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키와 글쓰기

11.26 소세키 세미나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6-11-22 19:37
조회
232
11.26 청소 공지

 

이번 시간은 <문>을 읽었습니다. 수경조는 소스케 부부의 행태에 답답해 죽어가는 한편 오요네와 시동생의 관계가 매우 묘했음을 확인하는 열띤 토론을 했답니다. 그 관계에 동정을 표하거나 귀엽다고 표현한 누군가도 있었고, 답답함을 견디다 못해 때려주고 싶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재밌게 이야기 했던 것 같습니다. 역시 누군가의 답답한 이야기를 까는 것만큼 즐거운 시간은 없는 것입니다ㅎㅎ

저는 대체 소스케가 언제 작은집을 가는 것인가? 그것만 계속 바라며 책을 읽었던지라 마지막의 그 이도저도 아닌 결말에서 확 질려버렸던 것 같아요. 산문에 다녀와서 얻은 결론이라고는 '혼자 열고 들어와라'라는 것인데, 소스케는 그걸 못하고 문 앞에 서 있습니다. 막연한 불안감만 계속 유지한 채로 말입니다.

우리는 불안감을 떨쳐 버리기를 원하고 또 누군가가 불안에 떨며 아무것도 못하면 그걸 참지 못하고 뭐라도 하라고 아우성치고는 합니다. 인터넷에서 '고구마'성 이야기를 보면 '사이다'를 달라고 난리인 댓글들이 줄줄이 달리는 것만 봐도 그래요. 빠른 국면 전환을 원하고 어서 그 답답한 상태를 끝내버리라고 종용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게 읽습니다. 그 불안이 이어지는 것을 너무 잘 이해하는 것입니다. 소스케와 오요네의 속없는 행동이나 자폐적으로 보일만큼 친밀하면서도 서로에게 터놓지 못하는 관계에 답답함을 느끼는 것도 그런 맥락인 것 같아요. 그들이 최선을 다해 국면 전환을 유예하고, 또 불안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니까 더 답답하면서도 재밌게 읽었던 것 아닐까요.

저는 소설에서 치과의사가 괴저壞疽를 표현하는 것이 인상 깊었어요. '완전히 썩은' 상태인데 그 썩은 것을 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통증을 느끼게 하는 신경을 잘라내고 다시 그 썩은 상태를 그대로 덮어버리는 처방이 주어지는 현상이요. 그건 결코 썩은 이를 치료하는 방법이 아니라 그 썩은 이라도 어떻게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처방인데요. 소세키가 직접적으로 삽입한 치과장면이 소스케의 불안, 그리고 그 불안을 언제까지고 유지하는 것을 잘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뽑아버리면 개운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더 큰 위험을 초래할지도 모르는 상태. 그렇다고 계속 그대로 있자니 언제까지 속에서 썩어가서 언젠가 닳아 없어질 것이 예고된 상태 말입니다.

치과의사는 간단하게 계속 썩어가는 이를 가지고 살라고 처방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몸은 그렇게 닳아 없어질 때까지는 어떻게든 유지해서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스케는 자기 삶에도 비슷한 처방을 내린 것 같아요. 그래도 이 상태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자기만은 계속 유지하겠다는 선택 말입니다. 소스케는 작은집에 결국 가지 않았습니다...다시 생각해보면 소스케는 어영부영 하다가 작은집을 못 간 게 아니라 확실히 작은집을 안 가겠다고 선택한 것 같아요. (결국 작은집은 발등에 불 떨어지고 의사에게 당장 발치하라고 요구할 고로쿠가 가버렸던 것.) 불안이 삶을 갉아먹을 것을 예견하더라도 직접 삶의 문을 열고 들어가지는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다음 시간은 <춘분 지나고까지> 읽어옵니다.

간식은 옥상언니, 감자.

다음시간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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