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Q

절차탁마Q 11월 8일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7-11-03 13:02
조회
81
벌써 푸코를 만난 지 4주가 지났네요! 그 시간동안 푸코의 매력에 더욱 빠져버렸습니다. 마냥 어렵기만 하진 않고 획기적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재밌기도 합니다!(책이 재밌어졌다니, 저한테 이건 엄청난 변화에요!) 게다가 점점 더 알고 싶어지네요.

예속적 주체화, 자발적 복종, 품행

우리는 흔히, 개개인을 구성요소로 갖는 사회의 모델이 계약과 교환이라는 추상적인 법률 형식에 의거해 있다고 말한다. 상업적인 사회란 개별적인 법적 주체의 계약에 의한 결합으로 표현될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은 가능할지 모른다. 사실상 17세기와 18세기의 정치 이론은 종종 이러한 도식을 따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와 같은 시대에 개인을 권력과 지식의 상관적 구성요소로서 만들기 위한 기술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마도 개인이라는 것이 사회의 이데올로기적표상의 허구적 원자일 수 있겠지만, 그것은 또한 규율이라고 명명되는 권력의 특유한 기술에 의해서 제조되는 현실의 모습인 것이다.()사실상 권력은 생산한다. 현실적인 것을 생산하고, 객체의 영역과 진실에 관한 의식을 생산하는 것이다. 개인과 개인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지식은 이러한 생산의 영역에 속한다.” - 302

우리는 스스로를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가지고 있고, 그런 우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가진 권력을 잠시 양도한 것을 ‘국가’라 생각하죠. 홉스의 ‘사회계약론’이 딱 이런 내용이죠. 사람은 본디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합의해서 탄생한 것이 사회, 국가라는 것이죠. 때문에 사회 혹은 국가는 개개인의 권리와 자율성을 지켜야 하고, 위법행위를 저지르는 사람은 사회 전체에 불이익을 주었으니 처벌해도 마땅하다고 여깁니다. 즉, 처벌하는 이유는 국가에 있지 않고 위법행위를 저지른 개인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푸코는 이런 생각을 뒤엎습니다.

푸코에 따르면, 어떤 개인도 ‘권력관계’ 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린 원래부터 ‘주체’가 아니며, 오히려 ‘주체’란 개념은 ‘권력관계’를 통해 만들어지고 생산됩니다. 3장 2부에는 특히 ‘제조’란 단어가 자주 나왔습니다. ‘제조(fabricate)하다’라는 개념은 여러 요소로 하나의 물건을 제조하는 모습을 뜻합니다. 즉, ‘개인’은 제조로 만들어지는 대상인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어떤 욕망도 사회와 연관돼있습니다. 사회라는 물질적 토대 위에 있기 때문에 어떤 개인도 사회와 연관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채운쌤이 이십대의 ‘흙수저’라는 계급성에 대해 얘기해주셨습니다. 한국의 이십대는 흔히 내 돈이 넉넉하지 않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흙수저’라 하며 사회 전반에 대해 조소를 보이곤 합니다. 하지만 흙수저의 욕망을 잘 살펴보면, 흔히 말하는 ‘금수저’, 흙수저와 달리 돈에 구애받지 않는 부유한 계층의 이십대와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니까 금수저들처럼 편안하고,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삶을 누리고 싶다는 점에서 흙수저의 욕망은 금수저의 욕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욕망이 비슷하다는 건 결국 그만큼 공통된 물질적 기반 위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만약 흙수저의 욕망이 노동자 계급성에 가깝다면, 노동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했겠죠. 하지만 편한 것을 누리고 싶어 하고, 정작 싸워야 할 지점에서 싸우지 않는 모습을 보면, 흙수저의 욕망은 노동자가 아니라 부르주아에 더 가까운 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흙수저들을 문제 삼는 지점도 돈이 없음이 아니라 돈이 없는데도 금수저와 똑같이 욕망한다는 것이겠죠.

그런데 ‘주체’로 만들어진다는 게 왜 ‘예속화’의 과정일까요? 푸코의 이러한 문제제기는 지금도 유효한 것 같습니다. 푸코는 책에서 신체가 유용해지는 것은 곧 복종을 내면화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도 더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이 있기를 요구하고 있고, 그에 발맞춰 청년들도 ‘제조’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체’가 되기 위해선 먼저 개인을 대상으로 권력이 작동한다는 점에서, ‘주체화’는 곧 ‘객체화’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품행’ 얘기를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푸코가 주목한 권력의 또 다른 지점은 ‘억압’이 아니라 ‘생산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 작동방식이 이전시대와 다른 것은 대상으로 삼고 있는 ‘신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전시대에서는 죄수의 전체로서의 신체였다면, 근대권력에서는 그 대상이 죄수를 넘어 학생, 군인, 환자 등등의 신체를 아주 세밀하게 나눠서 그 각각의 부분에 촘촘하게 작용합니다. 그럼으로써 특정행위를 하는 것이 좋은 것으로 여겨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근대에서 작동되는 권력은 항상 지식의 생산과 관계돼있습니다. “그것이 신체를 더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방식이다”와 같은 식으로 말이죠. 그 예로 ‘사목권력’이 있습니다. 양은 단지 목동의 인도를 따르기만 하지 않고 목동의 인도를 따르는 게 더 좋은 것이라고 여기죠. 목동을 따라가야만 늑대라는 위협으로부터 목숨을 지킬 수 있고, 맛있고 풍족한 풀과 물을 섭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들뢰즈는 그동안의 위대한 철학자들이 위대한 까닭은 어떤 위대한 진리를 발견한 게 아니라 철학에 대한 이미지를 바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플라톤은 자연철학이 주를 이루었던 당시의 철학에서 ‘이데아’를 얘기하고 철학과 국가 통치를 연결시켰습니다. 스피노자는 자연, 신과 같은 여러 철학적 개념들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었고, 니체는 철학적 틀 자체를 깨버렸죠. 푸코 역시 역사학과 철학을 넘나듦으로써 그 둘의 경계를 허물었죠. 그리고 어떤 국지적인 사유도 보편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생각해보니 지금껏 만난 모든 철학자들은 새로운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것을 달리 말할 뿐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철학한다는 건 사유를 바꾸는 것이 전부일 텐데 왜 계속 새로운 해석에만 매달리는지....... 스스로 참 부끄럽더군요. ㅎㅎ;; 몇 번을 들어도 계속 찔리는 대목입니다. 푸코를 통해서 사유의 균열에 태클을 걸어야 하는데, 생각한다는 게 참 힘들고 쉽지 않네요. ^^;; 일단 요약도 쉽지 않고요. 많은 내용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걸 정리해서 올리기에도 제 능력에 한계가 왔군요~ ㅋㅋㅋㅋㅋ

이제 그 유명한 판옵티콘이 나옵니다. 모두 이번 요약도 건투를 빕니다. ㅎ 요약은 쉬울 줄 알았는데, 웬걸 이것도 어렵네요. 언제 글과 친해질 수 있을까요? 하하. 4부 1장까지 정리해오시면 됩니다~ 이번 주 후기와 다음 주 간식은 길례쌤과 소영쌤입니다.
전체 1

  • 2017-11-04 12:57
    '사유의 균열'이라니...그동안 믿고 살아온 세월의 무게가 참 야속하네요. 습이란게 놀랍게도 위급한 상황에선 자신도 모르게 같은 동작을 생성합니다. 그러다면 사유의 습도 그렇게 일순간에 만들어지고 쉽게 작동하지는 않겠지요~ 규문 공간의 힘을 믿어보시길 ㅋㅋ 그 곳에서 만들어지는 사유의 습이 분명 서서히 균열을 만들고 어느날 대폭발을 가져오리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