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M 숙제방

이방인 수정

작성자
정옥
작성일
2017-10-25 23:13
조회
17
절탁M/<이방인> 수정/171025/정옥

 

감정으로 확장되는 감각

뫼르소는 현실적이며 즉각적인 사람이다. 상황을 고려하기 보다는 자신의 상태에 더 집중하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가는 버스 안에서도 피곤해 내내 잠을 잤고, 빈소에서도 슬픔보다는 피곤이 앞서 눈물을 흘리지도 않고, 빨리 끝내고 돌아가 쉬고 싶어 한다. 밤샘을 견디기 위해 밀크 커피를 마시고 시신을 모셔 둔 곳에서 담배까지 피운다. 어머니의 장례식 때문에 사장에게 이틀의 휴가를 내는 것도 눈치를 보지만 현실에도 만족한다. 별 불평 없이 매사를 간단하게 결정한다. 미라의 결혼요구에도 그녀가 원하니까 할 수 있다고 하고, 레몽의 편지 대필도 써 줄 수 있는 거니까 쓴다. 그런 만큼 그는 감정보다는 감각에 더 민감한 사람이다. 엠마뉘엘에게 검은 넥타이와 상장을 빌리러 갔을 때 셀레스트가 슬퍼하며 함께 문간까지 바래다주자 이해하지 못할 정도이다. 장례식장에서도 엄마의 친구들이 슬퍼하고 페레스가 장례식을 따라 올 때도 그의 신경은 온통 쏟아지는 태양빛에 가 있었다. 이런 그의 무심한 태도가 아랍인에게 총을 쏘기에 이른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 후 마리와 함께 레몽 친구의 바닷가 오두막에 놀러 나왔다. 태양은 찍어 누르듯 세차게 쪼였고, 햇빛은 바다와 모래위에 부서지고 있었다. 마리와의 물놀이는 무척 즐거웠지만 마을에서부터 레몽을 쫒아온 아랍인과 시비가 붙어 레몽이 칼에 찔렸다. 다른 아랍 녀석이 옆에서 갈대 피리를 불고 있었다.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지만 뫼르소가 느끼는 것은 태양과 침묵과 샘물소리, 그리고 피리 소리였다. 오두막으로 돌아 왔지만 햇볕 탓에 머리가 꽝꽝 울리고 맥이 풀린 상태였다. 다시 바닷가로 나온 뫼르소는 바위 뒤 샘물을 찾으러 가다 레몽을 찌른 아랍인을 다시 만났다. 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해 한 걸음 앞으로 나섰고 그것이 문제였다.

 

다만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와 단도로부터 여전히 내 앞에 뻗어져 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타는 듯한 칼날은 속눈썹을 쑤시고 아픈 두 눈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바다는 무겁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왔다. 온 하늘이 활짝 열리며 비 오듯 불을 쏟아 붓는 것만 같았다. 나는 온 몸이 긴장해 손으로 권총을 힘 있게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권총자루의 매끈한 배가 만져졌다.(이방인, 민음사, p69)

감각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뫼르소는 자신의 경험을 믿으며 살았다. 새로운 경험 앞에서 그의 감각은 쏟아지는 태양의 열기를 감당하지 못하였다. 그 열기에 눈이 멀고 판단력이 흐려졌다. 온 몸은 긴장했고 감각은 조절력을 상실하고 그만 총을 발사하게 된다. 즉각적인 감각은 세밀함을 잃어버린다. 엄마의 나이도 모르고 마리의 결혼제안을 받아들일 때도 결혼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지 않는다. 파리로 승진해 가는 문제에도 승진이 무엇인지는 관심이 없고 다만 현실이 만족스러워 남기로 하는 식이다. 또 현실에서 정해지는 감정들은 자신이 느끼는 바를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인다. 어머니의 시신을 두고 밤을 세운 후 그들과 친근해졌다고 혼자 생각하고, 어머니의 시신을 다시 보기 거절할 때도 이유 없이 그냥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현실과 그의 행동 사이엔 거리가 생겨났고, 행동을 제어하지 못하였다.

결국 그는 사람을 죽였고 법정에 서게 되었다. 법정에서 뫼르소는 조금씩 자기의식을 키우기 시작한다. 처음엔 그도 형무소에 있다는 것을 실감히지 못한다. 욕정을 채우지 못하는 것, 담배를 제한 받는 것, 잠을 못자는 것의 불편함만 빼면 지낼만한 곳이었다. 그러다 마리가 면회를 오면서 갇혀 있는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게 된다. 형무소에서의 형언할 수 없는 침묵의 시간 속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재판이 시작되었다. 중요한 쟁점은 어머니의 장례식날이었다. 뫼르소의 살인이 계획된 살인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장례식날에 뫼르소가 슬픔을 느꼈는지 아닌지가 언급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이다. 기준이 서자 증인들도 검사도 기준에 필요한 말만 언급했다. 뫼르소는 자기변호를 하지 않았다. 장례식 그 이튿날 친구와 희극영화를 보고 정사를 나누었다는 것이 어떤 가책도 주지 않았고 강렬한 햇빛에 아랍인에게 총을 쏘고 또 네 발을 더 쏘았다는 사실에 이성적인 설명을 보태지도 않았다. 즉각적이었을지언정 한 번도 자신의 감각을 거짓으로 사용한 적은 없다. 이 때문에 그는 법정의 공분을 사고, 법정에 모인 사람들은 살인이 아닌 그의 태도를 문제 삼기 시작한다. 결국 사형을 언도 받았지만 그는 정직했다. 자신의 감정 이상의 것을 말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태양처럼 맑고 선명한 것이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 날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 들판의 소리들이 나에게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밤 냄새, 흙 냄새, 소금 냄새가 관자놀이를 시원하게 해 주었다. 잠든 그 여름의 희한한 평화가 밀물처럼 내 속으로 흘러들었다. 그 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어진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134-135)

 

사형을 판결 받은 후 뫼르소는 부속 사제와 면담의 시간을 가진다. 부속 사제는 예심 판사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믿으라고 강요하며 다른 삶을 꿈꾸지 않았냐고 물어본다. 그는 유독 사제의 방문을 거부했었다. 사제로부터 회개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의 통념대로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따위는 하지 않았다. 대신 기쁨과 분노를 뒤섞어 사제를 향해 고함쳤다. ‘나 자신에 대한 확신, 다가올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또한 상상하는 다른 삶이란 “지금 이 생애를 회상할 수 있는 그런 생애”라고.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 사람들이 선택하는 운명이 자신에겐 하등 중요하지 않다”고. 자신의 삶을 제단하고 강요하는 권위에 대해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고 나니 새로운 감각들이 살아났다. 들판의 소리가 들리고, 갖가지 부두의 냄새들이 올라와 뫼르소의 내면으로 스며들었다. 감각에서 시원함과 평화를 느끼는 감정으로 전화되었다. 열기로 가득해 그의 감각을 마비시키던 뜨거운 해변은 이제 식어 있다. ‘무겁고 뜨겁던 바람’은 이제 시원함을 느끼는 바다가 되었다. 온 몸을 긴장시키던 더위는 이제 ‘여름의 희한한 평화’가 되었다. 감각은 나누어져 있고 개별화 되어있어 하나로 공유되기가 어렵고 즉흥적이다. 그것은 지성을 발휘하기 어렵고, 공감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상대가 느끼는 맛과 향기를 내가 공유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은 개개인 존재의 고유함에 속하는 것이다. 감정은 공감이 가능하다. 개인이 느끼는 기쁨 슬픔 분노는 맥락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맥락이 구성되는 지평에서 타인과의 교류가 가능하며, 맥락을 엮는 것은 지성의 영역이기도하다. 그래서일까? 뫼르소는 이제 엄마를 이해한다. 생의 마지막에 엄마가 느꼈을 해방감에 공감했고, 그의 연애를 응원했다. 뫼르소의 재판은 어머니의 장례식날로 연결되고 뫼르소는 죽음 앞에서 엄마와 공감했다.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가 없다”. 아무도 뫼르소의 죽음을 욕할 수 없다.

 

 

 

 
전체 1

  • 2017-10-28 08:49
    뫼르소가 자신의 죽음을 엄마의 '자연사'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엄마의 '인생'에 공감했다기 보다 자연이라는 지평에서 감각적 특이함을 발현하며 사는 개별 존재들 전부를 긍정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폭발하는 뫼르소의 '감정'은 사회의 영역에 국한되어 있었던 감정들을 자연 전체로 확장해야 한다는 선언같은 것이었을까요?
    다음 시간에 조금 더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