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M 숙제방

수치심

작성자
보영
작성일
2017-11-01 00:33
조회
29
수치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이다

 

자기 자신에게 실망할 때 사람은 수치심을 느낀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면, 혹은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으려면 사람들은 평소 행동과는 다른 자신으로 변해야한다. 그 변화된 모습은 사람들에게 실망스러움을 안긴다. 자신이 그리는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과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전시에 혹은 수용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행동 방향을 오로지 생존이라는 목적에 맞추고 나머지 행동은 억눌러야한다. 오직 먹고, 마시고, 잠들고, 배설하는 기초적인 생리 욕구만이 충족되고, 심지어 내가 살기 위해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아야 한다. 사람을 만나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일, 둘러앉아 함께 식사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일, 사랑하는 사람과 산책을 하는 일 등은 기초 생리 욕구만큼이나 인간이 살아가려면 꼭 충족되어야하는 부분인데, 전시 상황이나 강제 수용소에서는 이 부분이 억눌린다. 사랑, 배려, 양보같은 감정을 드러낼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오로지 분노 증오 혹은 절망 정도만 허용되는 공간이 수용소이고 전쟁터이다. 인간이 지닌 다양한 조건 중에 일부만을 전체인 것처럼 여기고 살아야 한다. 인간이긴 하지만 온전한 모습이 아닌 인간으로, 살아있긴 하지만 어딘가 비뚤어진 상태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물러나 바라볼 정도로 거리가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본다. 사람들은 수용소 밖으로 풀려난 이후 수용소 안에서 자신들이 어떤 모습으로 지냈는지 바라보게 되었다. 이들이 발견한 자신들의 모습은 그동안 자기가 생각했던 인간과 다른 모습이었다. 결국 균형이 무너진 모습으로, 자기가 생각하는 인간다운 행동과 감정을 포기한 대가로 생존해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은 견디기 어려운 무게로 다가왔을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실망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행동 방향은 두 가지 정도이다. 그 중 하나는 자기 자신을 이렇게 추락하게 만든 상황과 사람들을 탓하며 그 가해자를 미워하고 죽여서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하는 일이다. 그러나 증오와 분노는 사탄이 만든 게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그들의 논리'와 맥을 같이하는 방법이고, 그들과 똑같은 짓을 반복하는 일이다. 다른 한 가지 방법으로 지금까지 보고 듣고 경험한 시간을 외면하는 일이 있겠지만 그러기엔 그 충격이 그들의 인생에 너무 크게 남아있다. 결국 가해자와 같은 방식으로 복수하는 일은 그들 자신과 가장 다르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 수준으로 타락해야 가능하고, 그렇다고 가해자를 용서하고 포용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자신이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보인 모습을 보고 느낀 실망감과 수치심을 설욕할 방법도, 그렇다고 외면할 방법도 찾지 못한 사람들은 그 상태를 견디지 못한 채 삶 자체를 포기하고 자살을 선택한 것 아닐까?
전체 1

  • 2017-11-01 07:41
    수용소 밖에서, 자신이 "짐승"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가해자처럼 타락할 수도 없고, 가해자를 용서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짐승의 길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절망 때문에 좌초했던 사람들을 프랑신 에피소드가 보여주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