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절차탁마S 3학기 6주차 공지 '본성상 합치와 이성의 명령'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1-08-29 20:25
조회
56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겠네요! 줌으로는 언제 끼어들까 계속 타이밍을 재느라 하고 싶은 말을 많이 버렸는데, 이제는 마음 놓고 조금 더 끼어들겠습니다. ㅋㅋㅋ

다음 시간에는 《에티카》 4부 정리57(186쪽), 《주체의 해석학》 2월 3일 강의를 읽어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현정쌤께 부탁드릴게요!

《에티카》 4부로 접어들면서 한층 더 복잡한 윤리적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지난 시간에 ‘자살’에 대한 얘기도 그랬고, 생각해보면 1부 정의7에서 얘기한 자유의 문제(본성의 필연성을 따르는 것을 자유롭다고 한다)도 그렇죠. 이미 무엇이 본성의 필연성을 따르는 것인지 1부에서부터 제기됐었네요. 하지만 이미 여러 번 반복했듯이, 스피노자에게 본성은 선험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피노자가 ‘본성상의 합치’ 혹은 ‘본성 간의 대립’을 얘기할 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감을 잡기가 힘듭니다. 주어져 있는 본성이 없다면, 본성들이 서로 합치하거나 대립하는 일은 과연 어떻게 일어날까요?

일단 스피노자는 ‘본성상 합치’를 ‘역량에서 합치’라고 말하고, 정념상 합치와 구분합니다. 정념에 구속되어 있는 한에서는 언제든 조건이 바뀜에 따라 서로 상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4부 정리34를 통해 설명하죠. “가령 베드로는, 바울이 싫어하는 것과 유사한 것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바울을 슬프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아니면 베드로가 바울 역시 사랑하는 어떤 실재를 유일하게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아니면 다른 이유들로 인해 그렇게 될 수 있다.)” “이 두 사람이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은 이들의 본성이 합치하는 한에서, 곧 같은 것을 사랑하는 한에서가 아니라 서로 어긋나는 한에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연에 따라 독점적 소유물에 대한 정서가 형성되는 순간, 언제든지 대립할 수 있다는 것이죠. 나중에는 독점적으로 소유될 수 없는 '신의 지적 사랑'으로 가지만, 그건 좀 더 진도를 빼고 얘기해봐요!(《주체의 해석학》과 긴밀하게 연결이 될 것 같단 말이죠. 소크라테스가 그토록 스승을 자처한 이유도 이것과 연관이 있을 것 같고요...)

반면에 본성상 합치는 최소한 정념에 예속되지 않는 것, 곧 이성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이성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는 것은 필연적으로 본성상 합치를 요구합니다. 토론에서는 본성상 합치를 자신의 정서를 교정하여 한 집단 안에서 이성과 정서가 일치하는 ‘순간’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아니면 개별적 정서는 상반될 수 있어도 공동체를 구성하는 경향이 일치하는 것으로 볼지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이는 ‘운동과 정지의 비율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정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와도 연관이 됐는데요. ‘매 순간 일정한 비율을 구성한다’는 것과 ‘매 순간의 구성이 일정한 비율의 유지로 드러난다’는 것도 미묘하게 다릅니다. 저는 본성상 합치가 더 큰 역량(권리)을 구성하고 그 덕에 부분의 대립·불화를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래야 부분의 대립·불화가 집단을 해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역량을 키우는 운동이라는 스피노자의 독특한 정치론이 가능한 것 같아서요. 토론에서는 답을 내리기보다 각자의 문제의식 속에서 구체화시키기로 했습니다.

스피노자는 본성상의 합치를 얘기한 뒤에 이성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이성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는 또 다른 사람보다 더 유용한 실재는 없다고 따름정리를 도출합니다. 인간이 다른 사물들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도 인간보다 유용한 실재는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유용하다’는 정식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요. 본성적으로 이미 인간에게는 인간이 가장 유용하다고 할 만한 무엇이 있다는 건가 싶었는데, 아마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 스피노자에게는 애당초 인간 사회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뤘던 것 같습니다. 앞서서 4부 정리18의 주석에서 “말하거니와, 인간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 그 이상 바랄 게 없는 것은, 모두가 모든 점에서 합치하여 모든 정신과 신체가 마치 하나의 정신과 하나의 신체를 합성하듯 결합함으로써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모두 함께 자신들에게 공동으로 유익한 것을 찾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정신, 하나의 신체를 합성한 것 같은 사회를 고민하기 위해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유용하다’는 정식이 도출된 것이지 본성적으로 인간이 어떻다는 것을 얘기한 건 아니었습니다. 정치론을 공부한 뒤로 애매하기만 했던 부분들이 좀 더 명확하게 오는 것 같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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