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절차탁마S 3학기 8주차 공지 '나에게 유용한 철학'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1-09-12 20:24
조회
100
다음 시간이 벌써 8주차입니다. 3학기가 마무리되기까지 2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허... 왜 벌써 2주밖에 남지 않은 걸까요. 이상하네요. 이제 곧 4학기가 시작하고, 어느새 올해도 마무리되겠죠. 어영부영하다 이렇게 또 한 해가 흘러가네요. ㅎㅎ...

다음 시간에는 《에티카》 5부 서문(208쪽)까지, 《주체의 해석학》 2월 17일, 24일 강의 전·후반부를 읽어 오시면 됩니다. 《주체의 해석학》은 ‘주체가 진리를 소유한다’, ‘주체가 진리에 접근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를 중점에 놓고 읽으시면 됩니다. 여기에 더해서 각자 어떤 주제로 4학기를 준비할지도 대략 생각해주세요. 미리미리하면 좋으니까요. 간식은 정수쌤께 부탁드릴게요~

자세한 후기는 윤순쌤께 부탁드리고, 간단하게 느낌 정도만 남겨놓겠습니다.

새삼스럽지만, 철학의 목표는 ‘자기 마음의 평화’입니다. 이번에 《에티카》와 《주체의 해석학》에서 ‘자족감’이 공통되게 등장하니, 뭔가 새로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공부하는 이유는 번뇌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자족감’에 이르기 위해서 시대마다 요청되는 문제들, 개체에게 요구되는 수행이 조금씩 다릅니다. 고대 로마/헬레니즘 시대에 요청되었던 문제와 스피노자 시대에 요청되었던 문제가 조금씩 다르죠. 스피노자에게 ‘나’는 이미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정서를 주고받는 사회 구성원입니다. 따라서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사회적으로 작동하는 정서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죠. 고대 로마/헬레니즘 시대에서는 나의 정서를 교정하기 위해서 스승이나 벗 같은 타자들의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나 역시 다른 사람의 정서를 교정할 수 있는 스승이나 벗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죠. 스피노자의 정치와 고대 로마/헬레니즘의 ‘진실 말하기’. 그렇다면 지금 시대에서 ‘자족감’에 이르기 위해 어떤 문제들을 경유해야 할까요?

철학자를 배우는 것은 그처럼 세계를 보고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습니다. 가령, 푸코를 배우면 욕망·쾌락의 활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스피노자를 배우면 ‘기쁨으로 변용되는 마주침의 구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의 삶은 모방 불가능한 하나의 예술 작품이 돼야 하고, 지복(至福)을 소유한 자유인의 삶을 욕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이것들이 단순히 당위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 개체와 신체, 세계에 대한 독특한 이해가 필요합니다(잡설이지만, 이번에 《트러블과 함께하기》 세미나를 하면서 개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곧 윤리적 문제와 직결되더라고요). 어떤 번뇌를 넘어가기 위해 어떤 철학자를 배울 것인지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일단 지금 저에게 스피노자와 푸코는 철학하는 법을 익히는 데서 매우 유용한 스승들입니다. 스피노자를 통해 드물고 어렵지만 고귀한 길을 걷게 되었고, 푸코를 통해 철학-윤리를 고민하기 시작했거든요.

스스로 근거지를 뒀다고 생각한 동양 철학에 대해서는 나에게 어떤 점에서 유용했는지 요즘 다시 점검하고 있습니다. 회의한다기보다는, 푸코를 공부하면서 동양 철학을 새롭게 읽을 길이 많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토론 중에도 동양 철학을 푸코가 한 것처럼 정리한 게 없어서 아쉽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죠.(그러면 내년에 계보학적으로 동양 철학을 공부해 볼까요?ㅋㅋ) 그런데 사실 동양 철학을 공부하면 얻을 수 있는 독특한 유용함에 대해서는 그동안 별다른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체로 개인적으로 재밌다는 감상 수준에 그쳤던 것 같습니다. 그 이상 시대적으로 어떤 것들을 고민하게 해주는지, 어떤 문제를 던져주는지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자에게 매료된 지점은 무엇이고, 맹자와 장자를 계속해서 다시 읽고 싶다는 욕망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시대적으로 제기하지 않는 이상 ‘자기 마음의 평화’에 도달할 유용한 도구로 삼을 수는 없겠더라고요.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야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조금 감을 잡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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