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역사팀 2학기 4주차 후기

작성자
이현숙
작성일
2020-02-10 22:09
조회
80
20200206/ 소생-러시아 2학기 4주차 역사팀 후기/ 이현숙

 

                                                                                                            ‘레닌을 회상하다 

 

레닌은 제게 있어 아득한 이름입니다. 20대에 접어들어 이론적 토대와 사고체계가 미약한 상황에서 당시 사회 분위기에 따라 주어지는 대로 사회주의 관련 도서들을 기웃거렸지만 난독이었고, 과독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음을 고백해야겠습니다. 당시 마르크스와 레닌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제 삶에 배태되지 못했고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이렇다 할 만큼 떠올린 적이 없었고, 어쩌다 친구들을 만나 지난날을 추억하면서 잠깐씩 언급되는 정도였습니다. 이번 주 ‘소생-러시아’에서는 박노자의 『러시아 혁명사 강의』(1~3강, 박노자)와 레닌의 아내이자 동지였던 크룹스카야의 『레닌을 회상하며』(제1부, 1893~1907년)를 읽었습니다. 레닌 관련 책들을 읽고 토론하며 레닌을 소환했습니다. 두 저자 중 한 사람은 조선학은 전공하고 한국학을 가르치는 연구자의 시선으로, 또 한 사람은 동지로서 레닌을 만나 함께 노동자 운동을 전개하면서 경험한 것을 회상한 것입니다.

 

레닌은 혁명적 성향이 강했던 형의 죽음을 경험한 뒤 마르크스를 비롯해 러시아 인민주의 책들을 탐독하면서 혁명가로 거듭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것을 생각했고, 혁명 투쟁의 필요성을 자신의 문제로 이미 결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러시아 인민주의 혁명가들의 이상주의적 생활을 그린 니콜라이 체르니솁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읽고는 친구에게 “농사꾼이 밭갈이를 하듯이 이 소설이 나를 밭갈이했다. 이 소설이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사고의 각을 날카롭게 세웠고, 남달리 깨어 있는 정신을 길렀으며, 문구나 환상 같은 것에 한순간도 현혹되지 않고 진실을 직시하는 힘을 길러냈”습니다. 건화샘은 “레닌의 탁월한 현실감각은 혁명을 언제나 ‘살아있는 것’으로 감각해온 그의 혁명가적 본능에서 비롯되”었다고 했습니다. 레닌은 모든 문제에 공정하게 접근했으며, 시장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었고 대중의 이해관계와 연관시켰습니다. 노동자들과 함께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고 해설하고, 노동자들에게 작업과 노동조건에 관해 묻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삶과 사회 전체 구조가 어떤 관계인지를 보여주면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현존 질서를 바꿀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이론과 실천을 연결 짓는 데 주력했습니다.

 

레닌의 초기 사상의 골자 중 하나는 전위당론입니다. 당의 상층부에 직업적 혁명가가 있어야 하고 그 아래에 당의 명령에 복종하고 당을 위해 헌신하는 준직업적 혁명가들이 당원으로 있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레닌은 망명 중이던 1905년, 도덕적으로 결함 있는 사람까지 혁명에 이용해야 하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가끔 우리에게 몹쓸 짓을 하는 이들도 바로 그 몹쓸 짓을 하기에 필요하다”며 혁명 엘리트의 현실주의적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레닌은 자신의 저서 『국가와 혁명』에서 미래 사회의 이상으로서 노동자의 공동체 생활과 생산 과정에 대한 민주적 통제, 즉 노동자의 직접민주주의를 거론합니다. 노동자가 권력과 생산수단으로부터 소외되는 걸 극복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사민당 내에서 노선 갈등을 빚으면서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로 나뉩니다. 하지만 1917년 2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을 때 당에 투신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려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레닌의 전위당론은 다시금 우위를 점합니다. 민호샘은 레닌이 볼셰비키 내부는 물론 멘셰비키의 마르토프, 스승이었던 플레하노프, 선동 저작활동을 함께 했던 보그다노프 등과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것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며 “레닌은 왜 주변과 끝없이 불화(不和)하는” 것이냐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심지어 어느 당파도 갖지 않고 형편대로 운동을 도와주던 사람들마저 비판하고, 이 중에는 아예 돌아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대와 반목을 반복하는 트로츠키와 같은 사람도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리고는 “레닌이 거의 비인간적일 정도로 자신의 현재를 분석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레닌을 지켜본 아내이자 동지였던 크룹스카야의 기억을 따라가보겠습니다. 당시는 노동자 계급의 의식성과 조직성이 끊임없이 증대하던 시절이자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로 종결된, 목숨을 건 투쟁의 시절이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레닌은 해외에서 9년간 지내는 동안에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열심히, 조직적으로 일했고, 사소한 일들도 면밀히 들여다보았으며, 모든 것을 하나의 고리로 묶었고, 아무리 쓰디쓴 진실이라도 전과 마찬가지로 직시할 줄 알았”습니다. (중략) “갖은 압제와 착취를 증오했으며,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의, 노동자의 대의에 충실했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가슴으로 이해했으며, 그 대의에 자신의 모든 생활을 바쳤”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으며 달리 살 수는 없는 사람이었고, 열정적이고 격렬하게 기회주의와 싸웠으며, 서둘러 퇴각하려는 어떤 시도에도 반대하여 싸웠”습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그는 가까운 친구들이 운동을 퇴보시키는 것을 보면 그들과 절연했고, 대의를 위해 필요하다면 어제의 적에게 동지를 대하듯 진솔하게 다가설 줄 알았으며, 전에도 그랬듯이 모든 것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말하곤 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그는 자연을, 우거진 봄의 숲을, 산속 오솔길과 호수를, 대도시의 소음과 노동자 대중을 사랑했으며, 동지들과 운동을 사랑했고, 온갖 다면성을 띤 투쟁과 삶을 사랑했”습니다.

 

오후에는 영화 ‘10월 혁명’(1927년)을 보았습니다. 100여 년 전 제작된 무성영화여서 화질은 좋지 않았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의 현장 분위기를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니콜라이 포드보이스키를 비롯해 혁명에 참여했던 실제 인물들이 출연해 1917년 2월 혁명부터 레닌의 10월 혁명까지 사건과 혁명이 과정을 충실히 재현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실제 러시아 혁명은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광장에 군중이 집결하고 민중이 봉기하는 비장한 것이 아니었고, 매우 치밀하고 조용히 ‘정권이 교체’되었다고 합니다. 혁명 10주년을 기념하여 ‘선전용’으로 제작한 예술영화라는 것입니다. 영화가 끝난 뒤 호정샘은 “책을 읽을 때는 내용을 평면으로 이미지화하면서 봤는데 영화를 보니 마치 팝업북을 보듯 입체적인 느낌이 들었다”며 “채운샘이 말씀하신 몽타주 기법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영화를 같이 본 다른 사람들도 몽타주 기법이 무엇인지는 염두에 두지 않고 본 듯했습니다. 그러자 채운샘은 다음 러시아예술 강의 시간에 설명해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마치 한 편의 다큐를 보는 듯 사실감이 느껴졌습니다.

 

레닌은 지독하게 성실한 인간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끊임없이 읽고 쓰고 공부하고 연구하며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살았습니다. “일리치에게 혁명은 살아 있는 그 무엇이었고, 혁명을 직시하고 혁명의 온갖 다양한 양상 속에서 혁명을 포착하고 대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해할 능력이 있다는 점이 일리치의 힘이었”습니다. 자기의 소신과 의지를 굽히지 않고 살아간 그를 만나다 보니 그의 말마따나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고, ‘인간적인 삶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살 것인가’ 등을 자꾸 곱씹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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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11 21:28
    아득했던 레닌이 이번에 읽으면서 다시 살아나셨나 봅니다. 마지막에 던지신 '무엇을 할 것인가'란 질문은 저희 여행의 테마로 삼아도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