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M 숙제방

[지금이아니면언제] 수치심

작성자
지은
작성일
2017-11-01 00:04
조회
21

프리모 레비의 소설 <지금이 아니면 언제>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프랑신은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 중 한 명이다. 그녀는 게달리스트들에게 자신이 살아남은 것이 수치스럽다고 이야기한다. 그녀 역시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였고 그녀가 홀로코스트에 있던 다른 이들을 죽인것도 아닌데도, 프랑신은 살아남은 것이 심지어 '범죄'라고 느낀다. 이러한 감정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제도가 극단적인 '비인간적' 행위를 자행했을 때 느껴지는 당혹감은 아닐까? 그 곳에서 집단 학살을 당한 수많은 사람들은 죽어야 할 어떤 이유도 없었고, 마찬가지로 프랑신 또한 그 자신만 살아남아야 할 어떤 이유도 없었다. 집단 학살의 공장에서 죽었어야 할 프랑신은 그저 우연히 살아남았다. 이것을 두고 '신'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신은 왜 수용소에서 죽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은 그냥 죽도록 내버려두었을까?


보통 천재지변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어 죽거나 다쳤을 때 우리는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인간의 무력함을 느끼고, 그 무력감이 초월적 존재에 기대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운행을 신이 주관하는 영역으로 넘기는 것이다. 하지만 홀로코스트는 자연이 아닌 인간이 자행한 '천재지변'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신에게 모든 설명을 요구할 수 없다. 홀로코스트는 폭풍이나 허리케인 같은 천재지변처럼 갑자기 사람들을 휩쓸어가버렸지만 이 엄청난 일은 '의식'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자행한 일이기 때문에 '신'이 아닌 '인간'이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왜 이토록 거대한 집단 학살 공장을 만들었는가에 대한 설명. 왜 이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나만 살아 남았는가에 대한 설명. 프랑신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수치심을 느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 앞에 자신 또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전체 1

  • 2017-11-01 07:38
    이것도 인간인가? 라고 물을 때 '인간'인 나는 어떤 위치에 서 있는가?
    실존을 의탁할 곳이라곤 어디에도 없는 존재의 무참함. 프리모 레비가 생생히 증언하려고 한 감정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