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읽기

2일 후기 및 9일 세미나 공지

작성자
현옥
작성일
2017-02-07 14:58
조회
344
헤겔을 모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헤겔과 스피노자의 사유체계를 교차시키며 논의를 펼쳐가는 마슈레의 솜씨가 하도 훌륭해서, 따라가 보는 재미는 쏠쏠한 것 같습니다!^^

마슈레는 실체와 속성이라는 범주가 헤겔과 스피노자의 본질적인 분기점을 드러낸다고 얘기합니다. 헤겔에게 실체는 정신입니다. 이 실체로서의 정신은 주체적으로 운동하면서 모든 모순을 통합하고 대립적인 실재를 통일하여 절대정신으로서의 자아를 실현합니다. 이런 사유를 하는 헤겔에게, 스스로 운동하지 않고 속성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표현하는 실체는 불완전해보이는 게 당연하겠지요. 데카르트에게는 분리되어 있었던 두 속성(사유와 연장)을 통일하여 겉으로는 자족성을 가진 절대자(실체)가 되긴 했지만, 정작 자신의 본질은 하위개념인 속성에게 의지하고 있고, 더구나 그 속성은 양태의 지성에 의해 지각되는 바에 의지하고 있으니(속성의 정의; 나는 지성이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으로 지각하는 것을 속성이라고 이해한다), 갈수록 태산이라고 여기는 헤겔도 이해가 가긴 하죠!^^ 더구나 실체를 구성하고 있는 속성들은 서로가 서로를 규정하는 상관적인 관계이므로 반드시 한쪽의 결여에 의해서만 다른 한쪽의 지위가 보장되는(예를 들어 이성의 힘이 강할 때는 육체는 힘을 못쓰고, 육체적 욕망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 강해질 때는 이성이 박약해지는 식으로) 불충분한 관계라고 주장합니다.

마슈레는 헤겔의 이런 주장이 ‘순서’를 통해 모든 것을 일자로 통합시키는 시초의 사유라고 반박하는데요, 헤겔처럼 어떤 토대(시초)에서 시작할 경우, 당연히 그 다음 또 그 다음 순으로 시간차와 더불어 위계가 생길 수밖에 없고, 전체는 그 모든 것의 수적인 총합으로서만 존재하게 된다는 거지요. 헤겔이 실체- 속성-양태의 순으로 각 개념에 위계를 전제하고, 실체를 속성들의 합으로 생각하는 것도 바로 이런 사유 속에서 나온 거라는 겁니다. 이건 사실 진보나 발전을 생각하는 우리들의 상식적인 방식과 똑같아서... 공감이 될 지경이네요.^^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그동안 이런 방식 말고는, 전체와 부분의 관계 혹은 부분들끼리의 관계를 생각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을 상상할 수가 없었던 거지요.

마슈레는 스피노자가 기하학적 방법을 통해 사유하려고 했던 것은 이런 식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 즉 ‘실재성과 존재’였다고 말합니다. 거칠게나마 해석해보자면, 그게 정신과 육체의 관계든 혹은 다른 타자와의 관계든 간에 그 관계 속에서 서로의 차이로 인해 제한되지 않고(다른 것을 제한하지 않고) 삶을 최대한 긍정하고 펼칠 수 있는 방식을 사유하고자 했던 것이겠지요. 따라서 스피노자에게 실체와 속성의 관계, 혹은 속성들 간의 관계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온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펼쳐지는데요, 우리가 스피노자의 신과 속성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요?!

 

1-11; 제각각 영원하고도 무한한 본질을 표현하는 무한한 속성으로 이루어진 실체는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실체는 물론 전체지만, 그 전체는 무한한 속성들의 합이 아닙니다. 수적으로 많은 것들이 합쳐졌기 때문에 다양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기도 하죠. 두 속성의 존재론적 통일체인 나라는 사람을 신체와 정신으로 각각 분리해서 나눌 수 없는 것처럼, 실체는 각 속성들로 분할되지 않습니다. 무한한 속성들이 실체 안에서 분리할 수 없이 존재론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모습- 바로 자연의 모습이 아닐까요! 이 안에서는 실체와 속성의 위계나 선후의 시간차가 없습니다. 속성과 더불어서만 그리고 동시적으로 실체는 구성됩니다. 어찌 보면 실체는 곧 속성이기도 합니다. 이게 스피노자가 전체를 사유하는 방식이지요.

그렇다면 그 안의 각 속성들의 관계는 어떨까요? 각 속성들은 모두 실재적으로 구분될뿐더러(우리의 육체와 정신이 구분되듯이) 달라도 너무 다른 차이를 가진 것들입니다. 헤겔은 이런 차이를 서로를 제한하는 모순으로 여겼기에 더 큰 힘을 가진 一者(제3항)를 통해 통합하고자 했고, 우리 역시 삶 속에서 이런 차이를 어떻게든 자신의 동일성 안으로 통일시키고자 애를 쓰지요. 하지만 스피노자의 속성들은 역설적으로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에’ 서로에게 전혀 영향을 미칠 수가 없습니다. 정신으로 신체를 직접 제어할 수 없고, 신체 역시 정신을 직접 제어할 수 없다는 대목에서 우리가 엄청 혼란스러웠던 것 기억하시죠?^^ 좀 뜨~한 비유일지는 몰라도 우리가 우리와 너~무 다른 꽃이나 뱀이나 돌멩이의 삶에 관여할 수 없다는 것과 비슷한 걸지도 몰라요!^^ 각 속성들은 이렇게 다른 채로, 하지만 모두 神이라는 실재의 단 하나의 법칙인 질서와 연관을, 동일하게, 그러나 각자의 방식으로 실현하면서, 존재론적으로 전혀 대립없이 통일체로 존재한다는 것!

텍스트 뒷부분에 ‘대립없는 차이’가 다시 한 번 나오니까 그때 더 자세히 얘기해볼 수 있을 거예요. 우선은 우리에게 너무나 낯선 이런 존재방식을 충분히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다음 시간엔 p.229(무한과 유한까지) 공부합니다.

발제는 만두쌤, 간식은 은정쌤이 해주시기로! 그럼 잼나게 공부하시고, 즐겁게 뵈어요!
전체 2

  • 2017-02-07 15:18
    책만 봐서는 잘 이해가 안됐던 것들을 이리 알기 쉽고, 명쾌하게 정리를 해 주시다니요~~. 게다 재미있게요~~ㅎ. 감사합니다~~^^

  • 2017-02-09 13:21
    다들 읽으셨겠지만, 뒷부분 유한과 무한을 공부하다보니, '실체는 총체성의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의 전체로 규정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네요. 저는 별 생각없이 전체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렇게 쉽게 쓸 수 있는 말이 아니었던 듯해요. 함께 좀더 얘기해봐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