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류학

<다른 방식으로 보기> 4주차 (5.31) 공지

작성자
혜림
작성일
2019-05-26 23:50
조회
130
지난 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이어서 이번 주에 읽은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는, 물적 토대의 변화가 지각 방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더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림을 볼 때 현실보다 더 리얼하게 묘사한 것을 더 잘 그렸다고 평가합니다. 3차원으로 지각되는 현실을 2차원의 화판에 현실적으로 그려낸 그림에는 원근법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원근법은 하나의 중심점으로 시선을 모이게 해서 입체감있게 표현하는 기법입니다. 이 중심점은 세상 모든 것을 가장 정확하게 볼 수 있는 하나의 가상의 점입니다. 이 점은 불변하는 가장 정확한 시점, 즉 신의 시점으로 여겨집니다. 반면에 인간의 시선은 계속 이동하기 때문에 매번 달라지고 왜곡이 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신적인 시선을 통해서 바라보는 세계가 좋다고 느끼고 익숙해지면, 매번 달라지는 인간의 시선은 무시되고 보는 행위 속에서 단 하나의 초월적 시선을 의식하게 됩니다.

원근법으로 풍경화를 그리면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뷰가 만들어집니다. 이것을 볼 때 사람들은 쾌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 쾌한 느낌은 내가 풍경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과 연결됩니다. 소유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놀랍거나 숭고하다고 느끼는데, 소유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아름답다고 느낀다고 합니다. 자연을 소유한다는 감각이 없었던 중세에는 풍경화라고 불릴 만한 화풍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풍경화가 그려진 것은 지주들이 자신이 소유한 땅을 바라보기 위한 그림을 요청하면서부터입니다. 풍경을 소유할 수 있다는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풍경화를 그릴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풍경을 소유한다는 감각이 없었던 동양의 산수화는 시선들이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인간의 시선으로 산과 들과 바다를 움직이면서 자연을 보게끔 그려져 있습니다. 평면적으로 무질서하게 배열된 듯한 동양 산수화를 보면서, 저는 그림 그리는 기술이 부족한,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그림이라고 평가하곤 했었습니다. 하나의 시선으로 입체감있게 그려진 그림, 현실을 좀 더 이상적으로 보이게 그린 그림이 더 안정감이 있고 좋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원근법으로 그려지던 풍경화가 인상주의에 이르면 그 구도와 시점이 전혀 다르게 변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기법만의 문제가 아니라 담론의 배치와 물적 토대가 변했음을 의미합니다. 인상주의 구도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물적 토대는 기차였습니다. 기차는 시공간을 표준화시킵니다. 산을 가든 평지를 가든 어디를 가나 똑같은 거리로 만들어 버리지요. 레일 위를 달리면 우리가 어떤 길을 가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길을 가느냐, 뭘 타고 가느냐에 따라서 신체가 느끼는 방식이 다른데, 기차는 신체성을 탈각시켜 버립니다. 우리는 먼 거리에 있던 것이 점점 가까워지는 깊이감을 느끼며 걷습니다. 그런데 기차를 타면 열차 밖 풍경을 파노라마 시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공간의 깊이감이 사라지고 같은 거리에 있는 풍경들이 기차의 속도대로 스쳐 지나갑니다. 이처럼 기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길을 걸을 때와는 전혀 다른 지각장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런 시대적 조건 속에서 인상주의 그림은 소실점이 사라진,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평범한 풍경을 그렸습니다. 미술사조에서 ‘주의’라고 하면 천재 화가가 기법을 개발해서 새로운 화풍을 창시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작가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 것은 물적 토대와 함께 지각방식이 변함에 따라 그런 방식으로 세계를 보고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어떤 기술로 이미지를 만드냐에 따라 지각 방식이 달라집니다. 카메라로 찍는 풍경과 휴대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찍을 수 있는 풍경은 다를 겁니다. 누가 그 촬영 기술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즉 누가 어떤 비율과 어떤 시선으로 세계를 절단하고 포착하느냐에 따라 세계를 구현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본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아닌 프레임으로 절단된 세계를 보는 것입니다. 이 프레임 안에는 무수히 많은 관계망(문화적 맥락, 언어적 기호, 문화적/정치적 시대 조건..)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외부대상을 있는 그대로 모방한 순수한 이미지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미지를 본다는 행위는 복합적인 관계의 배치를 읽어내고 해석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정치적인 관점으로 독해하고 있는 벤야민과 존 버거의 책에 이어서 다음 주부터는 3주에 걸쳐서 이미지의 기원과 역사와 관련된 책을 읽겠습니다. 역사적 맥락에서는 이미지에 대해서 어떤 질문들을 나누게 될지 기대가 되네요! <이미지의 삶과 죽음>, 1부 읽고 공통과제를 써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영민 쌤이 준비해주시기로 했습니다.
전체 3

  • 2019-05-27 18:49
    신의 시점을 취하는 것이 소유에 대한 감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우리에게 쾌감을 선사해주는 아름다움은 어떻게 양식화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 2019-05-29 12:08
      신의 시점과 소유의 감각도 새로웠지만, 풍경화가 그려지게 된 기원이 지주들의 욕망으로부터였다니! 오! 재밌네요 ㅎㅎ

  • 2019-05-29 12:04
    물적 토대와 지각방식의 변화가 세계를 다르게 볼 수 있게 한다면, 자신의 삶이 펼쳐지는 현장의 배치를 바꾸면 다른 세계가 펼쳐지겠군요~~^^
    즐겁게 공부하는 혜림쌤의 화안한 얼굴이 글속에서 보입니다.
    이 근사한 공부를 하는 공간의 배치 속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니! 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