. 잘 익은 살구가 떨어져 어름어름 터질 것 같기도 하고 한순간 과즙을 짜낸,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들이 굴러올 것 같기도 하다. 손가락들은 인간의 작은 지체로서 땅의 무른 곳 중 가장 무른 곳만 골라 부드럽게 내딛는다. 지나간 자리는 무질서하게 보여도 거기에서 유연한 리듬이 생겨난다. 혼자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고혹적인 선율이다. 초록과 초록 사이 울려 퍼지는 동안 근처 둥지에서는 알들이 부화하고 보리가 푸르게 익어가고 칠월의 햇살은 농밀해지고 지평선은 하늘에 점점 가까워진다.

그런 상태에서 누군가 말을 하면 목소리는 옛 본성을 향해 달려간다. 허공에는 하얀 동그라미들이 수없이 떠다닌다. 그것들이 숲속을 빠져나가면서 때로는 시로, 광기 어린 예술로, 타인을 이해하는 지름길로, 첩첩 어둠을 뚫어내는 단 하나의 못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렇다고 아무 벽이나 사랑하면 오랜 상처에 함몰되기에 반드시 절제가 뒤따라야 한다. 절제되어 정화된 침묵 속에는 동그라미들이 빼곡히 들어있지만 그걸 알아채는 입술은 많지 않다.

배추흰나비는 어느덧 꼭대기에 다다랐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두 날개로 하나가 된 나비들만 어지럽게 날아다닐 뿐, 그토록 기다리던 자신의 나비는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 날개를 찾다 지쳐 나무 그늘에 기댄다. 아까 올라온 아래쪽을 내려다본다. 그때 무리 중에 오른쪽 날개 끝 까만 점의 나비를 발견한다. 갑자기 왼쪽 날개의 숨은 실핏줄들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그 까만 점을 바라보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갈 것 같지만 천천히 다가간다. 서로는 서로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서로의 빈 곳에 날개를 깊숙이 꽂는다. 딱 들어맞는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결합은 세상에 없을 거라고 두 나비는 동시에 생각한다. 구도 없는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이랄까. 떨림이 영원으로 이어지는 환희 속에서, 죽음마저도 삼켜버린 에로스 속에서, 붉은 꽃을 피우려는 찰나, 툭 떨어지는 나뭇가지

이건 단지 꿈이었구나. 배추흰나비는 여전히 둥치 위에 앉아 있다. 배추흰나비는 반쪽짜리 몸을 끝내 벗어버리고 싶다. 왼쪽 날개 끝 작은 점이 까맣게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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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15 10:30
    정호샘 잘 읽었습니다. 다양한 생각들과 진주같은 고전 글의 매력이 있어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