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한강

지락 (外編)

작성자
다음엇지
작성일
2019-01-27 16:44
조회
137
至樂은 최고 수준의 즐거움인데 無爲에서 오는 즐거움입니다. 속세의 즐거움이 실제로는 상대적인 가치에 불과한 한계가 있는 즐거움인데 비해서, 이런 상대적 가치를 초월한 무위의 경지야 말로 최고의 즐거움이며, 至樂을 逍遙遊로 바꿔 읽어도 무방하겠습니다.

天下有至樂無有哉?有可以活身者無有哉?今奚為奚據?奚避奚處?奚就奚去?奚樂奚惡?
천하에 지극한 즐거움이 있는가 없는가? 내 몸을 제대로 사용하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없는가? 이제 무엇을 해야 되며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까? 무엇을 피하고 또 무엇에 머물러야 할까? 어디로 나아가고 어디로 물러나야 할까? 무엇을 즐기고 무엇을 싫어해야 할까?

· 活身: 보통 '몸을 편한히 하는 것' 이라 번역하지만, 활은 몸을 살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생을 활발하게 제대로 써가면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활신이 되어야 지락이 되는 것이며, 무위로 해야 한다.
· 據: 하지 않고 머무른다는 의미에서 하지 않는다
· 處: 피하는 것은 소극적인 것이나 나서지 않더라도 있어야 할 장소가 있다는 의미에서의 상태의 유지
· 去: 나아감이나 나서지 않고 뒤로 물러난다

※ 흔하지 않은 부가 의문문 형태의 문장 역시 장자 문체의 특징 (물론 장마다 다른 문체는 다른 이야기 거리를 남깁니다만)

夫天下之所尊者,富貴壽善也;所樂者,身安、厚味、美服、好色、音聲也;所下者,貧賤夭惡也;所苦者,身不得安逸,口不得厚味,形不得美服,目不得好色,耳不得音聲;若不得者,則大憂以懼。其為形也亦愚哉!
지금 천하 사람들이 높이는 것은, 부유하고 출세하고 오래살고 명성(좋은 평판)을 얻는 것이다; 즐기는 것이라는 것은, 몸이 안전하게 편안히 사는 것, 맛있는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아름다운 사람과 함께하며, 좋은 음악을 가까이하는 것이다; 우습게 보는 것은, 가난하고 천한 것과 일찍 죽는 것이다; 고통스럽게 여기는 것은, 몸이 편안하지 못하며, 좋은 음식을 먹지 못하고, 좋은 옷을 입지 못하고, 아름다운 사람과 함꼐 하지 못하고, 아름다운 음악과 가까이 하지 못하는 것이다. 즐거움을 얻지 못하면, 크게 근심하고 두려워하게 된다. 이런 것들(富貴壽善)로 몸을 관리하는 것은 어리석다!

· 懼: 좋은 것을 얻지 못할까 근심하다가 결국 두려워하게 된다는 것은 좋은 통찰. 현재 누리던 것을 유지하지 못할 것은 두려워하는 것은 현세의 중노년의 모습이기도
· 為形: 修形 몸, 인생을 관리하다, 어떤 인생의 목표로 몸을 쓰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고 있음

※ 내편의 장자가 귀족적(?) 이라면 외편과 잡편의 장자는 세속적이고 평민층에 가까운 수준에서 풀어내는 것이 특징

夫富者,苦身疾作,多積財而不得盡用,其為形也亦外矣。夫貴者,夜以繼日,思慮善否,其為形也亦疏矣。人之生也,與憂俱生,壽者惛惛,久憂不死,何苦也!其為形也亦遠矣。烈士為天下見善矣,未足以活身。吾未知善之誠善邪,誠不善邪?若以為善矣,不足活身;以為不善矣,足以活人。故曰:「忠諫不聽,蹲循勿爭。」故夫子胥爭之以殘其形,不爭,名亦不成。誠有善無有哉?
부유한 사람은, 몸을 고달프게하면서 일을 많이 하니, 축적된 재산은 많지만 다 쓰지는 못하여, 이런 방식으로 인생을 관리하는 것은 하찮은 것이다. 출세한 사람은, 밤은 낮으로 삼아(이어서 계속 일하면서), 나에게 이로운가 이롭지 않은가를 (책략적으로) 골똘히 생각하니, 이런 식으로 자기 삶을 관리하는 것은 소원한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 , 근심과 같이 살게 마련이고, 오래사는 사람들은 정신이 흐려지며, (오히려) 소멸되지 않는 것을 걱정하게 되니, 얼마나 고달픈 것인가! 이런 방식으로 삶을 관리하는 것 역시 본질에서 멀어진 것이다. 열사는 세상에서 좋은 평판을 받는데 능히 자기 자신을 살리지 못하니, 나는 (세상에서 말하는) 명예가 정말로 명예인지 아니면 참으로 명예가 아닌지 알지 못하겠다. 명예라고 생각하면 나의 몸을 살리기에 부족하고 ; 명예가 아니라고 한다면, 다른 사람은 살릴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진심으로 충간을 했는데, 군주가 들어주지 않으면 물러나서 다투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 오자서가 군주와 다투어서 그 몸을 해쳤는데, 싸우지 않았다면, (열사라는) 명예 또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진실로 명예란 있는 것인가, 없는것인가?

· 愚, 外, 疏, 遠: 어리석은, 하찮은, 疏遠한, 별볼일없는, 근본에서 멀어진 末
· 善否: (선비)로 읽는다. 否는 不善

※ 富貴壽善의 허망함과 그럼에도 끊임없이 반복됨.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사이의 시절이나 인간의 사회와 개인의 삶의 모습은 형태가 바뀌었을 뿐...

今俗之所為與其所樂,吾又未知樂之果樂邪,果不樂邪?吾觀夫俗之所樂,舉群趣者,誙誙然如將不得已,而皆曰樂者,吾未之樂也,亦未之不樂也。果有樂無有哉?吾以無為誠樂矣,又俗之所大苦也。故曰:「至樂無樂,至譽無譽。」
지금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바와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나는 또 그 즐거움이 과연 즐거운 것인지, 아니면 즐길만한 것이 아닌지를 알지 못하겠다. 내가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 모두들 무리지어서 나아가서, 죽자사자 나아가는 것이 마치 장차 그만둘 수 없는 것 같으니, 모두들 말하기를 좋아선 한다고 한다. 나는 정말 그게 좋은 일인지 알지 못하겠고, 또 그게 즐겁지 않은 지도 확정할 수 없다. 과연 즐길만한 것이 있는가 있지 않은가? 나는 무위가 참으로 즐거운 일이라고 여기는데, 세상사람들은 큰 고통으로 여긴다. 그래서 난 이렇게 말하겠다: "지극한 즐거움은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며, 높은 수준의 명예는 그런 명예심을 버리는 것이다."

誙誙然: 趣死貌也. 죽음으로 나아가는 모양. 과로하는 것.

당시 지식인의 희소가치를 볼 때, 마지막으로 譽를 例로 든 것은 세상의 인정 대한 욕망이 강했다는 것을 시사하는게 아닐지. 장자에서는 지극한 명예는 세속의 명예가 없는 것이라고 정의. 단박한 삶의 추구.

天下是非果未可定也。雖然,無為可以定是非。至樂活身,唯無為幾存。請嘗試言之。天無為以之清,地無為以之寧,故兩無為相合,萬物皆化。芒乎芴乎,而無從出乎!芴乎芒乎,而無有象乎!萬物職職,皆從無為殖。故曰:「天地無為也,而無不為也。」人也,孰能得無為哉!
천하의 옳고 그름은 참으로 (칼로 자르듯이 정확하게)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그렇지만, 무위의 입장이라면 (목적의식의 유무?) 천하의 是非를 정해 볼 수도 있겠다. 지극한 즐거움과 생명력 있는 삶을 영위하는 것은, 오직 무위로만 그런대로 살 수 있다. (내 생각을) 한번 시험삼아 말해 보겠다. 하늘은 무위하기 때문에 그렇게 맑은 것이고, 땅은 무위하기 때문에 그렇게 안정되어 있는 것이니, 하늘과 땅이 무위로서 서로 만났기 때문에, 만물이 모두 살아가는 것이다. 황홀하니, 말미암아 나오는 바를 어찌 알겠소! 황홀하니, 변화(象)를 헤아릴 수 있겠소!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만물이 번성하는 것은, 모두 왜 그래야 하는지 몰라도 무위로 그렇게 (자연스럽게) 생명을 키워나가면서 번식한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겠다: "천지는 하는 일이 없지만, 저절로 되지 않는 일이 없다." (그런데) 사람이라면, 누가 능히 무위할 수 있겠는가! (탄식: 지금 세상에는 이런 지락을 추구할 줄 아는 사람이 없구나! 지락을 모르고 모두 富貴壽善만을 추구하며 몸을 축내며 사는 구나)

· 至樂活身: 至樂은 無為, 活身은 늘 봄날같이 생명력있는 삶의 영위하라는 것. 無為를 마치 축 늘어진 無氣力한 삶으로 여길 수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 활발하게 에너지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幾: 그런대로, 거의. 원래는 근근이 이어가는 뉘앙스를 갖고 있으나 그 정도는 아니고 무위의 조건에서만 유지할 수 있음의 표현
· 天無為以之清,地無為以之寧: 老子 39章의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하늘이 도를 어더 맑은 것이고, 땅이 도를 얻어 편안하다"와 같은 맥락. 郭象註는 "皆自淸寧耳 非爲之所得(모두 저절로 맑고 편안한 것이지 무엇을 해서 얻어진 바가 아니다)"
· 芒乎芴乎: 恍乎惚乎
· 職職: 職의 본래 뜻은 '맡은 일이 있다'는 것으로 여기서는 생명이 주어지면 열심히 살아간다는 뜻
天地無為也,而無不為也: 老子 37章의 "道常無爲而無不爲(도는 늘 무위하나 하지 않는 것이 없다)"의 도의 맥락을 천지 만물로 확장한 것

[鼓盆而歌]


莊子妻死,惠子弔之,莊子則方箕踞鼓盆而歌。
장자가 상처하여, 혜자가 조문을 갔을 때, 장자는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 箕踞: 쭉정이 까는 키와 비슷한 모양으로 거만하게 두 발을 뻗고 철퍼덕 앉아

惠子曰:「與人居長子,老身死,不哭亦足矣,又鼓盆而歌,不亦甚乎!」
혜자가 말했다: "아내와 함께 살았고 자식을 키웠고, 해로하였으니, 곡을 하지 않는 것은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또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하는 것은, 또한 너무 심하지 않느냐!"

莊子曰:「不然。是其始死也,我獨何能無概然!察其始而本無生,非徒無生也,而本無形,非徒無形也,而本無氣。雜乎芒芴之間,變而有氣,氣變而有形,形變而有生,今又變而之死,是相與為春秋冬夏四時行也。人且偃然寢於巨室,而我噭噭然隨而哭之,自以為不通乎命,故止也。」
장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네. 아내가 죽었을 때에, 나라고 어찌 슬퍼하지 않았겟는가! (그런데) 그 삶의 처음을 살펴보니 본래 삶도 없었고 그 형체도 없지 않았겠는가, 그 형체가 없을 뿐 아니라 본래 기조차 흩어져 있지 않았겠는가. 황홀한 가운데 떠돌다가(雜) 변해서(우연히) 기가 생겼을 것이고, (그) 기가 뭉치면 어떤 형체가 되었을 것이고, (그) 형체가 변해서 태어나게 되었을 것이고 (가시적인 존재가됨), 지금 다시 변해서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니, 이것은 (처음부터 죽음까지를 잘 살펴 보니) 서로 같이하는 것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운행되는 시간의 흐름과 같은 것이네. 그 사람(아내)이 천지의 집(황홀지간)에서 편안히 노닐고 있는데, 내가 시끄럽게 곡을하면서 습속을 따라서 울어대는 것은 스스로 내가 명을 따르지 못한다고 여겨서, 그만두었네.

[柳生左肘]


支離叔與滑介叔觀於冥伯之丘,崑崙之虛,黃帝之所休。俄而柳生其左肘,其意蹶蹶然惡之
지리숙과 골개숙이 함께 명백의 언덕과 곤륜의 터, 그리고 황제가 쉬던 곳에서 보고 다녔다. 얼마 안되어서 골개숙의 왼쪽 팔꿈치에 버드나무가 자라서, 그가 당황하여 안절부절 못하며 그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

· 冥伯之丘,崑崙之虛,黃帝之所休: 어떤 정신적인 경지, 소요유하는 모양
· 柳: 종기(瘤)로 바꿔 보기도하고, 뒤에 生에 대해 말하므로, 삶이 시작되는 崑崙之虛에서 죽음의 땅인 冥伯之丘를 노닐면서 生이 死로 변해가는불길한 것으로 보기도 함. 소요유하면서 삶과 죽음이 서로 함께하며 상호 변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우언으로 보기 때문이고, 지락의 일화들은 이런 내용이 일관됨
· 其意: ~가 ~한 것 같다
· 蹶蹶然: 不安貌. 불안해하며 허둥지둥 하는 모양

支離叔曰:「子惡之乎?」
지리숙이 말했다: "너는 그게 싫으니?"

滑介叔曰:「亡。予何惡?生者,假借也;假之而生生者,塵垢也。死生為晝夜。且吾與子觀化而化及我,我又何惡焉?」
골개숙이 말했다: "아니야, 내가 어찌 싫어하겠니? 삶이란 것은, 빌린 것이니(잠시 머무는 것이니) ; 빌려서 살아가는 것은 먼지나 때와 같은 일시적인 것이네. 게다가 나와 네가 지금 (좌망하며 화의 경지를 보고 있었고) 화가 나에게 미친 것을 보고 있는데, 내가 또 어찌 그것을 싫어하겠는가?

· 假之而生生者塵垢也: ①假之而生生者, 塵垢也 빌려서 살아가는 것은, 먼지나 때와 같은 일시적인 것이다, ② 假之而生, 生者塵垢也 빌려서 살아가니, 산다는 것이 먼지나 때와 같은 일시적인 것이다

[髑髏問答]


莊子之楚,見空髑髏,髐然有形,撽以馬捶,因而問之曰:「夫子貪生失理,而為此乎?將子有亡國之事,斧鉞之誅,而為此乎?將子有不善之行,愧遺父母妻子之醜,而為此乎?將子有凍餒之患,而為此乎?將子之春秋故及此乎?」
장자가 (송나라에서) 초로 내려가는데, 앙상하게 마른 채 형체만 유지하고 있는 해골을 보고, 말 채찍으로 그를 툭툭 건드리면서 물었다: "그대는 삶의 욕망을 추구하다가 생사의 이치를 잃어 (요절하여), 이 꼴이 되었는가? 아니면 그대가 나라가 망하는 데 이르러 도끼 아래서 (싸움터에서 또는 형벌을 받아) 죽임을 당하여, 이 꼴이 되었는가? 아니면 그대가 옳지 않은 일을 하여, 치욕적인 모습을 부모처자에게 남기는 게 부끄러워 (자살하여), 이 꼴이 되었는가? 아니면 그대가 추위와 배고픔의 환난을 만나 (동사또는 아사로), 이 꼴이 되었는가? 아니면 그대의 나이 때문에 (천수를 누리고) 여기에 이르렀는가?

· 將: 且也
· 貪生: 오래 살려고 삶을 추구하다

※ 당시 죽음에 이르는 경우의 나열

於是語卒,援髑髏枕而臥。
이에 말을 마치더니, 해골을 끌어 당겨 베개 삼아 베고 누워 잠들었다.

· 援: 引 당기다.

夜半,髑髏見夢曰:「子之談者似辯士。視子所言,皆生人之累也,死則無此矣。子欲聞死之說乎?」
한밤중에, 해골이 꿈에 나타나 말했다. "그대가 말하는 것은 이야기꾼 같구나. 그가 한 말을 보건대, 모두 살아 있는 사람들의 걱정거리인 것이지, 죽은 사람들에게는 그런 괴로움은 없다. 그대는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겠는가?"

· 視子所言: 소리로 전달한 내용을 시각으로 이미지화

莊子曰:「然。」
장자가 말했다: "좋소"

髑髏曰:「死,無君於上,無臣於下,亦無四時之事,從然以天地為春秋,雖南面王樂,不能過也。」
해골이 말했다: "죽음은, 위로는 군주가 없고, 아래로는 신하도 없으며, 세월에 쫓기는 일도 없으며, 자유롭게 천치를 춘추로 삼으니 (천지와 더불어 자유롭게 흩어져 사니), 남면하는(천하를 다스리는) 왕의 즐거움도, 이보다 더 할 수 없을 것이오."

· 從然: 자유롭게, 그런대로 흘러가서

莊子不信,曰:「吾使司命復生子形,為子骨肉肌膚,反子父母妻子、閭里、知識,子欲之乎?」
장자가 믿지 못하며 말했다: "내가 사명으로 하여금 그대의 육체를 다시 소생시켜서, 그대의 뼈와 살점과 피부를 만들어, 그대의 부모처자나 동네의 지인들에게 돌려보낼 수 있는데, 그대는 그를 원하는가?"

髑髏深矉蹙頞曰:「吾安能棄南面王樂而復為人間之勞乎?」
해골이 오만상을 쓰면서 말했다: "내가 어찌 남면하는 왕의 즐거움(보다 더한 이 죽음의 세계를 떠나) 다시 인간의 괴로움으로 돌아간다는 말인가?"

· 深矉蹙頞: 깊게 深, 矉 이맛살을 찌푸리고, 蹙頞 콧대를 찡그림

[條達而福持]


顏淵東之齊,孔子有憂色。子貢下席而問曰:「小子敢問:回東之齊,夫子有憂色,何邪?」

안연이 동쪽으로 제나라고 가려고 할 때, 공자에게 근심스러운 기색이 있었다. 자공이 자리에서 내려와 (절을 하고) 물었다: "제자가 감히 묻건데, 안회가 동쪽 제나라로 가는데 선생께서 근심이 있어보이시니, 어쩐 일입니까?"

孔子曰:「善哉汝問!昔者管子有言,丘甚善之,曰:『褚小者不可以懷大,綆短者不可以汲深。』夫若是者,以為命有所成而形有所適也,夫不可損益。吾恐回與齊侯言堯、舜、黃帝之道,而重以燧人、神農之言。彼將內求於己而不得,不得則惑,人惑則死。
공자가 말했다: "너의 질문이 훌륭하구나! 옛날 제나라의 관자가 이런 말을 했었고, 내(丘)가 참 그걸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말하길: "주머니가 작으면 너무 큰 것을 담으면 안되며, 두레박의 줄이 짧으면 깊은 물을 퍼올릴 수 없다"고 했다. 이와 같은 사람은 하늘로 부터 받은 命이 정해진 바(그릇의 크기)가 있고 형체에 적합한 것이 있으니, 그걸 인위적으로 덜어내거나 더 할 수 없다. 나는 안회가 제나라 군주와 더불어 요, 순, 황제의 도를 말하고 다시 수인씨와 신농씨의 말을 보태게 될까 걱정이다. 군주는 장차 내적으로 자기에게서 구하다가 (자기가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면, 할 수 없다는 것에서 의혹이 생기고, 군주가 마음이 흔들리게 되면 안회같은 사람은 죽게 될 것이다."

· 褚小者: 식견이 부족한 사람을 주머니가 작다고 한다.
· 褚小者不可以懷大, 綆短者不可以汲深. 여기가 原出典전이며, 管子에는 나오지 않는다.
· 燧人, 神農之言: 有爲 중 農家로 경제, 토지개발론으로 보면 되겠다.
※ 해석하지 않는 夫자가 많이 나오는 것도 至樂篇의 한 특징

且女獨不聞邪?昔者海鳥止於魯郊,魯侯御而觴之於廟,奏九韶以為樂,具太牢以為善。鳥乃眩視憂悲,不敢食一臠,不敢飲一杯,三日而死。此以己養養鳥也,非以鳥養養鳥也。夫以鳥養養鳥者,宜栖之深林,遊之壇陸,浮之江湖,食之鰍鰷,隨行列而止,委蛇而處。彼唯人言之惡聞,奚以夫譊譊為乎!咸池、九韶之樂,張之洞庭之野,鳥聞之而飛,獸聞之而走,魚聞之而下入,人卒聞之,相與還而觀之。魚處水而生,人處水而死,故必相與異,其好惡故異也。故先聖不一其能,不同其事。名止於實,義設於適,是之謂條達而福持。」
그리고 너는 유독 듣지 못했는가? 옛날에 바다새가 노나라 들판에 날아와 머물렀는데, 노나라 임금이 접대하여 조정(공식적인 자리)에서 술상을 차려주고, 순임금의 음악을 연주하여 음악으로 삼고, 좋은 음식을 갖추어 요리를 내었다. (그런데) 바다새가 현기증이 나고 두려워하고 슬퍼하다가, 한 점의 고기와, 한 모금의 술도 마시지 못하고, 삼일만에 죽고 말았다. 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새를 기르고, 새가 좋아하는 것으로 새를 기르지 못한 것이다. 새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새를 기르는 것은 마땅히 깊은 숲 속에 깃들게 해야 하고, 넓은 들판에서 놀게 해야 하고, 강호에 떠있기도 하고, 미꾸라지와 작은 물고기들을 먹여야하며, (자기들과 동류의 새 떼들의) 행렬을 따라가게 하다가 멈추기도 하고, 자유롭게 머물게 했어야 한다. 저 새들은 오직 사람이 말하는 시끄러운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데, 어찌 시끄럽고 소란스럽게 했는가! 함지나 구소의 음악을 동정의 들판에서 성대하게 펼치면, 새들은 듣고 날아가 버리고, 짐승들은 듣고 내달려 도망가고, 물고가들은 듣고 물 속 깊이 내려가 버리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를 듣고 빙 둘러 앉아 기뻐하면서 들을 것이다. 물고기는 물에 있을 때 살고, 사람은 물 속에 있으면 죽으니, 저들의 (생의 조건이) 다른 것이니,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다르다. 옛날의 앞서 계시던 위대한 성인들은 잘 하는 것을 획일적으로 하지 않고, 그 일을 한가지로 통일하지 않았다. 명분은 실질에 맞아야 하고 (사실에서 멈춘다), 의도는 상황에 적합하게 해야 하므로, 이를 일컬어 이치에 통달해야 잘 살게 된다 (행복한 상태가 유지된다).

· 太牢: 제사나 행사에서의 희생음식 (주로 牛)
· 譊譊: 시끄럽고 소란스러움
· 人卒: 많은 사람들
· 名止於實: 莊子式의 名實相符
· 福持: 活身

[萬物皆出於機,皆入於機]


列子行食於道,從見百歲髑髏,攓蓬而指之曰:「唯予與汝知而未嘗死,未嘗生也。若果養乎?予果歡乎?」
열자가 여행을 떠나 길에서 밥을 먹다가, 이어 백년 묵은 해골을 보고 쑥대를 뽑아 해골을 툭툭치면서 말했다: "오직 나와 그대만이 그대가 아직 온전히 죽지 않고, 아직 전생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네. 그대는 과연 (도의 세계에서) 즐거워하고 있는가, 나는 과연 (지금 살아있다고 해서) 기뻐하고 있는 것인가? (마찬가지다)"

· 未嘗死,未嘗生: 髑髏라도 남아 있으면 아직 기가 완전히 흩어진 것이 아니므로, 생명력은 없지만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니라는 관점으로 볼 수 있는데, 장례를 마치지 않은 처를 대하는 장자의 관점과는 차이가 있음
· 養: 근심하다, 걱정하다로 많이 해석하지만, 글자 그대로 養으로 보면 "그대는 도의 세계로 가서 즐겁게 살고 있는가"로 봐도 뜻은 통한다. 둘 다 그 처한 곳에서 즐거움

種有幾,得水則為㡭,得水土之際則為蛙蠙之衣,生於陵屯則為陵舄,陵舄得鬱棲則為烏足,烏足之根為蠐螬,其葉為蝴蝶。胡蝶,胥也化而為蟲,生於灶下,其狀若脫,其名為鴝掇。鴝掇千日為鳥,其名曰乾餘骨。乾餘骨之沬為斯彌,斯彌為食醯。頤輅生乎食醯,黃軦生乎九猷,瞀芮生乎腐蠸。羊奚比乎不筍,久竹生青寧,青寧生程,程生馬,馬生人,人又反入於機。萬物皆出於機,皆入於機。
종은 幾가 있다, 물을 얻으면 이어져 수초가 되고, 물과 흙이 있는 사이의 환경을 만나면 개구리와 진주조개의 옷 (물풀)이 되며, 언덕에 살면 질경이가 된다. 질경이가 두엄에 깃들면 오족이라 불리는 풀이 되며, 오족의 뿌리는 굼벵이가 되고, 그 잎사귀는 나비가 된다. 나비는, 어떤 순간에 변해서 벌레가 되는데, 부뚜막 아래에서 생겨나며, 껍집을 벗으니, 그 이름이 귀뚜라미라고 한다. 귀뚜라미는 천 일 정도 지나면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을 간여골이라 한다. 간여골의 침은 쌀벌레가 되고, 쌀벌레는 식혜라는 날벌레가 되며, 이로는 식혜에서 생기는데, 황황은 구유 벌레에서 생기며, 무예는 부권에서 생긴다. (무예가 변한) 양혜는 더 이상 죽순을 내지 않는 대나무와 가까이 하면, 오래된 소나무는 청령이라는 벌레를 낳고, 청령은 정이라는 짐승을 낳고, 정은 말을 낳고, (드디어) 말에서 인간이 나왔으며, 또다시 인간의 단계에서 돌아가서 機로 들어간다. 만물은 모두 機에서 나와서, 모두 機로 들어간다.

· 幾: 機, 氣, 道. 생명의 에너지 작용 (※ 幾를 문자 그대로 보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은 몇 종류나 있는가"로 풀기도 한다)
· 陵舄: 車前草也
· 鬱棲: 糞壤也. 두엄더미
· 蠐螬: 나무 굼벵이
· 胥也化: 어떤 순간에 변하다 (까닭은 모른다)
· 若脫: 귀뚜라미
· 乾餘骨: 무슨 새인지는 모르나 까치나 비둘기의 일종으로 여김
· 沬: 唾液, 입속의 침
· 斯彌: 쌀벌레
· 食醯: 술 독 안에서 생겨나는 날개 달린 작은 벌레
· 頤輅, 黃軦, 九猷, 瞀芮, 腐蠸, 靑寧: 벌레 이름이나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름
· 比: 가까이에 있다
· 程: 표범이라는 역주도 있고, 猙과 같다는 역주도 있는데 뿔 하나에 꼬리 다섯 달린 짐승



※ 수행자들이 먼지로부터 사람이 되기까지를 황홀하여 체험하는 경험들을 이야기하곤 한다. (만물의) 원인으로서 생명의 에너지가 있어 1) 물 속에서서는 수초류가, 2) 물가에서 물이끼류가, 3) 언덕 위에서는 질경이류로 화하게 된다. 즉, 세상 만물은 모두 우연으로 어디에 있었느냐에 따라 化하여 존재가 되었다. 생명은 어떻게 시작되었냐는 관심의 발로로, 氣가 끈적거리며 뭉쳐서 변해가는 감각으로 지락 편에 일관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시 기로 환원되는 생명 활동의 우연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겠다. 秋水에서 蚿가 끈적한 침이 튀기는 형상으로 생명 현상의 우연성을 설명했던 것과도 연결해 보면 좋겠다. 물론, 너무 진화의 분위기로 엄밀하게 읽어서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려는 것은 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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