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NY

절탁NY 4학기 첫째주(10.23) 공지

작성자
민호
작성일
2021-10-13 12:31
조회
123
 

 

시간이 흘러흘러 어느새 4학기에 접어드네요. 날도 쌀쌀해지고 신축년도 많이 지났습니다. 루쉰&소세키와 함께 보낸 3학기의 마지막 시간은 길진숙 선생님의 특강으로 시작했습니다. 소세키의 시대와 성장 환경과 문제의식을 배웠고, 그 문제의식에 대한 실험이 어떻게 각 작품에서마다 재미나고 집요하게 실천되었는지 배웠습니다. 강의 후기는 인영샘이 맡아주셨으니 저는 기억에 남는 포인트 몇 가지만 짧게 적어보겠습니다.

탐정. 소세키를 규정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탐정이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저희가 토론 때 많이 이야기했던 ‘고양이’라는 장치가 잘 보여주듯, 소세키의 시선은 솜 같은 고양이의 발걸음으로 이 집 저 집에 숨어들고, 이 남자 저 여자의 마음에 파고 들어갑니다. 그가 정탐하는 것은 자유롭고 평등해진 개인들이, 바로 그처럼 자유롭고 평등한 겉모습 아래에 감추어두었던 남도 모르고 자기도 모르는 물살 같은 ‘마음’입니다. 인간은 문명 아래서 옷과 교양으로 자신을 가리며 뽐내지만 그 안에는 찌질할 정도로 사소한 질투와 비교, 가식과 기만이 아직 바깥 공기를 쐬지 않은 채 일고 지며 출렁이고 있습니다. <고양이>에서야 겉으로 보이는 자잘한 모순만 유쾌하게 소개되는 정도지만, <명암>에 이르러서는 남자고 여자고 쉼 없이 오르내리며 동요하는 뚱뚱한 내면이 질릴 정도로 철저하게 묘사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미시적으로 탐구하지 않을 뿐이지 그것이 실제로 우리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 같습니다. 별 것 아닌데 괜히 힘 쓰고, 주도권을 잡으려고 하고. 적어도 전 그렇습니다. 그래서 힘겨웠는지도 모르죠. 정탐을 당하는 일은 진땀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소세키는 그 일을 자기 자신에게 시도하라고 권하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 탐정과 달리 이런 정탐이 성공하는 일은 없습니다. 마음 탐구에는 성공이 없습니다. 쓰다가 어떤 사람인지 그 가정환경부터 기질까지 다 따져보고 행동거지를 묘사한다 해도 바로 다음 순간 그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일지 모릅니다.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그는 매번 다른 얼굴 다른 기분에 놓입니다. 동일하다고 생각되는 우리 자신은 지금 접촉하고 있는 힘들에 따라 바뀌고 잊어버리고 기억도 다르게 해석됩니다. 물론 모든 것이 조건 결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그냥 혼돈이겠지요. 이전에 형성해온 패턴이 관성처럼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긴 해도 그것이 불변의 본질인 것은 아닙니다. 이전 상태에서 넘겨져 온 것은 여기서 이곳의 힘들과 섞여서 또 다른 결을 띱니다. 그렇기에 탐사에는 끝이 없습니다. 이것이 소세키 소설의 특징입니다.

길진숙 선생님은 ‘자기본위’라는 소세키의 중요한 개념을 말씀해주시면서, 그가 서양의 원근법적 주체를 버렸다고 합니다. 원근법이란 사물들을 멀고 가까운 거리에 따라 다른 크기로 묘사하는 방법으로, 저희가 보통 리얼하다고 생각하는 표현법입니다. 그러나 소세키는 질문하죠. 원근법은 정말 리얼한가? 리얼하다면 그 풍경을 바라보는 오직 하나의 시점, 즉 주체에게만 그렇습니다. 그 외에 수많은 시점들과 대상들에게는 부당하기 그지없는 편집이지요. 그보다는 오히려 한 폭의 그림 안에 사물들이 거리가 아니라 중요도에 따라 저마다의 크기로 그려진 동양화가 더 리얼할 것입니다. 소세키는 원근법을 버리고 고정된 주체를 버립니다. 그의 소설에는 ‘상수’가 없습니다. 주인공 자신도 자신을 모릅니다. “원인이 너무 복잡해서 도무지 짐작이 안 되는” 마음이 우리의 아이덴터티입니다. 다른 아이덴터티는 없습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소세키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나쓰메 집안과 시오바라 집안을 오가며 자라다가 성인이 되어서야 호적을 옮기고 또 양육비를 지불해야 했던 사정, 한학을 깊이 공부했지만 영문학을 보편문학이라고 말하는 세계에서 서구 문명을 목도해야 했던 영국 유학 생활 등. 친부모와 양부모, 전통과 서구 사이에서 이중적인 구속을 오갔던 소세키에게 정체성이라는 관념은 실존적으로 질문되어야 할 것이었습니다.

근대의 기원에서 인간의 내면을 발굴하는 작가. 길샘은 소세키를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소세키의 시대이건 지금이건, 우리는 몸부림과 안간힘을 계속하며 살아갑니다. 자유로운데 그 자유로움 때문에 불안하지요. 겉은 멀쩡해도 속은 엉망이지요. 사업가나 도락가나 고등유민이나 노동자나 비슷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죽음이겠지만, 죽음은 좀 두렵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꽁꽁 포장되고 외면되는 우리 마음을 찬찬히 그러나 간단없이, 봐주는 것 없이 그려보고 탐구해보는 일입니다. 그럴 때 적어도 우리가 내세워놓은 표상과 자의식이 가져다줄 괴리에 번뇌를 겪는 일은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나 두루뭉술해서는 소용없습니다. 소세키처럼 진솔하고 치밀해야하지요. 낱낱이 자신을 들여답는 자기 분석의 시도. 우리 안에 일어나는 미시적인 충동들, 파시즘적이고 괴물적인 힘들, 노예적이고 낙타적인 감정들, 그리고 또 접혀있는 자비심. 힘들의 이런 선을 무시하고 국가나 근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공허할 뿐이죠.

 

오후 토론에서는 두 가지가 재미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경청입니다. 정확히는 ‘영향받을 수 있는 능력’인데요. 니체는 사람들이 대화를 이용할 줄 모른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체로 자신이 말하고 싶고 대답하고 싶은 것에 훨씬 많은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찔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책도 이런 방식으로 읽고 어쩌면 생각도 그렇게 하는 것 같습니다. 즉각적으로, 자동적으로, 하던 대로 반응하는 방식이죠. 그러나 “참다운 경청자는 잠정적으로 대답하며 정중함의 일부를 보여줌으로써 무언가를 말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는 말 자체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그는 잠정적으로 대답하고, 자동적인 반응들을 잠정적으로 남겨둡니다. 그리고는 “상대방이 표현했던 것과 그 밖에 그가 표현했던 방법, 즉 말투와 몸짓의 양식을 포함한 모든 것”(373쪽)을 가져갑니다. 그는 텍스트를 그렇게 만납니다. 사람과 사물에게서 영향받기 위해 자신을 얼마만큼이나 중지시킬 수 있는가. 이것은 중요한 역량입니다.

두 번째는 피로와 평등입니다. “몇 시간 동안의 등산은 악한 사람도 성인도 상당히 비슷한 두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피로함은 평등과 우애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그리고 마지막에는 수면을 통해 자유가 추가로 주어진다.”(263절) 제가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나인데요. 무척 재미난 것도 그렇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아집니다. 우선 인간이 정신이나 영혼이 아니고 우선 신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천성이나 기질이 그 인간의 본성은 아닙니다. 악한 사람과 성인의 본성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매우 존경받고 있을 때와 조금 먹고 났을 때 가장 관대해진다.”(235절)는 재미난 말 그대로, 부처님도 매우 지치고 거칠어진 자에게 우선 음식을 먹이게 하고 설법을 하셨는데요. 이것을 보면 신체의 섭생 상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몇 가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우선 약간 절망감이 들죠. 결국 피로에 좌우되는 것이 인간인가, 이것이 인간의 한계인가? 그러나 그 반대로도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피로 속에서 우리 자신은 괴물이 될 수도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아닌 것은 아님을 이해하는 사람은 자신을 피로한 상태에 놓이도록 방치하지 않을 것입니다. 혹 그런 상태에 놓였다면 신중해지겠죠. 일상의 자극들과 접촉들을 간소화하거나 피하거나 조심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피로에도 그렇게 대할 것입니다. 즉 피로 및 섭생과의 관계를 어떻게 변형하느냐에 따라 자신은 성인과도 같은 마음 장을 닦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니체는 “자신의 주인이라는 기쁨을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작은 자제심을 반복하는 체조가 필수적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409쪽) 어쩐지 위안이 되면서도 긴장감을 불어넣는 말입니다. 용기를 주기도 하구요. 그럼 제가 두고두고 곱씹고 싶은 구절 하나를 남기며 3학기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높은 감각의 강함이 아니라, 지속되는 것이 인간을 만든다.”(<선악의 저편>, 72절)

 

*4학기 첫 시간 공지

-<즐거운 학문> 90쪽(20절—시가 반이에요!)까지 읽고 이야깃거리를 정리해옵니다.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에서 ‘오이디푸스 왕’(숲 출판사 기준 25~90쪽)을 읽고 이야깃거리를 정리해옵니다.

-4학기 에세이 ‘니체의 사유를 바탕으로 문학작품 해석하기’ 주제 및 프로포잘(개요 및 방향)을 준비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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