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소생 프로젝트 강의 후기 <천일야화 4 & 일리아스>

작성자
지영
작성일
2018-10-20 03:25
조회
69
천일야화 4 & 《일리아스》 강의 후기

천일야화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관계, 경제관, 도덕성 등이 중요하게 작동하지 않는 세계이다. 우리가 행불행이라고 느낄 법한 상황에서 통곡도 하고 원망도 하고 적극적으로 행복을 쟁취하려 하면서 고통을 받고 죽기도 하지만 그 행위와 사건이 비극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비극의 배제는 《일리아스》에도 나타나는데, 연결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천일야화에 나타나는 돈을 쓰는 방식
자본주의는 소비와 함께 축적을 강조하기 때문에 소비를 장려하면서도 흥청망청 쓰는 것을 비난한다. 사치와 낭비는 도덕적 결함이자 죄로 여기는 것이다. 때문에 돈을 증식시키고 내 것을 지키는 것이 정당한 관념이지만, 천일야화의 인물들은 사치하고 저축해야 한다는 개념이 없다. 가령 재상이었던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은 누레딘은 아첨이나 칭찬을 하는 친구들에게 너무나 스스럼없이 돈을 쓴다. 또 재산 관리자가 몇 번이나 경고를 해도 누레딘은 그저 ‘맛있는 음식’만 있으면 된다고 신경 쓰지 않는다. 그가 돈을 쓰는 행위는 투자나 교환이 아니라, ‘내가 즐겼다’는 느낌에 기반한다. 천일야화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다만 어떤 인간의 앞뒤 안 가리는 기질 정도로 묘사된다.
누레딘이 결국 재산을 탕진하고 생활비도 마련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을 때도, 비극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늘 그의 곁에 붙어 살갑게 대하던 친구들이 돌변해서 그를 냉담하게 대했을 때 누레딘이 그들을 욕을 하긴 하지만 원망하고 또 원망하며 집착하지 않는다. 가재도구를 팔고 생활비를 마련해서 살다가, 왕의 분노를 피해 야반도주하다 시피 도망치지만 수중에 돈이 없다고 해서 인색하지 않다. 돈이 있으면 쓰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살고, 주고나면 미련이 없는 태도가 천일야화에서 느끼는 낯선 지점이다.



*서사시란 무엇인가

우선 서사시는 쉽게 말해 ‘이야기가 있는 노래’로, 《일리아스》에서는 시인이 ‘신과 영웅의 행적’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일리아스》의 서사시는 단순히 고대의 신과 영웅의 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읽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말해 볼 수 있을 듯하다. 가령 채운샘이 주신 참고 자료를 보면, 루카치·바흐친·에리히 아우얼바흐가 서사시를 읽는 서로 다른 방식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호메로스 서사시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루카치는 서사시의 세계가 “하나의 동질적 세계”라고 말한다. 서사시에 나타나는 인물의 행위를 보면 ‘주체, 자아, 내면’등의 개념을 찾을 수 없으며, 그들은 “존재와 운명, 모험과 완성, 삶과 본질을 동일한 개념”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세계에 대한 이해해서도 반복된다. 때문에 세계는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충만한 세계라고 말한다.
바흐친은 서사시의 세계를 “모든 것이 완성되었고 이미 종결된 상태”라고 말한다. 서사시의 시대는 민족의 역사에 있어 ‘시초’와 ‘절정기’를 보여주는 “절대적 과거”로써, 실제의 역사적 시간에 구애 받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현재는 영원히 연속되는 세계로 과거와 미래에 상대적이지 않다. 그 속의 개인 또한 그 자체로 완결된 존재로써 하나의 통일된 세계관을 가진다. 인물들이 자기 자신과 절대적으로 동일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에리히 아우얼바흐는 서사시와 구약의 현실 재현을 비교한다. 여기서 후자는 배경을 과거로 상정하거나 인물의 후면에 두는 반면, 전자는 모든 것이 ‘전경前景’ 속에서 일어난다. 현상, 시간·공간관계, 심리과정 등등이 그때그때 이야기하는 현재 속에 서술되는 것이다. 이런 속에서 인물의 운명도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다. 기독교의 주인공은 사건을 겪으면서 ‘발전’하지만, 호메로스의 인물들은 현재를 살 뿐 ‘발전’하지 않는다. “아킬레우스는 시종일관 아킬레우스이고, 오디세우스는 여전히 오디세우스.”인 것이다.

이와 같이 서사시를 읽는 세 가지 방식 속에 “지금 우리가 인간과 세계를 ‘알고’ ‘느낀다’”라고 하는 것과 아주 다른 감각과 앎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세계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세계와 관계 맺었는지, 그들에게 윤리란 무엇이었는지.’ 등등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이들과 또 다른 지점에서 호메로스의 세계를 읽어낼 것인지 앞으로 더 생각해 보아야겠다.
전체 3

  • 2018-10-20 11:19
    있는 걸 싸안지 않고 인색함 없이 펑펑 써버리는 아랍인의 마인드가 그저 놀라울 뿐...
    그것이 상인의 정서와 연결될 수 도 있다는 것이 재밌었는데 만수르의 씀씀이 스케일이 거대한 것이 새삼 이해가 됩니다

  • 2018-10-20 13:09
    이런 쌈빡함! 쿨함! 어떤 불행이 닥쳐도 그것을 비극적으로 만들어버리지 않는 게 참 신기해요. 비극이 뭔지도 궁금하기도 하고 @_@

  • 2018-10-20 14:36
    과거와 미래에 상대적이지 않은 절대적 시공간, '발전'하지 않는 인물들. 넘나 낯선 것! 그렇다면 이들에게 살아간다는 건 무엇인지 궁금해지네욥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