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NY

절탁NY 3학기 9주차 후기

작성자
루이
작성일
2021-10-07 12:54
조회
150
마음속 머무르는 생각들이나, 그 생각을 툭 내뱉는 대화에 자주 ‘때문에’가 있습니다. 주로 특정 인물들을 대상으로 누구누구 때문에나, 어쩔 수 없이 주어져 버렸다 여기는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정도이지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하루를 살펴보았더니 얼마나 빈번하게 이건 누구 때문에, 정해져서 내려오는 문화 때문에, 주변 또는 조직의 특성 때문이라는 조건을 만들어, 자신보다 외부를 원인으로 단정 지어버리는지 보고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채운샘께서 “도둑이 있어 경찰이 생겨났을까요, 경찰이 있어 도둑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으로 니체의 ‘균형의 원리(22, 239쪽)’ 부분을 강의해 주셨는데요. 사회의 기원을 보면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집단적인 욕망이 있고, 니체는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공동사회의 내부에서는 위반 행위, 즉 균형의 원리를 파괴하는 행위에는 수치와 형벌이 가해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균형 속에 안전하게 자신을 두기 위해, 도둑 또는 경찰 때문에의 방식으로 일상의 상황들도 해석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수치와 형벌이 없는 곳에 자신을 세우려고 애매한 중립, 모난 의견이 없는 듯 행동하며 나는 괜찮은 상황에 있다는 불안한 안도감을, 안전한 균형을 좇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다운 누구로 자신을 포장해 사회 속에서 균형 잡힌, 꽤 합리적인 사람이라 안심하며 사는 거지요. 그리고 다른 이가 그 범주 밖의 행동을 하는 것을 발견하면, 공정, 평등, 합리를 내세워 우리는 집단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어떤 사람이나 어떤 사건을 심판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으로 합심한 일시적인 패거리도 생기곤 하고요.

강의 전 점심 산책에서 순이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최근 일어난 제 마음을 납덩이같이 무겁게 하는 사건이나, 필연적으로 또는 외부로부터 주어져 힘들다 여기는 상황들도 주변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그렇게 되게 한 것이라는 생각이 일었는데 강의 와도 연결되었습니다. 도둑이 있어 경찰이 생긴 게 아니라, 경찰이 생기면서 도둑이라는 존재 또한 만들어졌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사회에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도 그랬어야만 했던 게 아니라는 거죠. 어떤 균형 속에 있으려고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순간순간 말하고 행동 할 때도 사회에서 포용된 방식의 매커니즘을 작동시키는 데 지나지 않는 듯하고요.

자연사는 자연의 자살이다

오전 저희 조에서 ‘합리적인 죽음에 대하여(185, 338쪽)’ 부분을 이야기 나눴는데, 민호샘 조에서도 여기에 질문을 주셔서 반가웠습니다. 수업에서 만나는 니체의 사유들이 지금의 일상의 면면에서 보면 생경하게 다가오는 경우가 빈번하지만, ‘자연사는 자연의 자살’이라는 그의 견해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자연을 비이성적인 것, 미지의 것, 인간이 컨트롤할 수 없는 저 너머의 거대한 것으로 보고, 자연사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으로 생각했었거든요.

수업에서 선생님들과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곤 하지만, 죽음의 실체는 어차피 끝이므로 알고 싶지 않은 것,  또는 너무 깊게 알아서는 안 되는 것으로 치부하고 잠시 미뤄 놓는 주제 중 하나입니다. 언제든 올 수 있지만, 한번 오고 나면 끝. 종료. 마감. 잠이 들 때, 운전하다가, 갑작스러운 흔들림을 느낄 때, 핑 돌거나 통증이 있을 때 뿐 아니라, 아무런 사건 없이 길을 걷다가도 영화에서처럼 하늘에서 무엇인가 쿵 떨어지거나, 갑자기 건물이 무너져 죽음에 이르지 않을까. 순간순간 죽음이 올 수 있다고 상상하지만 거기까지죠. 두려운 것, 종점, 끝.

근대에서 우리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런 것들을 눈 바깥으로 치워버렸다고. 그래서 그런 영역들과 관련된 지혜를 상실했고,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비자발적이고 비이성적인 죽음은 나쁜 거야라고 습관적으로 생각하는 거라 하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런 것들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의도적이지는 않았지만 모른다는 것도 당연하다 받아들이면서요.

명암, 쓰다와 오노부

고양이 때 보다, 지난 연휴 마음과 명암을 읽으며 소세키에 빠졌습니다. 특히 명암에서 쓰다와 오노부의 마음을 섬세하게, 그리고 쓰인 문장으로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부분이 제 눈에 들어왔고요. 지난 8월 강제적으로 자가격리를 하게 되면서, 오랫동안 알아 온 친구와 처음으로 2주 내내 같은 공간에서 모든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그때 잠깐잠깐 스쳤던 생각들과 쓰다나 오노부의 마음이 만나는 부분이 있어 지금 저에게는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인영샘이 정리해 주신 해설 부분에서, 다른 소세키의 작품과는 다르게 《명암》은 여러 화자의 시점으로 서술되었다고 합니다. 되새겨 보니 마음은 여러 화자의 시점을 보여주는 영화같이 읽혔던 것 같습니다. 저는 쓰다와 오노부의 속마음을 표현한 부분들이 들어왔지만, 고바야시, 오누이, 가족에 대해, 여러 선생님이 가져오신 다양한 관점들을 보며 근대인의 사랑, 니체의 자유연애 비판에 관해서도 이야기 나눴습니다.

에세이도, 수업 준비도 잘 못하고 토요일 규문에 갈 땐, 스스로 참으로 뻔뻔하다 느끼는데요. 그래도 따듯하게 반겨주시는 선생님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벌써 3학기가 끝나가네요.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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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07 19:00
    도둑이 먼저냐 경찰이 먼저냐는 질문을 듣고 저는 엉뚱하게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를 떠올렸는데요, 이건 그런 공상이 아니라 우리의 번뇌를 낳는 것은 선악의 가치 격자임을 지적하신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후기를 읽으면서 저도그 손쉽고도 매력적인 때문에의 습관에서 언제나 벗어날 것인가 생각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