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철학

일상의 철학 3회차 후기

작성자
정옥
작성일
2018-03-10 07:35
조회
127
3월 6일 죽음의 철학 3회차 후기

생명서, 삶이 책에 기록되다

이번 시간엔 아리에스의 『죽음 앞의 인간』 「자신의 죽음」 3,4장을 읽었습니다. 이 장에선 길들여진 죽음의 시대에 가졌던 자연적이고 공동체적인 죽음이 어떻게 개인 차원의 문제가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중세 사람들의 기본 사상은 사후에도 삶이 지속된다는 연속성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중세 초기 사람들은 죽음을, 잠을 잔다고 묘사하거나 편안한 안식으로 여겼습니다. 죽음과 동시에 부활을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이를 통해 내세의 삶은 자연스럽게 보장되는 것이었지요. 12-3세기는 책이 보급되기 시작한 때이지요. 그리스도교 교리와 공통의 언어, 단일한 이해 체계를 가지고 있던 중세에 <마태오 복음서>를 비롯한 여러 책들이 보급됩니다. 책은 한 권에 모든 것이 들어 있어 열고 닫으며 볼 수 있고,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인간의 삶이 영속된다고 믿었던 의식엔 종말론이라는 새로운 사상이 등장합니다. 아리에스는 최후의 심판 도상들이 이때 생겨났다고 봅니다. 최후의 심판은 세계의 종말에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인간을 심판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죠. 그리스도는 옥좌에 앉은 심판자가 됩니다. 이제 죽은 자들은 부활의 순간에 심판이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지요. 그 결과에 따라 천국으로 향하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 결정됩니다. 부활과 심판이 분리된 것입니다. 이 때 심판을 위해 두 가지가 등장하는데 저울과 책입니다. 죽은 자의 영혼은 저울로 개량되며 이를 위해 평가 대상인 인간의 행위는 한 권의 책에 낱낱이 기록되는 것이었죠. 이 책은 ‘생명서’라고 불리고 13세기가 되면 인간의 활동 내역이 기록 된 ‘장부(registre)’의 역할을 합니다. 처음의 책은 두루마리형 서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종말의 순간에 펼쳐지는 것이었지요. 두루마리형 책이 열고 닫는 책이 되면서 선악을 두 축으로 삶의 대차대조표가 만들어지고 개인의 말과 행동, 사고까지 모든 사실들의 총합이 책에 기록됩니다. 종말의 순간에 펼쳐졌던 심판은 죽음을 앞둔 침상머리까지 침범해 죽음을 기다리는 자를 미리 심판하게 됩니다.

죽어가는 자를 여러 사람이 둘러싸고 공동체원이 함께 맞이하던 죽음은, 이제 개인의 것이 되었습니다. 심판은 개인을 향해 이루어지고, 나의 삶은 다른 누구에 의해 씌여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되고, 누군가 나의 삶을 대신 판단하고, 신에 의해 읽혀지는 것이 되었습니다. 삶과 분리되지 않았던 죽음은, 비장해지고 악으로 특화되어 버립니다. 죽은 사람의 시신이 부패되는 과정을 그린 마카브르 도상은 이때 많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산자와 죽은 자는 분리되고, 영육도 분리됩니다. 생은 선한 것이라는 특별한 이미지가 구축되고, 심판 받고 구원되는 것은 나에 대한 책임력으로 귀결되어 버립니다.

유언장, 내세에 대한 보증서

죽음은 이제 마지막 순간의 마지막 말이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이 때 내세까지의 영속성이 결정되기 때문이지요. 유언장은 이 영속성을 위해 등장한 것입니다. 선민샘은 영속성을 쓰기로 가져간 것이 유언장이라고 하셨지요. 내세라는 관념은 현세와의 관계 속에서 출현합니다. 아리에스의 해석에 따르면, 자연과 문화에 대하여 방어적인 태도만으로는 안 된다는 의식이 생긴 것이라고 합니다. 해서 죽음이나 성, 계급에 대해 힘의 배분을 새롭게 하게 되었고, 죽음에 대해서는 훨씬 공고한 방어막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배경아래서 개인의 것이 된 죽음은 유언장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냅니다.

유언장은 죽음의 마지막 순간 신과의 중개를 돕기 위해 미사를 드려주는 사제의 이해관계와, 자신의 죄를 요금지불을 통해 대속 가능하다는 인식 속에서 생겨났습니다. 유언장은 상속의 개념이 아닙니다. 죽은 후에도 자신이 이름이 불리어지며 지속될 미사의 횟수, 가난한 보조사제들, 탁발 수도사, 고아, 시설등 가난한 영혼을 구제할 구체적 내용들이 기록됩니다. 미사 몇 회, 어느 곳, 몇 명에게 얼마씩 얼마 동안 하는 식으로요. 가능한 많은 수의 사제들과 빈자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 명예로운 것으로 생각되었지요. 이렇게 지정된 사람들은 죽은 자의 장례 행렬을 따라 장지까지 함께 이동하며 명예를 보증합니다. 내세뿐 아니라 현세에서도 공덕을 많이 베푼 사람이 명예로운 것으로 여겨졌지요. 기부나 과거 성직자들이 주관하던 경제적 기능을 유언장이 대신하게 된 것이지요. 이로써 ‘부’는 저주는커녕 속죄의 대체제로, 또 신성성으로 다가갈 수 있는 특권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부에 대한 지독한 애착으로 나타났는데, 아리에스는 중세 사람들이 ‘금은보화와 재물을 짊어지고 무덤 속으로 들어가 금고를 영원토록 간직하고자 했던’ 사람들이라고 표현합니다. 부와 죽음의 관계를 놓고 보면 죽음은 어려움 없이 받아들였으나 ‘가옥과 전답을 버리야 한다는 사실’에는 마음에 준비를 못하였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산 증여를 통해 영원한 재산을 보장받음과 더불어, 현세에서의 사물애착도 역으로 정당화 될 수 있었던 겁니다. 아리에스는 유언장을 통해 죽음이 개별화되었지만 아직은 침상에 누워 만인이 참석하는 가운데 맞이하는 죽음과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죽음을 수용하고 삶에서 죽음을 준비하고, 현세에서도 잘 살아가고 죽은 후에도 잘살아가기 위해 예전의 죽음의 口演을 개인화해 글로 재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고통에 대한 발명

세미나 말미에 샘은 고통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얘기를 하셨어요. 고통에 대한 거리두기를 한 장 켈레비치와 달리 고통을 적극적으로 사유한 이반 일리히의 태도에 대한 것이었죠. 얼굴에 난 혹을 제거하는 것이 존재가 바뀌는 것이라 여겨 고통까지도 존재로 껴안은 그 태도 말입니다. 저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사유는 하고 있었지만, 육체적 고통에 대한 준비와 자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죽음을 고통과 더불어 사유해보지도 않았고요.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어, 라고 말하는 속에는 그 치료가 더 고통스러울 거라는 전제 또한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고통에 대한 발명이라는 화두는 저를 한껏 때리고 갔습니다.

유언장의 의미는 삶의 벡터를 바꾸었다는데 있습니다. 살고자하는 욕망만을 작동시키다가 죽음을 사유함으로써 삶을 다시 보게 만드는 것이니까요. 병원에 맡겨지는 현대의 죽음은 죽음으로부터 자신을 소외시키게 됩니다. 죽음으로부터의 소외가 삶의 소외를 부르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자기 삶의 방향을 모르고 예측하지 못하는 자기도 모르는 자기의 삶. 유언장 부분을 발제하면서 또 세미나를 하면서, 유언장을 작성해 보거나 삶을 정리하는 짧은 편지라도 써 볼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죽음을 특별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죽음을 제 삶에서 소외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통은 죽음을 사유하는 좋은 기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쫀득한 삶’을 강조하시는 선민샘 앞에 이렇게 헐렁하게 며칠을 버리고 이제야 후기를 올리네요. 샘과 팀원께 정말 죄송하고요, 담주 공지입니다.

담주는 5장<횡와상, 기도상,그리고 영혼>- 발제: 김승우샘

6장<전환>- 발제: 은하샘

간식: 은하샘입니다.

즐거운 화요일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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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12 08:40
    중세 중반기에 유럽 사람들은 삶에 대한 깊은 애착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생명 연장의 꿈'에 매몰된 우리 시대의 애착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 죽음 이후의 시간을 준비했거든요. 최후의 심판 앞에서도 끝까지 당당했습니다. 유언장 등에서는 '내 죽음은 내가 알아서 한다'는 태도가 나타나 있었어요. 이때 자식이나 남겨질 가족을 거의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점! 오늘날처럼 끈끈한 가족애가 이들의 유언장에는 없었습니다. 한 개인이 이생과 내세를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으로 파악하고, 그런 운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중세인들에게 '생명 연장의 꿈'을 이야기했더라면, 정말 기막혀 했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