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 <클로즈업> 후기!

작성자
민호
작성일
2018-10-26 17:06
조회
103
키아로스타미 <클로즈업> 후기 / 2018년 10월 26일 / 성민호
키아로스타미는 난마처럼 얽혀 있는 사회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 방법이 어느 하나의 잣대나 각도로 이해될수 없다는 것을 안과 밖, 수동성과 능동성, 무기력과 개방성의 중층적인 구조로 제시하고 있다. <페르시아 문화> p76, 신규섭, 살림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와 같이 <클로즈업>도 뜬금없이 시작한다. 시작과 함께 앵글 안을 다 가리고 지나가는 차들과 치고 들어오는 소음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진다. 경찰서에서 나온 기자는 흥분한 채 경찰 2명과 함께 택시에 탄다. 택시에서는 들떠서 지금 모흐센 마흐말바프라는 영화감독을 사칭한 사람에 대한 신고를 받고 현장에 가는 중이라고 택시기사에게 줄줄이 떠벌린다. 그 감독을 아느냐고, 그의 영화 ‘사이클리스트’는 봤냐고 묻지만 택시기사는 모른다고 한다. 어쨌든 내 손님은 아니니까 하면서. 자꾸 빗나가는 것 같지만 이들의 대화는 껄껄 웃으며 이어진다. 길을 몰라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알려주고 나서 칠면조 사지 않겠냐고 하며 칠면조를 들이민다. 목적지에 도착해 기자가 잠시 나가자 택시기사와 경찰들의 대화가 이어진다. 이스파한 출신인데 테헤란에서 현재 근무 중인 경찰, 테헤란 출신이지만 예전에 이스파한에서 근무했던 택시기사. 기다리는 동안 낙엽더미에서 꽃을 주워 다발을 만든다. 그때 거기서 굴러가는 스프레이 깡통. 기자는 신이 나서 신고자와 함께 나와서 택시비를 지불한다. 돈이 모자란지 신고자 아한카흐에게 빌려서 택시비를 낸다. 그리고 녹음기를 빌리러 집집마다 초인종을 누르고 다니고 스프레이 깡통을 발로 차고 달려간다.

도입부를 보면서 과연 이게 누구의 이야기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기자가 이야기하는 대상은 택시기사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기자가 계속 말하면 대꾸를 해준다. 그리고 기자는 또 훌쩍 앵글에서 나가버리고 기사는 경찰들과 대화한다. 카메라가 특정 누구를 보여주고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카메라가 잡는 곳에 인물들이 들어왔다 나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기자의 기사는 신문에 실린다. 사브지안이라는 사람이 모흐센 마흐발바프라는 영화감독을 사칭해 아한카흐 집안에 영화를 찍겠다는 목적으로 들어와 돈을 빌리기도 하고 연습을 시키는 둥 사기를 쳤다는 것. 그렇게 감옥에 가게 된 사브지안에게 키아로스타미가 찾아와 그의 재판을 찍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진술과 원고의 진술이 이어지고 그 사이사이로 사브지안이 버스에서 아한카흐 부인을 만나는 장면, 아한카흐의 집에 들어와 체포되기까지의 장면이 과거의 장면인 듯 삽입된다.

<클로즈업>은 애초에 유명감독을 사칭한 남자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작과 함께 시작한 영화라고 한다. <클로즈업>의 cast를 보면 놀랍게도 키아로스타미, 모흐센 마흐발바프. 호세인 사브지안이 있다. 실제 사건의 인물들이 그 사건을 찍는 영화 속에 등장한다. 인물들이 연기하는 배역은 자기 자신이다. 또 영화가 담고 있는 장면은 그 사건을 영화로 찍는 장면이다. 진술 장면에서 사브지안은 감독보다는 배우 쪽이 더 관심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감독을 사칭했다. 즉 감독 연기를 했고, 감독을 연기했던 자신을 배우로서 다시 연기하고 있다. 아한카흐의 아들은 여전히 사브지안이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곳에는 카메라가 놓여있고 사브지안은 판사보다 카메라를 보며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순간 감독 키아로스타미가 관객이 되어버린다. 이쯤되면 도대체 진짜가 뭐냐고 묻는 질문이 공허해진다. 과연 마지막에 등장하는 마흐발말바프는 진짜 그 감독일까? 중간에 나오는 키아로스타미는 진짜 키아로스타미인가? 구글에 올라와 있는 cast의 사진과 이름은 진짜 그 사람인가? 실제 저런 사건이 있기는 했던 걸까? 영화와 현실, 감독과 배우, 배우와 관객, 연기와 실재의 구분이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재판에서 사브지안의 진술은 유명 영화감독들의 말이 자신의 말과 구분 없이 섞여있다. 자막에 작은 따옴표로 나와 있어서 우리는 구분할 수 있었지만 과연 실제로 그의 말을 듣는 사람은 구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버스를 타고 이동한 것에 대해 영화감독도 일반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자기가 이미 유명 감독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었다. 정말로 그는 몰입해 감독이 되어버리는 연기를 한 것이지 결코 누군가를 속인 것이 아니다. 거짓말이 아니다. 거짓말이 가능한 것은 스스로에게 진심과 거짓말 사이의 진위 판별이 분명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재판에서의 진술 장면의 화면은 굉장히 흐릿하게 나오는 반면 과거의 재현 장면은 햇빛이 비치는 굉장히 선명한 화면이다. 재판 영상이 실제 재판을 촬영했던 것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 두 장면의 대비는 의미심장하다. 영화상에서 재판을 하고 있는 현재는 그렇게 흐릿하지만 감독 행세를 하는 장면은 선명하게 비춰지고 있는 것.

또 재판이 끝나고 마흐말바프와 사브지안의 만남 장면도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마흐말바프의 망할놈의 음향장비”라고 말하며 바쁘게 둘을 쫒는 촬영자들은 그의 스태프인가? 지금까지 고정되어 있었던 카메라가 인물을 따라가고, 막상 따라가는데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차들이 앞을 계속 막아선다. 또 그들은 꽃을 사서 다시 아한카흐 집으로 가는데 그때의 꽃은 처음 택시기사가 그 집 앞에서 주웠던 꽃과 닮았다. 그 꽃이 과연 그 꽃인가? 그럼 영화가 시작되는 장면과 그 영화가 담으려고 했던 영화의 시작은 같은 시점인건가하는 의문이 든다.

이 외에도 여전히 의미심장한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 사건을 신문에 대서특필하는 기자의 기쁜 얼굴과 그 신문에 실린 사브지안의 얼굴. 도입부가 끝나고 영화 제목이 깔리는 장면은 그 기사가 인쇄되는 장면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사브지안은 인쇄소에서 일한다.

잘 이해되지는 않지만 되짚어볼수록 의미심장하고 구분이 애매모호해지게 만드는 영화이다. 내가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그것이 무언가를 사칭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사칭하지 않은 다른 상태라는 것이 과연 있는 것인지... 그걸 들여다보라는 의미에서 클로즈업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인지...?? @-@

처음 도입부에 낙엽더미 위에서 굴러 떨어지던 프링글스 어니언맛 통을 닮은 깡통이 강렬한 이미지로 박혔다. 낙엽 더미에서 꽃을 줍고 있는 순간과 깡통이 아스팔트 위를 지그르르 굴러가는 순간. 한갓지게 꽃을 줍는 것이 상상과도 같은 비현실적인 순간이라고 한다면, 그 순간을 비집고 들어오는 현실 속의 소음. 사브지안이 감독 행세를 하고 집에 들어왔을 때 그 역할을 벗어던져야 했다고 말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늘 우리의 상상과 비현실을 치고들어오는 것은 날카로운 현실의 소음이다. 카메라는 한참을 그 깡통이 굴러가는 모습을 잡는다. 그리고 녹음기를 빌려 달려 나가는 기자가 그 깡통을 깡하고 차버린다. 이것은 마치 비현실과 현실, 거짓과 진짜를 나누는 우리의 구분을 깡하고 차내어 찌그러뜨려 버리겠다는 상징과도 같은 장면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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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27 13:06
    후기를 읽다 보니 '클로즈업'이란 제목의 의미가 궁금해지네요. 어떤 전체적인 시점에서 하나로 집중되는 것이 클로즈업이라면, 키아로스타미는 무엇을 집중적으로 보고 있었을까요?
    그날 전멸했다는 소식이 들리긴 했지만, 졸리기만 했던 압바스류의 영화가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 같네요. 저도 조금씩 덜 자게 되는 것 같고 ㅋㅋ

  • 2018-10-28 09:41
    오오! 자다깨다 틈틈히 봐서 내가 스토리를 놓쳤다고 여겼는데, 영화 자체가 아브지한은 이런 저런 정황상 사기꾼이다라는 식의 인과를 해체하는군요.
    아브지한 사건을 둘러싼 전체장에서 보면 그를 사기꾼이라고만 할 수 없는 다른 사건들이 끼어들고...진실이 뭔지 정의하기보다 진실의 근거를 묻는...영화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감동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