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10,18 소생프로젝트 후기

작성자
정옥
작성일
2018-10-19 19:48
조회
75
181012 소생프로젝트 후기

 

시원한 바람에 가을이 깊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요즘입니다. 산책길이 한껏 즐겁습니다. 이번 주 함께 공부한 텍스트는 계속 읽고 있는 <천일야화> 4권과 <일리아드> 1권~5권이었습니다. 천일야화는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생각거리를 계속 던져주고 있는데요, 세미나에서는 행·불행을 대하는 자세, 돈과 가난에 대한 관념, 웃음, 칼리프의 특성, 환대 등의 주제들로 토론을 했습니다. 그 중 강의와 겹치지 않는 주제를 보겠습니다.

 

질서를 교란시키는 자 칼리프: 왕 중의 왕으로 절대 권력을 가진 존재로 보이는 칼리프의 특성에 대한 토론이 있었는데요, 천일야화의 4권에도 등장하여 최다 출연을 기록하고 계시는 하룬 알 라시드 칼리프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칼리프는 기존의 왕의 이미지로는 잘 포착되지 않는 존재입니다. 최고 권력자란 법과 규칙을 만들어 사회를 질서지우고 혼란을 방지하려고 애쓰는 자이지요. 그러나 천일야화의 칼리프는 오히려 질서를 교란시키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처음 만난 젊은이에게 대뜸 칼리프 자리를 내어주기도 하고, 변장을 하고 이 곳 저 곳을 다니며 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천일야화에서 규정된 질서란 찾아보기 어렵죠. 늘 이야기는 예상을 벗어나고 엉뚱한 곳으로 튀어나갑니다. 칼리프도 예외는 아니지요. 모든 질서는 이미 질서 해체를 동반하고 있으며, 차이를 통해서만 항상성도 이루어짐을 칼리프가 전해주고 있습니다.

 

환대의 조건: 지난 시간에도 강의 되었던 환대에 대해서도 좀 더 토론이 있었는데요, 환대받을 수 있는 사람의 조건에 대해서였는데요. 언제든지 적대자로 돌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만이 ‘환대’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죠. 적이 될 수 있는 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아부하산의 이야기를 보면, 검둥이로 대변되는 노예나 하급계층, 이웃사람은 낯선 사람이더라도 적수로 보지 않습니다. 아부 하산은 이방인을 맞이하기 위해 바닷가에 나가 기다립니다. 낯선 사람이 들어와 이야기를 듣고, 그걸 함께 겪고, 망하고 그렇게 적으로 돌변하기도 하는 그런 상대를 기다리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이야기를 가지고 초대 받은 자만이 문을 열고 들어 올 수 있 수 있고, 그 문턱을 넘을 수 있습니다. 그가 이방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나갈 때는 꼭 문을 닫아달라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환대의 조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토론이었습니다. <천일야화>에는 악령에 대한 언급도 많이 나오는데, 초대 받지 않았는데 진입하는 자를 말하는 것 아닐까, 라는 의견도 있었죠. 환대는 무작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샘의 강의를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돈에 대한 관념

 

<천일야화>에 나오는 돈에 대한 관념은, 상인계층과 농경을 하는 정주민을 대별해 보면 좀 더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천일야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돈 쓰는 것을 보면 참 걱정스럽습니다. 친구를 불러 매일 저녁 파티를 열어 베풀고, 친구가 맘에 드는 땅이나 재산에 대해 칭찬을 하면 그냥 줘버리고, 남은 재산을 살필 틈도 없이 흥청망청 써버립니다. 그렇게 다 탕진하고 나서 거지가 되면 그 상황을 또 받아들입니다. 도움을 요청한 친구의 거절을 욕하는 게 고작입니다. 이들이 걱정스러운 우리의 우려는 프로테스탄티즘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게 샘의 설명이셨죠. 기독교인들에게 절제는 반드시 지켜야할 미덕입니다. 방탕과 방종은 신의 나라에 진입할 수 없는 큰 죄가 됩니다. 이것은 자본주의에도 그대로 도입되어 사치와 낭비는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사치, 낭비의 금지는 실은 축적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자본주의에서 돈은 축적하는 것이고 재투자를 통해 잉여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정주민의 마인드이지요. 정주민은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며 자신들의 재산을 함께 지켜 나가야 할 의무가 있죠. 가정을 꾸리고 그것을 중심으로 축적을 통해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그러나 상인이 주 계층을 이루는 아랍인들에게는 방탕한 소비나 축적에 대한 도덕적 규제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금은보화로 치장을 합니다. -그래서인지 동양은 화려하고 사치스럽다는 것이 서양인의 인식이었다고 하네요.- 아랍인들에게 돈은 ‘쓴다’는 생각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상인의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상인들에게 돈은 들어왔다 나가는 것이죠. 그들에게 돈은 순환되어야 하는 것이지 축적해 놓는 것이 아닙니다. 물건을 구해오고 팔러 다녀야 하는 이들에게는 유지하고 지켜야 할 공동체라는 것이 필요치 않아서 일수도 있습니다. 가족이나 공동체 중심의 사회구조가 아닌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혈연관계보다는 신뢰이지요. 계약과 실행이 중요하죠. 그래서 재산을 공평하게 나누는 분배의 정의 같은 것도 작동하지 않습니다. 상인은 흥미로운 존재입니다. 그들은 타자에게 먼저 다가가는 존재이고, 장사를 한다는 행위 자체가 경계를 허물고 넘나들고 뒤섞이는 과정이기도 하지요.

 

마법

 

<천일야화>에는 마법사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갖가지 마법을 부려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 존재입니다. 이 때의 마법은 변신과는 다른 것이죠. 나카자와 신이치는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에는 시간이 중첩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마법이란 것은 실존한다고 느끼는 세계 이면의 시공간을 끌어들이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존한다고 느끼는 규정되고 균질한 시공간이 세계의 전부가 아닙니다. 마법이란 그 시공간의 다른 차원으로 진입함을 말합니다. 마법사는 이 다른 힘들을 감지할 수 있는 존재인거죠. 현실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의 중개자들이 마법사입니다. 그들에겐 시간선이 다르게 흐르고 있겠지요. 채운샘은 카스타네다의 <자각몽, 또 다른 현실의 문>에 나오는 멕시코 주술사들을 예로 소개해 주셨는데요, 그들이 약초를 통해 마법을 구현해 보고자 하는 것 역시, 다른 시공간으로 진입하는 시도를 하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닐까, 라고요. 근대가 담지 못하는 고대 사유, 그 상상력의 하나가 마법인 것 같습니다. 해서 샘은 착한 사람의 집합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세계인 천국이 가장 상상력이 빈약한 세계가 아니겠냐고 하셨는데, 단테 천국편의 지루함이 되살아나 정말 공감 했습니다.

마법의 세계와 관련해 친애하는 키아로스타미님이 이번 시간에도 출현하셨는데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 관한 샘의 재미난 설명과 함께 말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아마드가 네마짜데에게 건네는 노트에는 한 송이 꽃이 꽂혀 있었죠. 샘은 이것이 생의 마법 같은 순간이 아닐까, 라고 해석하셨는데요, 해서 전날 밤에 헤매던 길과 할아버지들의 잔소리가 외려 꿈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셨죠. 연출과 각색이 있긴 하지만 리얼리즘을 구현하려고 애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키아로스타미는 리얼리즘을 넘어선 지평에 있다고 하셨어요. 키아로스타미가 꽃 한송이를 통해 영화적으로 현실을 중첩시키고 있다고 생각하니 다른 영화도 곱씹어보게 되네요. 여자를 설득하기 위해 무수히 해대던 말과, 아련하게 뛰어오던 나무숲과 고물 차를 타고 애써 오르려 하던 그 길이, 실재라고 믿는 것을 의심하게 만드네요.

페르시아의 사유에서 마법은 현실이 아닌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서양의 마법사나 주술사는 숲이나 외딴 집에 거주하며 공동체로부터 추방되어 경계에 머물며 중앙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천일야화>에 등장하는 마법사에게는 그런 이미지가 없습니다. 그들은 집에 거주하거나 마을에 한둘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며 개입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부리는 악행도 극단적 저주나 영원한 고통 같은 것은 없습니다. 인간을 새로 변화시키거나, 그마저도 40일한정이라는 나름의 귀여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극단적 악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이들은 질서 정연한 삶을 교란시켜 새로운 사유의 창구를 만들어주고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존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중심에서 중심을 해체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마법적 사유가 가능한 아랍인들은 그렇게 내면 없이 신의 이름으로 가볍게 문제를 받아들이고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냥 퉁치고 지나갔던 이야기들을 좀 더 세밀하게 읽어야겠습니다. 재미있네요.

 
전체 1

  • 2018-10-20 13:00
    축적-농부의 대립으로 유목이 아니라 상인이 얘기되는 게 재밌네요. 상인은 돈에 대한 그들만의 태도가 있는 존재니까 그때 작동하는 윤리가 뭔지 또 궁금해지네요.
    마법 얘기도 시공에 대한 다른 감각을 가지는 것과 관련된 기술이란 것도 중요한 소스인 것 같아요. 크~ 파면 팔수록 팔 게 많아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