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카프카

11월 18일 후기 <카프카를 위하여>

작성자
gini
작성일
2017-11-21 12:07
조회
89
우리는 지난 시간 저명한 저자들의 카프카론을 읽었습니다. 까뮈, 아도르노, 아렌트, 데리다, 아감벤의 카프카들을요.

 

저는 데리다의 글을 처음 접했는데요. 읽기에 실패했습니다. <법 앞에서>라는 그의 글을 읽다가 토 나올 뻔 했습니다. 수업 중에 선생님이 정리해주셨지만 역시 아리까리. 수년 만에 다시 하는 경험이었어요.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가 그랬었는데, 이번 아감벤 글이 읽히는 게 신기했습니다. 조수들, 오드라덱에 대한 아감벤의 글은 매혹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카프카에 대해서 어떤 언급도 없이 카프카를 얘기할 수 있는 자, 아감벤이 말하는 카프카의 세계에 등장하는 조수들, 오드라덱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존재나 현상들을 드러나게 하는 타자들입니다. 그것들은 숨겨져 있지만 드러나는 것들이 드러나기 위해 사라져서는 안 되는 것들입니다. 반드시 존재하는 것들이지요. 따라서 드러나는 것과 타자들은 존재 안에서 공존합니다. 타자가 없다면 존재도 사라집니다.

 

이 같은 아감벤의 해석을 좀 더 적극적으로 수용한 사람이 아도르노입니다. 아도르노는 “친구이자 스승인 벤야민의 말을 인용하여, 카프카의 작품은 ‘비유’이고, ‘열쇠가 사라진 비유문학’”이라고 말합니다. 비유와 상징의 차이가 흥미롭습니다. 상징과 비유는 둘 다 유사성을 기초로 합니다. 비유와 상징들은 유사한 무엇들을 대신 표현합니다. 그러면 이 ‘무엇들’을 어떻게 알아서 우리는 비유와 상징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상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맥락이 필요하지요. 문화적 맥락이라고 선생님이 말했는데, 저는 그것을 인간적인, 인간이 이룬 문명 속에서만 이해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합니다. 평화라는 것은 인간이 발명해낸 관념이지요. 자연계에서는 평화도 혼란도 없거나 같은 것이거나 이니까요. 그렇다면 비유에서 비둘기는 무엇일 수 있을까요? 그것은 평화만을 상징하지 않습니다. 아마 우주 혹은 세계 혹은 자연 전체를 담고 있는 것일 겁니다. 그래서 모든 존재들은 각각 세계 전체의 비유일 수 있습니다. 존재들은 타자들의 집합이지요. “존재한다(Exister)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밖에 있다(sister ex)는 뜻이다-미셀 트루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라고 했던 로빈슨의 말도, “모든 잠재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다”라고 했던 들뢰즈의 말도 여기에 부합하는 것들이라고 이해합니다. 아도르노가 말하는 ‘밀폐적 주체’ 역시 바깥 없음, 하나의 존재가 곧 세계인 주체를 말하는 것이지요. 아렌트는 카프카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비현실성이라는 인상을 주는 이유를 “현상으로서의 세계를 묘사하는 데 대한 그의 관심의 부족과 외면적인 상황에 대한 완전한 무시가 결합되어 그 기능에 가장 큰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위의 저자들을 따른다면 카프카는 구지 현상이나 상황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자신 하나만 평생 파도 다하지 못할 세계의 비밀이 자신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지요.

 

이상, 지난 시간 제가 흥미로웠던 부분만을 말씀드렸습니다. ^^

 

다음 시간엔 에세이 초고를 들고 가야 합니다. 모두 화이팅요!
전체 2

  • 2017-11-24 09:45
    아렌트의 말을 해석해주시니 고개가 끄덕. '바깥이 없다'는 말은 곧 자기와 세계가 구별되지 않는다는 말이군요.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책상 위에서 늘 자기 안의 세계를 발견했던 카프카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듯. 담주 에세이, 전력을 다해 만나보아요. 얍얍-!

  • 2017-11-24 11:43
    카프카와 함께, 정말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됩니다.
    저 고매한 철학자 벤야민과 아도르노, 아랜트와 아감벤이 무엇 때문에 카프카를 부등켜 안고 뒹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뜨겁게 카프카와 함께 글을 썼는지는 알 수 있었습니다.
    지니 선생님의 기쁨이 느껴지는 후기여서, 저도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