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

10.9 니나노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9-10-05 14:42
조회
75
191009 니나노 공지
 親が子を育てるのは一般に本能的で自発的な愛情によるものだが、子供が親を養うのはモット義務的で、どうしても親の方が歩がわるい。
子供を育ててやったことは、恩にきせる性質のものではないようだ。どの人間でも、子供の時は親に育てられ、自分が親になるとその子供から至当な愛情の報いをうけないというこれも定めのようなものだ。報われるものは義務でしかない。そういうものだということをハッキリ心得ておく方が何より無難であろう。老いては子に従え、と古い諺が庶民生活の中では長く生きてきたものだ。
부모의 자식 양육은 대개 본능적이며 자발적인 애정에 의한 것이지만, 자식의 부모 봉양은 훨씬 의무적이고 아무래도 부모 쪽이 불리하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은혜를 받으려는 성질의 것이 아닌 모양이다. 어떤 인간에게도 어린아이 때는 부모에게 양육되고 자신이 부모가 되면 그 아이에게서 지당한 애정을 보답 받지 못한다는 것은 정해진 일인 듯싶다. 보상으로 받는 것은 의무뿐이다. 그런 점을 확실히 마음에 두고 있는 편이 아무래도 무난할 것이다. 서민 생활 사이에는 나이 들어서는 자식에게 따르라는 옛 속담이 오랫동안 전해지고 있다. (사카구치 안고, 부모를 버리는 세상親が捨てられる世相 (1952))

안고를 읽다보면 가족에 대해 감상적으로 생각할 여지는 정말 조금도 없습니다. 그는 무척 솔직하게 부부, 부자,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와 자신의 관계를 고찰합니다. 안고의 시대에는 부모가 버려지는 일이 사회문제가 된 모양인데요, 안고는 이에 대해 개탄하거나 동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인간이 생겨먹은 것에 대해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요. 부모는 자식을 본능적으로 사랑하고 돌보려 하지만 자식은 아니다, 자식이 부모를 돌본다면 그건 의무감에서다, 그러므로 자식에게서 애정을 돌려받으려 하는 것은 단념하는 것이 낫다.
안고의 말은 ‘포기하면 편하다’ 같은 체념과 허무주의일까요? 하지만 안고는 애초에 ‘포기할 것’ 같은 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나름대로 인생을 계획하고 설계하며 살아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꼭 이루어지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부모로서 자식에게 애정을 쏟은 다음 그것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또 버려지면 개탄하게 되죠. 안고는 자식에게 버려질 가능성이 늘 있다는 것, 그 조건을 먼저 인정하고 나서 자식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자식은? 안고는 자식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번에 번역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선민샘의 ‘그러므로 자식의 부모 봉양이야말로 윤리의 문제다’라는 발언이었습니다. 부모는 본능에 따라 자식에게 애정을 줄 수 있지만 자식은 아니다. 그렇다면 자식은 부모를 버려도 되는가? 여기에서는 자식의 윤리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부모를 버리는 것도 그렇다고 억지로 봉양하는 것도 아닌 방식으로 어떻게 부모와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문제는 자식에게 있는 것이죠.
유교에서는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문제보다 자식의 부모 봉양을 더 강조합니다. 바로 孝사상입니다. 이것이 처음에 접할 때는 부모자식간의 위계를 강요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유가가 인간을 보는 관점을 생각해보면 孝를 강조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유가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항상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공동체적 존재로 보니까요. 그 공동체 안에는 당장 자신에게 이로운 사람만 포함되지 않습니다. 나에게 완벽하게 이로운 사람만으로 이루어진 관계는 없으니까요. 공동체에서 위험한 것은 당장 보탬이 안 되는 것보다 자신과 다른 생활과 생각을 지닌 타자들을 밀어내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유가는 계속 강조했던 것 아닐까요? 그러니 인간이 만나는 가장 가까운 타자인 부모에 대한 윤리로서 孝를 강조한 것이고요. 안고를 읽다보니 갑자기 효도하라!는 유교 강령이 고깝게 들리지만은 않는 매직^^
다음에는 <부모를 버리는 세상> 나머지를 읽을텐데, 안고는 아무래도 이 문제를 국가와 전쟁에 대한 차원까지 확대해서 보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안고는 이 부모를 버리는 세상에서 또 어떤 ‘타락’의 지점을 발견했을지, 계속 읽어보겠습니다~

다음주는
<부모를 버리는 세상> 나머지 번역할 예정이고요, <아이의 부모됨>을 읽겠습니다.
그 다음 번역은 순서를 바꿔서, <문학의 고향>을 읽겠습니다.
과제는 첨부파일을 봐주세요~
수요일에 만나요//
전체 1

  • 2019-10-07 14:20
    부모를 저 무수한 타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볼 수 있을 때에만, 부모 봉양은 비로소 윤리적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부모가 있어도 아이는 자란다"에 이어, "다른 타자를 돌볼 수도 있지만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이 타자로서의 한 인간, 부모를 돌본다" 역시 안고의 무시무시한 윤리론을 보여줍니다.
    계속해서 자신의 고향을 뛰쳐나갈 수 있느냐의 문제.
    당신이 어디에서 윤리의 지점을 만들고 있느냐의 문제. 여기서 왜 안고가 굳이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었는가, 하는 점도 연결지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