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어 읽는 니체

소니 도덕의 계보 여섯 번째 시간 (4.23)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9-04-22 12:16
조회
105
“인간은 또한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더 병적이고 불확실하고 변하기 쉽고 불확정적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그는 병적인 동물이다 : 이것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확실히 인간은 또한 다른 동물들을 모두 묶어 생각한 것보다 더 대담하고 혁신적이고 반항적이며 운명에 대해 도전적이었다 : 위대한 자기 실험자이며 최후의 지배를 위해 동물, 자연, 신들과 싸우는 만족할 줄 모르는 자이자 싫증을 모르는 인간―언제까지나 정복되지 않는 자, 자기 자신의 충동력 때문에 결코 휴식을 모르는 영원히 미래적인 존재인 인간은, 그래서 그의 미래가 가차없이 박차처럼 모든 현재의 살 속에 파고드는 인간 : ―이처럼 용기 있고 풍요로운 동물이 어째서 또한 가장 위험하고, 모든 병든 동물 가운데 가장 오래 가장 깊이 병든 존재가 아닐 수 있겠는가?”(니체, 《도덕의 계보》, 책세상, 485쪽)

‘인간은 병적인 동물이다’, 라고 니체는 말합니다. 도덕, 종교, 철학 등등의 ‘인간적인 것들’에 대한 니체의 비판을 따라 가다보면, 인간이 참으로 이상한 동물이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어 먹은 것을 되새김질 하는 소가 갑자기 끊임없이 되새김질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면서 스스로를 원죄를 짓고 익시온의 수레바퀴에 매달린 존재로, 자신의 식욕이 죄고 되새김질은 그에 대한 벌이라는 식으로 느끼게 되는 일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그런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욕망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욕망을 죄악시하는 일이요. 인간이 죄책감이라는 이 오묘한 감정을 발명해내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심리적 조작과 자기 실험과 싸움이 있었을지 생각해보면, 인간은 병적 존재라는 니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런데 ‘병적인 동물’이라고 말할 때 니체는 ‘병적’이라는 이 말에 대해 딱히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가치평가를 전제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병적’이라는 이 말을 ‘불확정적’이라는 말로 대신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인간은 안정된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과 싸우며 끊임없이 변이하는 존재라는 것. 불안정성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취약성을 본성처럼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것. 예전에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기 시작하면서 임신 기간이 매우 짧아졌고, 그 때문에 인간은 다른 동물들보다 훨씬 더 취약한 상태로 태어난다는 것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미숙한 채로 태어나기 때문에 사회적 본능을 만들어낼 여지가 훨씬 컸다는 것이죠. 다른 동물들보다 탈코드화의 여백이 훨씬 더 넓다고 할까요. 니체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놀랍습니다. 인간은 신이 주신 이성으로 자연과 다른 다스리는 자가 아닙니다.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자도 아니죠. 니체가 보기에 인간은 무엇보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이시키는 위대한 자기 실험자입니다.

그런데 니체는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에 대한 혐오와 동정’이라는 문제를 바라봅니다. 니체의 시대는 인간이 지닌 잠재성이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시대였습니다. ‘신’이라는 견고한 중심이 사라졌기 때문에, 이제 인간은 주어진 모든 가치들을 의심하고 또 과거의 모든 문화들을 다시 체험하고 또 새롭게 가치평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인간은 자기 자신을 실험하고 낯선 지평을 자기화하고 새로운 도덕을 입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니체가 보기에 당대의 문화는 이러한 현재적 조건에 인간에 대한 혐오와 동정이라는 가장 반동적인 방식으로 반응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동정과 혐오가 보여주는 것은 인간이 느끼는 자기 자신에 대해 싫증입니다. 온갖 문화와 가치가 혼재한 시대에 인간은 자기 지평을 의심하고 그로부터 떠나기를 시도하기는커녕 신의 자리에 공리나 진보와 같은 공허한 이념들을 세웠습니다. 여기에 깃들어 있는 것은 더 이상 의욕하지도, 해석하지도, 실험하지도 않으려는 의지입니다.
니체가 죽고 100년이 지난 지금, 인간이 느끼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싫증, 인간의 자기혐오는 더욱 강해진 것 같습니다. 예전에 채운샘이 강의에서 하셨던 말씀이 떠오르네요. 온갖 혐오와 묻지마 살인, 더 없는 풍요 속에 만연한 무기력 … 이런 것들은 이제 우리가 더 이상 ‘인간’을 견딜 수 없게 되어버렸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니체 시대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공리나 진보 같은 말들과 더불어 ‘인간’에 부여된 한 다발의 가치들이 벽에 부딪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은 이제 더 이상 먹혀들지 않죠. 이러한 인간의 자기혐오 역시 전혀 다른 방향의 힘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다시 “내가 다른 어떤 존재였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희망이 없다. 나는 나 자신인 것이다”라고 말하며 자기 경멸을 토대로 삼아 또 다른 이상을 수립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껏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인간적 전제들을 의심하면서 인간의 바깥을 사유할 것인지.

후기가 매우 매우 늦어버렸네요. 내일은 《도덕의 계보》를 끝까지 읽고 만납니다. 간식은 한역샘께서 준비해주시기로 했고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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