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철학

2월27일_죽음철학 후기

작성자
gini
작성일
2018-02-28 13:26
조회
129
죽음 앞의 인간(2nd)

[죽음 앞의 인간]을 1/5쯤 읽고 오늘 첫 세미나를 했습니다. 이 책을 쓴 필립 아리에스는 프랑스 역사학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더군요. 학사출신에 십수 년 간 다른 일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자료를 모으고 공부하여 중요한 책들을 써냈습니다. 저작으로는 이 책 [죽음 앞의 인간] 뿐 아니라, [아동의 역사], [사생활의 역사]가 있고, 스스로를 일하면서 공부하는 사람이라 하여 '일요일의 역사가‘라 칭하고 쓴 동명의 책 [일요일의 역사가]도 있습니다.

아리에스가 쓴 책들의 제목은 좀 독특합니다. 하긴 요즘에는 이런 식의 제목이 붙은 미시 역사서가 많아 더 이상 낯설지 않지만, 아리에스는 말하자면 이런 류의 책도 역사책일 수 있다 생각하게 만든 가장 큰 공헌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아리에스가 속한 아날학파가 형성되기까지 역사란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교과서식 역사만을 지칭하는 것이었습니다. 자료란 공식문서 예컨대 이조실록 같은, 공적인 기관에서 나온 것만이 인정되었으며, 왕조 중심의 정치사,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직선적 시간관의 관점에서 쓰여진 것만이 역사였던 것이죠. 그것도 역사지만 그것만이 역사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리에스가 잘 보여줍니다. 다른 흐름들, 그와 같은 흐름에 포착되지 않는 무수한 방향의 흐름들이 있었고 이 역시 역사라는 이름에 충분히 포함될 수 있는 것이지요. 아날학파는 기존 역사학계의 일방적인 판도를 다양한 관점에서 더욱 풍부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듭니다. 그 후 수많은 미시사(史)들이 나오게 됩니다. 이쪽에 너무 유명한 저자, 미셀 푸코입니다. 그가 쓴 [성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처럼 성, 아동, 죽음 같은 하나의 토픽을 가지고도 충분히 역사가 전개될 수 있음을 이들은 보여줍니다. [죽음 앞의 인간]은 공식(통계)자료 뿐 아니라, <롤랑의 노래>, <트리스탄과 이졸데> 같은 문학작품도 인용합니다. 이전에는 문학작품이 역사적 자료가 될 수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문학작품만큼 사람들의 생활과 정신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는 책도 없을 텐데 말입니다.

[죽음 앞의 인간]은 죽음을 대면하는 방식을 가지고 고대부터 써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서양에서 죽음이 삶의 반대 극단으로 취급되기 시작한 때는 아무래도 18세기 이후입니다. 그 전까지 죽음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것이었고, 단순한 것이었고, 일상적인 것이었고, 공개된 것이었습니다.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현대의 우리들이 갖지 않은 감수성의 소산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각할 수 없다고 그러한 태도가 마치 과거인들 전체가 도(道^^)가 높은 사람들이었다고 판단하는 건 도가 지나친 일이겠지요. 그들이 처한 현실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세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들은 사체의 뼈를 발로 차고 다녔습니다. 공동묘지 위에 장이 섰고, 거기서 축제를 벌였고, 공동체의 많은 공공 행사를 치뤘습니다. 공동묘지는 교회와 교회마당이었고, 그곳에 묻히기를 원했던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사태가 그 오랜 기간 동안 벌어졌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죽음을 매일 일상에서 대면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당연히 죽음은 돌연한 것이 아니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남은 날을 알고 가까운 사람들과의 영원한 이별을 미리 준비할 수 있었던 과거인들의 감수성은 감히 느낄 수는 없겠지만 이해만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누구나 죽지만 아무리 아파도 내가 죽는다는 생각은 안 드는 우리에게 죽음은 언제나 두려운 것으로, 유예시키고 싶은 것으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전체 2

  • 2018-03-01 01:38
    죽은 자들이 존재하는 장소는 늘 산 자들로 북적였다. 탄생과 죽음을 일상 속에서(병원이 아니라) 늘 경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저에게는 내 삶이 어디에, 누구와 함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1장이었는데요. 죽음을 둘러싼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을 것 같아요. 윤영이의 '찬란한 죽음'관은 또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궁금해집니다. ^^ 후기 감사합니다. 다음주에 뵈어용~

  • 2018-03-01 11:48
    푸코의 <성의 역사>는 미시사가 아니구요^^, 역사에 대한 푸코의 관점과 태도가 아날학파(특히 브로델)의 역사연구와 연관되는 지점이 있다, 아리에스는 갈리마르가 거부한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출판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아리에스의 연구가 이후 역사 연구의 영역을 확장했다, 이런 얘기였습니다.^^ 특히 아리에스의 역사와 연관해서는 '심성사'(마음의 구조)가 뭔지를 강조했더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