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절차탁마S 3학기 5주차 공지 '코나투스와 주체화'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1-08-20 13:57
조회
70
바로 다음 시간 공지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에티카》 4부 정리32(167쪽)까지, 《주체의 해석학》은 1월 27일 강의 전·후반부 읽어 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번 주에 서로에게 코멘트했던 것을 참고해서 각자 어떤 문제의식으로 스피노자와 어떻게 연결해서 쓸 것인지 정리해서 숙제방에 올려주세요. 우려했던 대로 지난 학기의 원고와 다음 학기의 원고를 함께 진행하게 됐네요. 안 쓰는 것보다는 다행일까요? 하하. 그럼 다음 주에 봬요~

이번 주에도 ‘윤리’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하게 됐습니다. 스피노자는 ‘본성에 따라서’ 혹은 ‘존재를 보존하는 것’으로, 푸코는 주체화의 문제로부터 윤리를 고민합니다. 이해한 것처럼 적었지만 이게 어떤 윤리적 문제를 함축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깜깜합니다. 공부할수록 점점 더 깜깜해지고 있습니다~ @_@

일단 이번에 저희가 《에티카》에서 논쟁이 됐던 지점은 4부 정리20의 주석이었습니다. 여기서 스피노자는 “그의 본성에 반하는 외부 원인들에 의해 제압되지 않는 한에서,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추구하는 것 또는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자살 충동 같은 것은 본성에 내재된 것이 아니라 외부 원인들에 의해 제압된 결과라는 것이죠. 하지만 같은 글에서 스피노자는 “더 큰 악을 피하기 위해 더 작은 악을 욕망”한다고도 말했습니다. 토론에서는 자살을 더 작은 악을 욕망한 결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습니다. 의견은 대략 ‘존재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과 차악으로서의 자살은 모순되지 않는다’고 보는 쪽과 ‘차악으로 선택한 자살도 외부 원인에 압도된 것’이라고 보는 쪽으로 나뉘었습니다.

이어지는 정리에서도 ‘본성’이란 키워드가 계속 나왔는데요. 본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보다는 스피노자가 어떤 맥락에서 본성을 얘기하고 있는지에 대해 주목했습니다. 스피노자는 일관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활동하는 것으로 본성을 말합니다. 본성과 본성이 합치하거나 대립하는지, 상이하거나 상반되는지 등등을 구분해야 하는 것도 본성이 계속 활동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본성을 역동적으로 이해해야 이후에 스피노자가 어떻게 덕(역량)을 얘기하는지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존재를 보존하려는 코나투스는 덕의 일차적이고 유일한 토대다.”(4부 정리22의 따름정리) 본성과 욕망, 덕 그리고 여기에 인식이 어떻게 관계되는지 좀 더 정리하면서 읽어야겠습니다.

《주체의 해석학》은 어떻게 읽어야 할지 감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푸코의 문제의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토론하면서 조금 감을 잡게 됐는데요. 푸코는 각각의 시대에서 자기 배려의 형식이 다르게 요청되고, 이에 상응해서 다른 주체가 등장하고 상이한 권력의 작동 방식을 보여주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 사이에 어떤 자기 배려가 더 나은지, 고대 로마의 우정 네크워크와 기독교의 사목 권력 중에 어떤 형태가 더 나은지를 비교하지 않습니다. 사실 첫 시간에 채운쌤께서 강의해주신 것도 푸코의 분석이 앎과 권력, 주체화가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것이었죠. 비판으로서의 철학은 예속적 주체화의 조건에 대한 분석과 다른 주체화의 실험을 함축한다는 게 이제야 조금씩 알 듯 말 듯 합니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까먹고, 아마 《주체의 해석학》을 끝까지 읽으면서도 계속 왔다갔다 할 것 같아요. ㅋㅋㅋ...

그런데 이런 질문은 계속 안고 가도 좋을 것 같아요. 푸코는 각 시대에서 행해지는 ‘자기 배려’를 분석했죠. 그리고 자기 배려를 그는 ‘자기란 무엇인가?’와 ‘배려란 무엇인가?’로 나눴습니다. 물론 이 질문은 주체를 선험적으로 규정하거나 그러한 주체를 보존할 무엇을 찾는 것과 다릅니다. 푸코가 여러 차례 밝힌 것처럼, ‘나’는 단일한 ‘나’가 아니라 관계의 효과일 뿐이죠. 단지 현재 내가 스스로를 배려한다고 하는 것이 ‘나’와 전혀 관계없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판단하고 실험할 수 있습니다. 가령,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우리에게 진리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대학의 논문처럼 학술적으로 무엇을 증명하거나 주장하는 식의 앎일까요? 혹은 청년으로서의 저는 저의 실존을 어떤 것들과의 관계에서 규정할 수 있을까요? 푸코의 문제제기를 더욱 배울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러려면 책을 꼼꼼히 정리해야 한다는 나름의 소박한 결론에 이르렀구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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