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NY

절차탁마 NY 8주차 후기

작성자
소소 (최난희)
작성일
2021-09-30 11:22
조회
93
우리는 심연을 품고 삽니다. 이는 한 치 앞을 모르는 삶을 우리가 건너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추석 연휴에 도반들에게 일어난 일들도 그렇고요. 피아노에 부딪쳐 코가 깨질 수도 있고, 컵이 발등에 떨어져 기부스를 할 수도 있는 일들 말이지요. 개인 신상 정보를 무책임하게 흘리는 일인가요? 결례인지 몰라 주저되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개인의 잘못과 실수가 원인이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그 개인의 몫이라는 상식적인 견해를 니체를 배우면서 우리는 훌쩍 뛰어넘었기에, 도반이 겪고 있는 일들이 다만 남의 일이 아니게 다가옵니다. 이건 ‘타산지석’ 같은 교훈의 수준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나와 면한 외부, 즉 타자의 삶에 대한 관심의 차원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라 이해해주셨으면 해요.

후기는 세미나를 마치고 즉시 쓰는 것이 좋다는 그간의 경험적 교훈을 새기면서도 어찌하다 균형을 잃고 말았습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항간에서는 제 나이 오십대 중후반 쯤 되면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치러야 할 일들이 많은 나이라고들 하죠. 살아온 세월만큼 세상에 끼쳐놓은 흔적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걸 수습하며 살다 보면 정말 조용히 앉아 책을 읽는다는 게 숨가쁘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독서가 취미’인 사람들은 뭣하러 ‘숨가쁨’을 느끼며 그러냐고 할 테지만, 제게는 정신없이 그 흐름에 휩쓸려가는 것이 거의 공포로 다가오니까요. 저는 공부가 스스로 부과한 ‘사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주 세미나에서 우리가 나눈 주제도 인간적인~2장의 “어떠한 새로운 사슬도 느끼지 않는 것”(228)에 대한 니체의 통찰이었습니다.

니체는 의존과 독립에 대한 상식적인 견해에 일침을 놓습니다. 사람들은 자유나 독립을 뭔가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의존한다는 것에 대한 이미지는 뭔가 결여와 관계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신가요? 독립은 ‘당당한 개인의 빛나는 성취’ 같은 이미지와 연결되고 말이죠. 의존한다는 것은 내가 부족해서 남에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것 내지는 굽히는 것 따위로 여겨지지는 않는지요. 자본주의 사회는 의존을 혐오하는 것 같습니다. ‘당당히 독립한 우뚝 선 개인’을 선호하는데, 문제는 돈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니체를 배우면서 가장 먼저 깨지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 아닌가 싶어요. 주체의 자유의지로 삶을 개척해나가고 그 삶에 의미와 무의미를 수놓을 수 있는 것을 주체의 권리와 의무라고 생각하는 진부한 상식 말입니다. 조금만 숙고해보면 삶은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데, 우리는 애써 그 삶에 대한 통제권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고 자부하죠. 그런 관점을 니체는 “인간이 얼마나 교만하고 지배욕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오류 추리”라고 합니다.

우리는 니체가 말한 ‘사슬’이라는 것이 뭘 의미하는가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정리하자면 사슬이란 한마디로 ‘연관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상식인들은 ‘그 어떤 것에 의존하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한, 자신을 독립적이라고 간주’합니다. 우리가 무수한 힘들의 연관관계 속에서 살려지는 복합체가 아니라 자신의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단일한 주체라고 여기는 무지 속에서 나는 자유롭다는 생각이 싹튼다는 것이죠. 니체는 ‘인간이 일상적으로 독립해서 살고 있고, 만약 그가 예외적으로 그 독립성을 잃게 되면 그 반대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전제를 비웃습니다. 루쉰을 읽으면서 우리가 확인했듯 인간은 철방에 갇혀있으면서도 자기가 철방에 갇혔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자유니 뭐니 헛소리를 하는 존재라는 것이죠. 니체의 ‘위대한 자기 경멸’이란 바로 이 지점, 인간의 조건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형이상학은 인간이 자유를 완벽히 구비하고 있고 그 자유를 잃었을 때 그 원인을 파악할 수 있는 이성을 지녔고 확실한 인식에 의해 빼앗긴 자유를 쟁취할 수 있다는 논리로 작동합니다. 니체는 이게 헛소리라는 겁니다. 놀라운 전도죠. 반대로 인간은 항상 여러 가지 구속을 받으며 살고 있지만, 오랜 습관으로 인해 사슬의 무게를 더이상 느끼지 않을 때에만 자신을 자유롭다고 간주한다!!” 이런 사유의 대전환은 우리에게 많은 실천적 지점들을 사유하게 합니다. 저는 니체를 공부한 효과를 이 지점에서 거듭 발견합니다. 내가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사슬의 무게가 내 삶의 어느 지점이었는가. 윤리를,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를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니체는 거듭 우리를 압박하죠. 여전히 사슬의 무게를 무게로 의식하지 못한 채 작동되는 오늘의 삶이지만 ‘새로운 사슬’을 기꺼이 영접함으로서 사슬의 무게를 느끼는 만큼이 바로 자유라는 것. 참 놀랍고도 겸허하게 하는 통찰입니다.

이어 소세키의 <마음>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이 <마음>이란 텍스트는 다층적인 독해를 가능케한다는 중론이었어요. 선생님의 자살을 어떻게 봐야하는가를 둘러싸고 여러 선생님들이 의견을 내놓으셨죠. 약자의 반응적 힘의지가 산출한 행위로 봐야하는가, 아니면 선생님의 내면 세계의 투쟁의 결과로 봐야하는가 즉 적극적인 힘의지가 산출한 행위로 봐야하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선생도 말했다시피, 선생이 간 길과 K의 길이 묘하게 겹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K를 금욕적 이상주의 길로 나아가게 한 조건들이 뭘까요? 그의 출신 배경과 그의 기질이 그런 길로 나아가게 하는데 불을 지피는 장작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기존의 바탕 위에 새롭게 만들어지는 ‘사슬’이었던 친구인 ‘선생님’과 아가씨도 화력 쎈 장작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인 선생님이 ‘자꾸만 인간답다는 말을 사용’하면서 K를 압박했을 때 K는 선생이 ‘인간답다는 말 속에 자신의 약점을 숨기고 있다’(217쪽)면서 대항합니다. 친구였지만 둘은 서로를 만들어가는 적대관계였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가씨의 말은 드러나지 않지만 아가씨는 K나 선생에게 공통적으로 삶의 불가해함으로 다가옵니다. 선생은 K를 상대로 ‘인간적으로는 졌으나 책략으로 이긴’ 결과 아가씨를 아내로 얻었으나 그 불가해함까지 긍정할 수는 없었죠. K와 선생은 자의식의 유리문 속에서 질식할 만큼 투쟁했다는 점에선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반응적이라는 것과 적극적이라는 것을 단순히 대립항에 놓고 볼 수 있을까 싶네요. 우리는 자의식의 유리문을 깨지 못하는 한 누구나 자신의 삶의 조건 속에서 누구나 반응적일 수밖에 없고,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간다는 점에선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 하나, <마음>은 ‘현실’에 대한 우리의 상식에 균열을 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한 하나의 ‘현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위기의 현실, 코로나 정국이라는 현실..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 말이죠. 그런데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런,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엄연한 현실이라는 게 존재하는가, 라는 의문이 들더군요. 예컨대, 상식적인 관점에서 화자인 ‘나’에게 아버지의 죽음이 훨씬 현실적인 문제일 것 같지만 ‘나의 마음’의 세계에서는 오로지 자기만 아는 세계인 선생의 죽음이 훨씬 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의문이 꼬리를 물고 더 나아간 느낌은 과연 나에게 선생은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일까, 싶은 심연과 맞닥뜨리게 되더군요. 우리는 자기가 지은 허구의 세계를 실제라 착각하며 사는 건 아닐까. 이 소설이 나의 관점에서 편집된 서사라고 봤을 때 총 3부로 이뤄진 이야기는 어딘가 매끄럽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아무리 세세한 펙트로 연결하려고 해도 이미 그 연결성 자체가 부단히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삶 자체가 하나의 허구라는 것을 비유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어 읽을 <명암>에서 소세키의 세계를 탐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구, 이쯤에서 마무리를 해야할듯 하네요. 주저리주저리..길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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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30 18:25
    <마음>의 '나'에게 선생님은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일까 하는 섬짓한 물음까지 드셨다는 대목이, 뭔가 띵 하게 만드네요. 마음에 떠오르는 것들 말고 따로 현실이랄게 있을지, 그렇다면 현실은 마음에 일어난 잔상 그 이상이 아닌 것 아닌지, 그 잔상은 어떻게 일어나는지 질문들이 이어지네요. 유리문 밖으로는 나갈 수 없지만 그 안으로 계속 뭔가가 비춰들어오는 일이 멈추지 않는 것으로서의 마음. 결코 섞일 수 없지만, 분리되어 떨어져 있을 수도 없는 것이 마음들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살짝 덜거덕거리며 읽었던 <마음>이지만 왠지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습니다. 후기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