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전

시의 맛 시즌 1 시경 4강 후기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8-07-16 15:44
조회
105
수중전 후기

<시경>을 풍/아/송으로 나눈 것은 <시경>의 유일한 판본인 ‘모시(毛詩)’입니다. 그러다보니 후세의 주석가들도 ‘모시’를 바탕으로 <시경>을 나누었죠. 주자 역시 <시경>을 풍/아/송으로 나누었습니다. 송(訟)은 주(周)송 31개, 노(魯)송 4개, 상(商)송 5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총 40편. 그럼 여기서 또 의문이 남습니다. 송(訟)에도 들어있는 노나라의 노래가 왜 풍(風)에는 없을까? 주자는 공자가 노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없다고 했지만 미흡한 주장입니다. 그럼 송(訟)에 노나라가 있는 것은 설명이 안 되니까요. 주자도 아마 골머리 좀 썩었을 겁니다. 결국 왜 노풍이 없는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만.

(1) ‘주송’ 31편은 모두 1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로 문왕의 창업과 수성에 대한 이야기가 있지요. 왕실의 제사 음악이므로 그 나라의 시조에게 간청하는 노래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실질적으로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세운 무왕이 아니라 문왕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무왕은 폭군을 물리친 영웅이지만 동시에 군주를 죽인 반역자 였거든요. 무왕은 이 역성혁명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은나라를 멸망시킨 사람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지요. 백성을 폭정에서 구한다는 뜻은 문왕에게, 그 구체적인 실행은 무왕에게 각각 배분한 겁니다. 공자도 이 역성혁명에 대해 고민하다 명백한 유혈정복을 문화혁명으로 재해석 했지요. 가령 납향제사 노래 ‘빈송(豳訟)’의 ‘빈’은 문왕이 이주한 땅입니다. 그 노래에는 청묘(淸廟)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문왕의 사당을 뜻합니다. 주나라가 성립하고 제사를 지낼 때 처음 시작도 주남, 즉 문왕의 노래로 시작합니다.

-‘주송’의 ‘淸廟’라는 노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於穆淸廟 肅雝顯相 濟濟多士 秉文之德 對越在天 駿奔走在廟 不顯不承 無射於人斯

오, 심원한 청묘에 공경스럽고 화락한 제사를 돕는 분들이 모이셨네. 수많은 선비들이 문왕의 덕을 받들어, 하늘에 계신 분 받들어 분주히 묘당에서 움직이네. 드러나지 않겠는가, 계승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이 싫증내지 않으리.

-또 무왕이 문왕을 제사지내는 시는 雝(雍)입니다. 천자가 부르는 노래이지요. 이 노래는 <논어> 팔일편에서 일개 대부들이 철상하면서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공자 시절에는 그만큼 천자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던 것이지요.

有來雝雝 : 온화한 모습으로 와서

至止肅肅 : 엄숙하게 묘당으로 들어간다

相維辟公 : 제사를 돕는 제후들

天子穆穆 : 천자의 훌륭한 모습

於薦廣牡 : 아, 큰 짐승 통째로 바쳐서

相予肆祀 : 나를 도와 제사드린다

假哉皇考 : 위대하신 부왕께서

綏予孝子 : 첫째 자식을 편안하게 하신다

宣哲維人 : 밝고 어지신 문덕

文武維后 : 문무를 겸하신 임금님이시여

燕及皇天 : 위로는 하늘을 편안케 하시고

克昌厥後 : 아래로는 그 후손을 창성하게 하신다

綏我眉壽 : 나를 오래 살게 하시고

介以繁祉 : 큰 복을 내려주신다

旣右烈考 : 공덕 빛나는 부왕게 제물 올리고

亦右文母 : 문덕이 있으신 어머님께도 제물 올린다

(2) ‘노송’은 ‘경’, ‘유필’, ‘반수’, ‘비궁’ 총 네 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 성왕은 주공의 공을 인정하여 주공의 아들 백금에게 천자의 예악을 허락했습니다...그렇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송을 보면 대부분 19대 왕 노희공 때의 노래입니다. 그래서 ‘노송’이라고 합니다만 사실 노희공 때 수집된 노래를 ‘노송’이라고 한다는 게 맞는 말일 겁니다.

-‘경(駉)’은 ‘말(馬)’ 시리즈입니다. 온갖 말 종류가 나오지요. 당시는 제후들끼리 패권을 다투던 시대로, 말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고 합니다. 이 시에서 유명한 구절이 ‘思無邪’입니다. 공자는 ‘삿된 마음이 없다’라는 말로 <시경>을 칭송했는데, 사실 이 구절이 나온 맥락은 말이 빠르게 달려가는 모습에서 나왔습니다. 일종의 단장취의斷章取義인 셈이죠.

駉駉牡馬 살찌고 튼튼한 숫 말이

在坰之野 먼 들판에 있네

薄言駉者 살 찐 말은 은백색과 붉고 흰 얼룩말이네

有駰有騢 정강이가 흰 말,

有驔有魚 양 눈가가 흰 말이

以車祛祛 수레를 힘차게 몰고 가네

思無邪 아무런 딴 생각 없이

思馬斯徂 말을 달려가네

(3) 은나라는 제사를 받드는 것에는 중국대륙 제일이었다고 합니다. 주나라도 건국되고 나서 은나라의 제사 문화를 따랐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왜냐하면 은나라는 천문을 읽고 농사를 주관할 수 있는 달력을 잘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논어>에서는 ‘달력은 은나라의 것을 써라’라는 말도 나옵니다. ‘상송’은 은나라가 멸망하고 주나라도 분열하던 춘추시대에 상나라 유민들이 제사지내며 쓰는 노래였다고 합니다. 주나라의 분열은 곧 상나라 유민들에게는 자기 왕조를 기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셈이죠. 원래 7편이었다고 하는데 5편만 남았습니다. 주로 은나라 건국설화를 기반으로 합니다. 성탕에게 제사 지내는 음악을 시작해서 간적이 제비의 알을 삼키고 은의 시조 설을 낳은 설화가 소재가 됩니다. 거의 주송, 노송과 구조가 비슷합니다.

(3) <시경> 이후 시는 어떨까요? 한무제는 ‘악부(樂府)’를 설치하고 시를 채집하게 합니다. 후한 말에는 4언에서 5언으로 글자수가 늘어나게 되고 오언고시가 유행하지요. 이때 <시경>의 風의 영향을 받은 악부체(樂府體)가 유행합니다. 나중에 백이, 백거이, 원진과 같은 인물이 이 전통을 이어받게 되지요.

-가인가佳人歌는 무제에게 자신의 여동생을 추천하며 부른 노래입니다. 협육도위 이연년의 시로, 이때부터 다섯 글자로 늘어난 문장이 보입니다.

北方有佳人 북방에 아름다운 사람이 있어

絶世而獨立 세상에서 떨어져 홀로 서 있네

一顧傾人城 한 번 돌아보면 성을 위태롭게 하고

再顧傾人國 두 번 돌아보면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

寧不知傾城與傾國 어찌 경성이 위태로워지고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것을 모르겠냐만

佳人難再得 아름다운 사람은 다시 얻기 어렵다

-十五從軍征은 한대의 악부시입니다. 열다섯에 원정 갔다가 여든에 돌아왔다는 것에서 이미 등장인물의 허망함이 느껴지는 시 같습니다. 旅穀은 누가 심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씨앗이 날아와 자란 것입니다. 그만큼 집에 사람이 살지 않게된 지 오래되었다는 뜻이죠.

十五從軍征 : 열다섯 살 전쟁터로 나가

八十始得歸 : 여든 살에 비로소 돌아올 수 있었다

道逢鄕里人 : 길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

家中有呵誰 : 우리집에 누가 사나 물어보니

遠望是君家 : 멀리서 보이는 저것이 그대 집일세

松栢家留留 : 소나무와 잣나무 사이로 무덤이 보이네

兎從拘頭入 : 토끼는 개구멍으로 들나들고

鴙種梁上飛 : 꿩이 들보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中庭生旅穀 : 안마당에는 들곡식 우거졌고,

井上生旅葵 : 우물가에는 들아욱 멋대로 자라고 있었다.

烹穀持作飯 : 그 곡식을 익혀 밥을 짓고,

採奎持作羹 : 그 아욱을 따서 국을 끓이니,

羹飯一時熱 : 밥과 국은 금방 되었건,

不知貽阿誰 : 누구에게 이것을 먹으라 해야할까,

出門東向望 : 문밖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淚落沾我衣 : 그저 눈물만 흘려 내 옷을 적시는구나.
전체 1

  • 2018-07-17 11:40
    시경은 정말 논란거리가 많은 텍스트네요. 공자가 시삼백 얘기했으니까 시경도 공자가 지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여러 얘기가 아주 복잡하게 얽혀있었군요.
    그리고 시가 이렇게 가슴을 후벼팔 수 있는 건지 계속 감탄하게 되네요. 그냥 옛날 감성이 아니었어요. 시간이 흘러도 다양한 시대,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 시의 매력은 도대체 뭘까요! 혜원누나가 번역한 마지막 한나라 고시, 수업 마지막에 들었던 이 시가 그날 집에 가는 내내 생각났어요. 크흡!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