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Q

푸코 3차시 수업후기

작성자
배현숙
작성일
2017-10-28 21:46
조회
130
급하게 올리느라 뒤죽박죽 정리가 안되어 길어지기만 했습니다.  부디 혜량하시옵길!!

제도의 변화 - 복잡한 권력관계들의 투쟁의 결과


<감시와 처벌> 2부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신체형이 소멸되고 감금형으로의 변화가 일어났는가?’입니다. 그 핵심은 3부와 4부에 드러나 있고 오늘 배운 2부는 그 과정으로 가는 과도기에 대한 이야기지요. 푸코는 아주 다양한 자료들을 (제가 느끼기에)난삽하게 인용하면서 신체형에서 감금형으로 가는 그 과정에서 벌어진 권력관계의 재편과 변화들을 이야기합니다. 신체형이 감금형으로 가게 된 것은 신체형이 이미 그 내부에 문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즉 신체형이 가지는 효과는 있었지만 그것이 감수해야 하는 위험 요소들에 대한 인식이 커짐에 따라 그에 대해 비판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샘은 이 비판이 어떤 사안에 대해 또 다른 올바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그런 비판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고를 우리의 물질적 조건- 복잡한 삶의 토대 위에서 구성해냅니다. 즉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세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출현시키는 것이지요. 그 토대가 바로 권력관계인데요, 샘은 촘촘한 권력관계들로 짜여 있는 것이 이 사회이고, 그 세계를 그물처럼 덮고 있는 것이 권력관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개인이란 그러한 권력관계의 산물이고, 따라서 우리가 어떤 정치적 입장을 비판한다고 할 때 그 비판이 누군가 올바르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는 올바름이 다르기 때문에 비판하는 식으로 단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나를 구성하고 있는, 혹은 내 관념과 내 판단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굉장히 복잡한 힘 관계, 즉 욕망이나 판단, 경제적인 이해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어떤 사안에 대해 비판하고 판단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푸코가 2부에서 말하고자 한 것도 그것입니다. 신체형을 비판하는 사람들, 개혁론자들은 단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생각이나 인간의 고귀함이라는 관념 때문에 신체형을 비판하게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걸 비판한 자들의 아주 복잡한 토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푸코는 그들의 비판을 출현시키는 복잡한 권력관계들을 계열화해서 분석해내고 있는 것이지요. 사법 권력과 부르주아 계급들이 가진 서로 상이한 이해관계들은 한꺼번에 뭉뚱그려 말할 수는 없지요. 그래서 신체형에서 감금형으로 제도가 변한다는 것은 그것은 권력의 중앙처리 장치가 있어서 그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건 나쁜 거니까 없애고 저것으로 하자고 결정내리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는 감시와 처벌(1975), 성의 역사(1976) 사이에 꼴레쥬 드 프랑스에서 강의한 ‘비정상인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라는 담론에 대해 쓴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를 함께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법적 주체의 탄생


따라서 어떻게 신체형이 소멸되고 감금형으로의 변화가 일어났는지 살피기 위해서는 신체형에는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가? 그 문제제기를 하는데 있어 얼마나 복잡한 힘 관계들이 있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즉 그 힘 관계들이 재편되고 복잡하게 작용하는 가운데에서 기존의 신체형에 대한 다양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졌다는 것이지요. 샘은 이것들을 살피기 위해 그 시대가 가지고 있는 에피스테메의 차원과 그것이 권력관계와 어떻게 연동되어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법 개혁론자들이 탄생시키고 싶어 했던 것은 처벌을 통한 ‘법적주체’였다지요. 법적주체는 법과 계약이라는, 그 사회를 유지할 수 있기 위해 이러저러한 것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약속함으로써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법적 주체가 법을 어겼을 때 형벌이 정당화되는 것이지요. 그들을 처벌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들을 법적주체로 만든다는 묘한 이중성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까 어긴 법을 처벌한다는 자체가 이미 그들을 법적주체로 만드는 셈입니다. 이렇게 법과 계약으로 사회를 구성하기 시작하면서 근대 국가가 형성이 됩니다. 사회계약론이 등장하던 바로 그 때가 국민국가의 형성시기였다지요.(‘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전쟁 모델로서의 권력


그런데 푸코는 사회를 법과 계약의 모델에 의해서 보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전쟁 모델로 봐야 한다고 하지요. 저는 이 부분이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권력집단들끼리 암암리에 벌이는 전략 전술의 투쟁이 눈에 환하게 보이는 듯하지 않습니까? 푸코는 사법적 모델로 보게 되면 그 법이나 계약이 있다는 걸 이미 전제하고 그것을 위반한 것으로 보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권력 이미지, 즉 금지하고 억압하는 모델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된다고 말합니다. 권력이란 전쟁모델을 통해서 봐야 한다고 말하지요. 사회 속에는 끊임없는 전략과 전술을 통해서 계속 목표를 수정하고 달성하고 변경하면서 싸워나가는 다양하고 구체적인 집단들이 있을 뿐이라는 겁니다. 그들 사이에 일치하는 이데올로기란 없지요. 끊임없이 자기 집단들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전략과 계급적 이해관계를 어떻게든 관철시키고자 하는 투쟁만 있는 것이지요. 물론 거기에는 자신들의 전략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구체적인 기술, 전술들이 있을 테지요. (선거나 보이콧, 파업, 태업 등) 사회를 권력모델, 즉 억압, 금지로 보게 되면 끊임없이 억압, 금지하는 힘이 먼저 있게 되고, 그것에 대한 반작용만을 보게 되지만, 사회를 전쟁모델로 보게 되면 상이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끊임없는 투쟁을 하는 다양한 집단들이 있을 뿐이라는 거지요. 그 집단들 사이의 끊임없는 전략과 전술의 수정과 집단과 집단사이의 결합과 분열들이 역동적으로 계속되는 것, 그것이 사회라고 푸코는 말합니다. 그 과정 속에 우리가 흔히 권력이라고 생각하는 중앙정부, 왕, 대통령이라는 사회 집단들도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왕의 권력을 과시하는 것으로서의 신체형이 어느 날 사라졌다는 것은 특정한 어느 집단의 휴머니즘과는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아주 복잡한 각자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수없이 전략과 전술을 세워 나가는 집단들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적 관계들 속에서 감금형이라는 게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써 자리잡아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2부에서 읽어야 할 것은 권력이 어떻게 작동 하는가에 대한 것이라는 말입지요!


권력, 권력관계, 그리고 주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권력의 상을 깨는 것, 우리가 이 역사적인 푸코의 연구 속에서 해야 할 일은 바로 그것입니다. 사회의 권력 관계들이 그 역동적인 과정 속에서 어떤 투쟁을 벌이는지, 또 그런 과정 속에서 어떤 것이 제도화가 되고 그 효과가 만들어지는지, 그 효과가 또 어떤 주체를 생산해 내는지 읽어내야 합니다. 권력은 억압하고 금지할 때조차도 무언가를 생산해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 범죄자를 어떻게 다루고 그 범죄자를 다루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의 깊게 읽어내야 할 것은 ‘어떻게 범죄라는 것이 다르게 규정 되는가’, ‘그 범죄가 다르게 규정되는 복잡한 권력의 관계는 어떤 식으로 작동 하는가’, 그리고 그 전쟁모델로서 작동하는 ‘권력관계의 결과로 어떻게 근대적 주체가 탄생하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감시와 처벌>이 우리에게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근대적 주체의 탄생입니다. 그리고 그 근대적 주체는 하나의 노말(nomal)한 개인의 탄생이지요. 정상적 인간, ‘규범적 인간의 탄생’입니다. 우리는 왜 동일한 나이대로 구별되어 동일한 학교에서 동일한 교육을 받고 있는가? 우리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몇 세까지는 뭘 하고 몇 세까지는 뭘 해야 한다는 정상성의 척도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규범, 표준, 척도, 우리는 여전히 이런 것들이 중요하고 어쩌면 더 촘촘해진 사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인간의 몸도 수치와 규준에 의해 관리합니다. 지적인 척도도 있지요. 대체 정상성이란 기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 규준의 작동은 어떤 개인을 생산해내는가? 이것이 푸코가 역사에서 하고자 한, ‘지금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라는 걸 분석한 작업이었습니다. 정상성을 통해 만들어지는 nomal한 개인, 이게 근대적 주체라는 건데요, 푸코는 근대적 주체의 형성과정을 권력이라는 관점을 통해 봅니다. 근대적 주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본다는 것은, 그 결과 자체가 굉장히 역동적인 권력관계에 기반한 결과이기 때문에, 그 역동적 권력관계 속에서 어떤 힘을 구부릴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함께 제시하는 겁니다. 우리가 그런 효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그런 효과를 가지고 우리가 계속 생산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즉 우리 자체가 이미 하나의 효과라는 겁니다. 나 스스로가 어떤 앎의 실천, 어떤 특정한 힘의 실천을 통해 끊임없이 그런 주체로 나 자신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누가 억압해서 근대적 주체로 생산된 게 아니라, 이미 나 스스로 작동하는 논리구조, 그런 내면화의 과정에 의해서 우리 자신을 우리 스스로가 근대적 주체로 생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생산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만약에 권력에게 우리를 이렇게 만드는 힘이 다 집중되어 있다면 이런 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도 권력에게 있겠지요. 그러나 그건 아니라고 푸코는 말합니다. 아무리 센 권력이라도 주체를 다르게 생산할 수 있는 여지는 또 주체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이 때의 주체에게 있다는 말은 주체 개인을 의미하는 말은 아니지요. 주체가 생산되고 있는 권력이 작동하는 구체적 장 속에 있는 것이지요. 힘이 작동할 때, 하나의 힘이 커다래서 다른 힘에게 일방적으로 작동하는 그런 힘은 없다고 말합니다. 권력관계라는 힘 관계는 언제나 상호적이라는 것이지요. 세고 약한 힘이 계속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약한 힘이 센 힘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센 힘은 이전처럼 세게는 작동하지 않을 여지가 있다는 겁니다. 이게 상호성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샘은 우리가 아무리 약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권력관계의 역동성을 생각하면 억압과 금지의 방식조차도 수정을 계속하면서 가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샘은 그 권력, 힘관계의 상호성을 좀 더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 ‘통치성’ 개념이라고 하셨지요. 푸코는 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시대를 조금 더 앞으로 가서 기독교에 작동되었던 ‘사목권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고 합니다, 이 사목권력은 목자가 양떼를 억압하는 게 아니라, 목자는 양떼를 보호하는 것이지요. 양떼는 목자를 꼭 따라가지 않아도 되지만 양떼가 목자로부터 이탈하는 순간 손해죠. 목자는 양을 인도하는 자로서 양은 어쨌든 그를 따라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지요. 사목 권력의 특징은 전체로서의 양떼를 보호하면서 이탈하는 개개의 양까지도 다 감시하는 것입니다. 샘은 이 사목 권력의 형태를 보면서 통치성 개념과 연관 지어 권력의 상호성을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하셨지요.< 감시와 처벌>에 나타나는 권력은 위에서 계속 억압하는 권려고가 피억압자 같은 구도로 오해할 수 있게 하는 구절이 종종 등장해서, (그래서 푸코에게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지요,)  푸코는 그런 오해의 소지를 없애려고 꼴레쥬 드 프랑스 강의에서는 권력이라는 말 대신에 통치성이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사목 권력은 그 작동방식이 억압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권력을 내면화한다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좋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될 때입니다. 나를 끌고 가는 양치기가 내게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면 안따라가겠지요. 저자는 나를 억압하는 자가 아니라 나를 인도하는 자다라는 사실이 내면화될 때 양은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목 권력은 권력의 상호적 메커니즘을 잘 보여주는 개념이지요.

어쨌든 권력이란 게 복잡한 관계로부터 계속 변형되는 것이라는 걸 보아야 합니다. 어떤 우발성을 계기로 해서 권력관계는 계속 진동합니다. 신체형도 마찬가지죠. 신체형에 따르는 여러 위험한 요소들이 우발적으로 퍼지며 그걸 계기로 기존의 권력관계들이 요동치고, 지식담론도 변하며 그 관계들이 다르게 재편되는 과정에서 신체형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그렇게 또 다른 처벌 방식을 유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종을 내면화한 주체


푸코는 권력을 생산이라는 관점에서 봅니다. 이 말은 ‘권력이 무엇을 생산하는가’라고 질문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 생산의 결과로서 어떻게 기존의 힘 관계들이 달라졌는가, 끊임없이 생산하고 생산되는, 상호작용하는 역동적 권력관계의 장이 사회지요.

푸코 철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권력이라면 주체의 문제는 이 권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연관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일등을 욕망하게 된 걸까요? 왜 우리는 달리지 말라고 해도 끊임없이 달리며 경쟁하는 걸까요? 이 메커니즘은 억압만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계속 달리게 만드는가 묻는 질문에 억압하는 권력은 어떤 것도 대답하지 못합니다. 샘은 푸코의 권력의 의미가 갖는 함의가 그런 점에서 매우 실천적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억압하는 권력이 왜 생기지?’ 라고 묻지 말고 ‘억압하는 권력을 우리는 왜 욕망할까?’ 라고 질문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왜 우리는 그토록 기계적으로 작동되는 학교에서 잘하겠다고 발버둥치는 걸까?’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질문하지 못하는 우리들은 이미 그런 권력관계를 내면화한 주체인 셈입니다.

샘은 ‘주체’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함께 들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복종’과 ‘주관적’이라는 의미. 즉, ‘복종 한다’라는 말은 이미 ‘복종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럴 때 주체가 되는 것이지요. 복종을 자기 것으로 만든 주체. 참 의미심장한 말 아닙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새 ‘복종을 내 것으로 내면화한’ ‘주체’로 생산된 것이지요. 아니, 스스로 생산한 거네요.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스스로 재생산하고 있지 않습니까?

샘은 주체라는 말을 언표 행위 주체와 언표 주체의 일치라는 말로 설명하셨습니다. ‘국민이 어떠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를 국민에 포갤 수 있다면 이를 언표 행위의 주체라고 합니다. 즉 언표행위의 주체를 언표주체(국민)에 포갤 수 있을 때 주체가 만들어진다는 것이지요. 이게 알튀세르가 말한 ‘호명’ 개념입니다.(학생! 하고 부를 때 네!라고 대답하는 것) 즉, 주체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능동적으로 복종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능동적으로 예속화 될 때 주체로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이 말 디게 의미심장합니다! 능동적, 예속화! 푸코는 그 주체를 형성하는 베이스가 바로 권력관계라고 봅니다. 주체는 복종을 자기화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주체가 됩니다. 말하자면 어떤 힘에 대하여 네, 라고 대답할 수 있는 게 내면화 되어야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 힘, 누군가 불렀을 때 네! 라고 대답할 수 있는 그 힘을 가지고 있는 주체를 길들이는 건, 그 주체가 살아가면서 내면화한 다양한 힘 관계, 권력관계들이라는 것이지요.

학교 시스템으로 다시 얘기해 볼까요? 학교 시스템이 재생산되는 것은 그 학교 안의 모든 사람이 일등 해야지 라는 생각을 가졌을 때라는 것이지요. 즉 학교 시스템은 이미 복잡한 권력관계의 산물인 것이고, 그 복잡한 권력관계의 산물로서의 학교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내면화하면 그 안에서 일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그렇게 내면화된 주체에 의해 그 시스템은 계속 유지되는 것이지요. 결국 주체를 만들어내는 건 권력관계인 것입니다.

샘은 푸코 철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권력의 문제인데, 이 때 권력은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 주체를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권력관계의 배치가 달라지면 그 권력관계의 배치에 따라 만들어지는 주체의 양식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주체와 양식. 그렇다면 근대 사회의 주체를 만들어 내는 양식은 뭘까요? 이런 질문에는 그것 이전에 주체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함의가 들어있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거꾸로 ‘우리는 어떻게 다른 주체와 양식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사회는 언제든지 그 사회의 코드를 가지고 특정한 주체를 생산하게 되어있습니다. 복잡한 권력관계들에서 생산하는 주체들이 있지요.

그런데 푸코는 사회는 주체를 만들어 내는 노말한 규준을 함께 생산해 낸다고 말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주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체를 만들어내는 규준에 의해 만들어지듯, 근대에 작동했던 규준은 정상성, 규범성, 이런 것들이었지요. 자본주의의 초기는 벽돌 같은 인간을 만들면 되었지만(교체 가능한) 신자유주의는 그런 주체가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창의적 인간을 요구합니다. 물론 이때 창의적 인간은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해 내는데 창의적인’ 이라는 뜻이지요. 어떤 가치도 창출하지 않는 혁명적 인간의 창의력은 신자유주의에서는 더 이상 창의력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이제는 공부만 잘 하는 규범적 인간을 원하지 않는 시대지요.

어쨌든 푸코가 말하는 새로운 주체란 그 사회의 코드에 따라 생산되는 보편적 주체가 아닙니다. 샘은 푸코가 말년에 ‘새로운 실존의 양식’이라고 부른 ‘너의 윤리’란 ‘소규모 집단에서 자기 훈련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자기 윤리, 결코 그 사회의 가치척도로 환원될 수 없는, 그 집단만의 고유한 윤리’였을 거라고 말씀하셨지요. 푸코는 끝까지 보편 윤리를 거부합니다.


일반화, 일반화된 처벌


샘은 ‘처벌을 일반화했다’라고 할 때의 일반화는 군주권력이 너무 센 데 대한 전술적 차원의 문제제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일반화는 신체형의 처벌을 행사할 때 생기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 또 지식의 차원에서도 투명하게 앎의 차원에 배치가 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데 대한 문제 제기 뿐 아니라 군주와 그 측근을 중심으로 한 권력 관계가 다른 부르주아 세력들의 등장으로 더 이상 작동할 수 없어 느슨해진 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신체형이 사라졌다는 건 범죄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겁니다.

샘은 법이란 것은 어떤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겠다는 의미인 것이지 범죄가 있어서 법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일반화된 처벌은 범죄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처벌 자체를 아주 투명하게 표 위에 일람표로 만들어 인간의 위법행위나 범죄행위(법을 위반한 것으로 아직 규정하지 못하지만 사회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간주할 수 있는 행위)들까지 다 처벌할 수 있도록 표 위에 위치시킴으로써, 사람들이 어떤 행위를 하면 어떤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머릿속에 자동적으로 떠올릴 수 있게 한 것이라고 하셨지요. 이는 '범죄와 형벌의 린네적인 체계', '형벌의 기호학'을 활용하여 효과적으로 가혹하지 않다는 인상을 심어주려 했던 것이지요. 또 신체형을 비난했던 것은 군주의 무제한적 권력과 민중의 위법행위가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이지요.  새롭게 등장하게 된 권력 집단은 이 군주권을 제어하기 위해 처벌을 투명하게 하라는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이고, 이것이 바로 완화된 형벌제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형법 개혁론자들의 주장을 한 마디로 말하면 ‘형벌의 가시화’였습니다. 어떤 행위에 대해 받는 처벌을 그런 행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까지도 다 표를 보듯 투명하게 가시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들자는 것이었지요. 그게 ‘일반화’의 의미입니다. 이것은 투명화이자 보편화이기도 한 것이지요. 모두가 알 수 있게! 그러면 군주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없으니까요. 그 종합적인 앎의 체계 속에서 ‘기호’가 유통되도록 한 것입니다.

표상으로서의 기호, 그리고 기호처벌론


 ‘기호 처벌론’은 17세기 에피스테메의 문제와 연관된다고 하셨습니다. 샘은 <말과 사물>을 인용하여 고전주의 시대에 본질적인 것은 '해석'이 아니라 '질서'였기 때문에 기호들을 수단으로 사물들에 질서를 부과함으로써 지식의 모든 경험적 형식들을 동일성과 차이에 기초하는 지식으로 만들었다지요. 그래서 고전주의 시대 에피스테메는 ‘sign’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전주의 시대 기호는 그러니까 질서화의 핵심적인 도구인 셈이지요. 이 기호는 대상의 관념을 투명하게 표상- ‘represent’할 수 있습니다. 이 표상-기호들은 그 자체로 기호로 표상되지요. 그래서 고전주의 사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지도'라고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이 때의 사법개혁론자들은 어떤 범죄행위가 있다면 그 범죄행위에 대응해서 1:1로 처벌하는 것이 사람들 머릿속에 기호적으로 입력되기를 꿈꿨던 것이지요.


아무튼, 푸코 세 번 째 시간,

샘의 첫 번 째 강의는 푸코의 ‘권력’문제에 집중하여 권력관계와 ‘주체’의 문제를 강조하여 말씀하셨고, 그것과 연관 지어 신체형에서 감금형으로 넘어 가기까지에는 복잡한 권력관계들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어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 (저는 새겼습니다요.) 누군가 불쑥 나타나 그건 인간의 존엄성에 어긋나고~~ 블라블라~~ 해서 그렇게 형법제도가 바뀐 게 아니라는 말씀입지요.

2장의 일반화된 처벌과 유순해진 형벌은 <감시와 처벌>에서 중요한 규율 권력, 3, 4장으로 건너가는 과도기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걸 미리 알았더라면 머리털을 조금만 뽑으며 읽을 걸 그랬습니다!) 그 과도기의 난삽한 이야기들을 일일이 책장 펼치시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신 두 번 째 강의는 여러분들 각자 책을 보시며 차근히 복기하시라는 의미에서... 저는 이만 물러날까 합니다.

그럼 수요일에 뵙겄습니다! 더 이상 복종을 내면화하는 주체가 되지 않기 위해 3장 눈독 들여 공부하시길!! ^_______^ 와중 합장.
전체 2

  • 2017-10-30 11:10
    길다 하시지만 수업 내용을 그대로 가져와서 잘 요약해주셨네요. (전 안 되지만) 중간중간 보이는 굵은 글씨만 봐도 수업 때 흐름이 느껴지네요. 항상 선생님들 후기 보면서 이렇게 요약하고 후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렵습니다..... 일단은 열심히 복기하겠습니다!

  • 2017-11-01 08:18
    권력관계와 복잡한 이해관계~ 사건은 관계에서 만들어지는데 사건을 맞이한 우리는 쉽게 그 복잡성을 지우고 인과를 찾는듯요.
    푸코가 역사에서 찾는 그 복잡한 관계를 보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지만 후기 덕분에 좀 더 따라갈 맘을 내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