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류학

3주차 공지 및 후기 :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작성자
한역
작성일
2019-05-19 14:57
조회
99
“비교적 큰 규모의 역사적 시공간 내부에서 인간 집단들의 전 존재방식과 더불어 그들의 지각의 종류와 방식도 변화한다. 인간의 지각이 조직되는 종류와 방식ㅡ즉 인간의 지각이 조직화되는 매체ㅡ은 자연적으로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조건 지어져 있다.”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제3판), 솔 출판사, p.107)

이번 시간에는 발터 벤야민을 만났습니다. 작년에 들었던 여름강좌 이후로 두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영화와 예술을 공부하는 분들이 필히 참고한다는 논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읽었습니다. 학교 다녔을 때 이런저런 수업에서 아우라 개념에 대해 귀동냥한 적은 있었는데, 정작 그 단어가 유래했던 글을 정독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저에게 아우라는 뭐랄까, 예술품이 지닌 유일무이한 원본성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고고한 분위기? 같은 것으로 막연히 알고 있었습습니다. <기술복제..>하면 아, 아우라 말했던 글이구나, 이렇게만 이해하고 있었죠.

그런데 이번에 벤야민의 글을 읽으면서 거듭 눈에 들어왔던 말은 아우라 보다도, 그 옆에서 계속 따라다니는 ‘지각’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지각의 매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을 아우라의 붕괴로 파악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의 사회적 조건들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108) “대상을 그것을 감싸고 있는 껍질에서 떼어내는 일, 다시 말해 아우라를 파괴하는 일은 오늘날의 지각이 갖는 특징이다”(109-110) 등등. 우리는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예술작품을 대할 때, 자신의 느낌을 너무도 잘 믿습니다. 심지어 그러한 판단을 고집하면서 그것은 각자의 취향에 따른 차이라고 대충 둘러대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느낌은 온전히 우리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벤야민이 중점을 두어 말하는 요점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감각은 우리가 사는 시대의 기술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 어떤 대상을 예술품으로 느끼는 인식은 반드시 우리가 속한 시대 및 환경적 조건과 더불어 작동됩니다.

따라서 무엇을 예술품으로 보게끔 만드는 사회적인 배치를 고려하는 것은 예술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는 자에게 필수적입니다. 물론 사람이 만든 것을 모방할 수 있는 기술은 예전에도 존재했습니다. 예술을 배우려는 습작생들이나 자신의 작품을 널리 보급하려는 장인들에 의해 수행되었지요. 그런데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는 좀 다릅니다. 수공예적인 인쇄술인 목판과 석판 인쇄술을 거치면서 19세기에 사진술이 발명된 것은 작품의 모조품을 대량으로, 더욱 빠르게 양산하게 되었습니다. 복제가 가능해진 기술적 토대가 어떻게 예술품의 가치를 변화시켰나에 관해 벤야민은 예술작품의 가치가 ‘제의적인 것’에서 ‘전시적인 것’으로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제의적인 가치에서 예술품은 아우라(Aura)를 갖추게 됩니다. 아우라는 예술작품의 진품성(원본성)이 선사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말합니다. 아우라는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의 일회적인 현상”(p.109)으로 정의되는데, 이것은 예술품에 내재한 역사적인 전통과 유일무이함이 안겨주는 거리감에 가깝습니다.

무엇인가 멀리 있다는 거리감은 우리에게 범접할 수 없는 느낌을 주고, 이것은 예술을 숭배해야할 것으로 여기게끔 합니다. 벤야민은 복제기술이 확산되면서, 예술의 주안점도 작품자체보다는 많은 이들 앞에 전시된 작품을 수용하는 관객에게 옮겨갔다고 말합니다. 제의적인 맥락에서 요구되는 관객은 예술품의 진정한 가치와 작가의 의도를 알기 위해 정신을 집중해야한다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전시장에서 관객들은 산만한 정신으로 예술작품의 느낌을 저마다 받아들이고 그것의 의미를 만듭니다. 달리 말하면 이것은 그만큼 예술품을 수용해내는 다양한 힘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벤야민에게 기술복제시대의 도래는 작품을 보다 다양하게 느끼고 그것을 해석하는 관객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읽고, 생각하고 느낀 바를 글로 써옵니다. 벤야민의 글에서 배운 것과 연관지어서 질문을 만들어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간식은 주영 선생님이 맡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전체 1

  • 2019-05-19 17:10
    책을 읽을 때 복제기술이 '대중들의 작품을 대하는 태도'를 변화시켰다는 부분을 그런가보다하고 넘겼었어요. 그런데 세미나하고 강의들으면서 '기술이 우리의 지각장을 바꾸어 놓는다'라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지각이 바뀌면 이에 따라 생성되는 관념 달라질테고 그러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도 달라지니까요. 기술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고 우리 또한 암묵적으로 변화하는 지각장 속에서 그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벤야민이 던지고 있는 실천적 질문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술에 따라 변화하는 지각장에 쓸려갈 것인가, 아님 능동적으로 개입해서 예술을 정치화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