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키와 글쓰기

<춘분> 후기-란다조

작성자
란다
작성일
2016-11-28 23:06
조회
270
뒤돌아서면 다 까먹고 마는 기억력. 건화가 아파서 결석하여 우리조는 매번 n-1ㅠㅠ, 건화야, 건강하게 돌아와라.

<춘분>은 크게 두 방향으로 이야기가 나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게이타로에 집중하느냐, 스나가에 집중하느냐.

감자는 게이타로에 빠졌더라구요. 자극을 쫓아가면서도 열정적으로 그 끝을 보지 못하고 끝내는 무기력함을 느끼고마는 게이타로에게서 감자는 감정이입하고 있더라구요. 그건 아마도 감자만의 감상은 아니겠죠. 감자가 인용하고 있는 부분에 저도 많이 공감했는데, "어느 것이나 대머리를 붙잡는 것처럼 세상은 전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바둑을 두고 싶은데 바둑 두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왕 보고 있어야 한다면 좀 더 재미있는 파란만장한 바둑을 보고 싶었다."

게이타로는 자극과 호기심을 찾아 도시와 일상의 '탐정'으로 작품을 끌고 가지만, 그것은 결코 소설다운 소설은 되지 못합니다. 단조로운 일상을 드라마틱하거나 일견 막장으로 보이는 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소세키의 작품에는 항상 출생의 비밀이나 불륜 및 사랑과 전쟁에서 다룰만한 것들이 흘러넘치지만, 그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빵 터지지는 않죠. 풍선처럼 부풀게 해놓고 조금씩 공기를 빼는 듯한 내용으로 가는 건, 왜일지ㅠㅠ. 게다가 몰랐을 때는 뭔가가 있는 듯해서 기를 쓰고 주목하지만, 한편으로는 알고 나면 별게 아니란 걸 알게 되죠. 그래서 차라리 결말이나 진실을 알지 못하고 상상으로 남겨두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런 것들이 지금의 청년들이 소세키의 작품에서, <춘분>의 게이타로에게서 느끼는 현대성 같은 거겠죠? 감자가 좀더 자신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서 소세키의 작품을 자기 것으로 읽어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잠시 했어요. 감자야, 힘내.

이외에 란다는 스나가에게 빠졌더라구요. 사촌 치요코와 밀당 아닌 밀당을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사랑이니 연애니 하는 '자연'을 믿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바로 그가 부모과의 관계에서 즉 혈연관계라고 생각했던 모친이 계모였기 때문이죠. 엄마가 자신의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 그것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스나가는 항상 자기의 존재 자체가 결함이라고, 사랑받기에 부족한 인물이라고 항상 생각합니다. 이런 상태이니, 치요코에게 들었던 '가련한 마음'이라든가, 질투라든가, 두근두근이라든가 하는 걸 인정할 수 없는 거겠지요. 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여전히 '자연'의 태풍은 붑니다. 그럴수록 스나가는 더 자신을 다지죠. "내 머 리는 가슴을 억제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그런데 이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에서 스나가는 마음이 강한 자임에 틀림 없습니다.

스나가는 심장과 머리, 자기와 외부, 자연과 사회(문화) 사이에서 방황하고 갈등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후>의 다이스케의 경우 이 대립구도가 분명했는데 비해, 스나가의 경우는 대립구도가 분명하지 않고 모호하고, 하나로 정리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우리네 삶이란, 심장과 머리가 대립하면서도 공존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하나로 정리하려는 것이나 이것 저것으로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것처럼, 소설도 근대적 소설로 보자면 어이없을 정도로 끝이 나고 말지요.

가슴과 머리가 매일 싸우고 있는 스나가. 숙부 마쓰모토가 말한 것처럼 스나가에게 필요한 것은, 바깥을 향한 시선입니다. "안으로 안으로 향하는 삶의 방향을 반대로 돌려서 바깥으로 똬리를 풀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스나가가 여행지로 가서 했던 보내왔던 편지의 내용처럼, "생각하지 않고 보고 써보내주었던" 것에 잠시 의미부여해 보기도 합니다.

 

 
전체 4

  • 2016-11-28 23:36
    란다 여사, 어인 일로 이리 빨리? 그나저나 건화는 존재 자체가 n-1이구나...... 나는 한숨이 날 뿐이고....

  • 2016-11-29 00:38
    게이타로에게서 나타나는 경탄, 놀람에 대한 끌림과 냉소의 기묘한 공존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다이스케에게서, 돗포의 <쇠고기와 감자>에게서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변주되는.) 의도치않게 항상 -1이 되고마는군요ㅠㅠ죄송합니다.

  • 2016-11-29 10:52
    언니 왜 여기서도 언니를 3인칭으로 불러요? 자꾸 왜 이래? (부릅-!) / n-1이라는 작명은 누구 센스? 맘에 든다 ㅋㅋ

  • 2016-11-29 13:56
    스나가를 마음이 강한 사람으로도 볼 수 있군요? 그런 의미에서 건화도 힘내. 다음에는 마음으로 배탈을 이겨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