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2학기 5주차(2.13) 후기

작성자
호정
작성일
2020-02-14 14:23
조회
99
이번 시간에는 「레닌을 회상하며」 2부를 읽고 토론했습니다. 2부는 레닌의 두 번째 망명 시기로 1908년에서 1917년 10월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레닌의 부인인 나제주다 꼰스딴찌노브나 끄룹스까야가 레닌을 처음 만났던 때부터 10월 혁명이 있기 전까지를 회상하며 쓴 글입니다. 지난 시간에 읽은 1부는 레닌이 사망한 후에 몇 년 동안 쓴 것으로 주로 끄룹스까야의 기억에 의존한 것이고, 2부는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서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몇 년 동안 끄룹스까야는 레닌의 글들을 다시 읽으면서 과거와 현재를 촘촘한 고리로 엮는 법, 레닌 없이 레닌과 사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2부에서는 레닌이 어떤 것에 관심을 보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주로 다루고 있어서, 저는 1부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두 번째 해외 체류의 시기는 세계대전, 제2인터내셔널 붕괴 등 험난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에서 사회주의 투쟁을 시작해야 했던 때입니다. 끄룹스까야는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레닌이 어떻게 지도자로 자리를 잡고 성장해 나가며 자신의 힘을 얻어냈는지를 레닌의 관심사와 생활, 저술 활동 등을 통해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족입니다만, 끄룹스까야, 끄룹스까야 하고 자꾸 부르니 웬지 친근해지는 느낌이네요. 레닌의 부인이자 동지로서 기억할 만한 이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이름, 기억하고 싶은 이름이라 자꾸 호명하게 되네요. 이 글을 썼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억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컴컴하고 어두운 역사의 뒷골목에 폐기된 채로 버려져 있는 레닌을 제 앞에 이렇게 생생하게 살려냈잖아요. 제게 지면을 차지할 기회가 왔으므로, 마음껏 권리를 남용하여 마구 마구 불러대겠습니다. 끄룹스까야. 끄룹스까야. ㅎㅎ

러시아를 만나고 싶어

2부에서는 레닌이 만난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해외에 체류하는 동안 그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 일화들에서 그의 관심사나 삶의 태도 등을 엿볼 수 있었고, 레닌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과의 만남과 당시의 사건들, 그리고 그의 활동이 자연스럽게 잘 연결되어 있어서 책장이 술술 넘어갔는데요, 소생팀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더군요. 각자 삶의 경험과 지향이 다르고, 현재 심신의 상태에 따라 책을 읽는 경험도 다 달랐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재미없고 거리감이 느껴졌다는 의견도 꽤 있었습니다. 그중, ‘지금 내가 왜 이 책을 읽고 있지? 이걸 왜 읽어야 하는 거지?’ 라는 의문은 우리 모두에게 공통의 문제의식을 던져 주었습니다. 우리는 왜 러시아에 가는 걸까? 러시아 혁명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혁명이란 뭐지? 등등. 드디어 우리가 러시아와 접속 지점을 찾은 걸까요? 소생 프로그램 중반쯤에야 뒤늦게 든 문제의식이 제겐 반가운 신호처럼 느껴지네요. 이제야 러시아를 여행할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민족에 대하여

토론 과정에서 민족에 대한 레닌의 견해가 모순처럼 느껴졌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민족의 권리를 옹호하는지 반대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는데요, 민족자결주의를 찬성할 때는 민족을 옹호하는 것 같고, 쇼비니즘(국가가 지상 최고라고 광적으로 믿는 애국심)을 반대할 때는 민족의 권리를 반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거죠. 20세기 초 2차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은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조국을 방위하라며 나라별로 계층 간 단합을 강조했습니다. 레닌은 이를 사회쇼비니즘이라고 비난합니다.

레닌은 민족자결의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민주주의적 요구에 전반적으로 올바르게 접근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민주주의 없이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고 보았으며, 민족자결의 문제 역시 공화국, 민병대, 인민에 의한 관리의 선출, 여성의 평등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적 요구로 보았습니다.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이러한 민주주의적 요구들은 불완전하고 왜곡된 형태로 실현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초 위에서는 지속적인 평화를 확립할 수 없으므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를 없애고 유산계급에 의한 인민 대중의 착취와 민족적 억압을 철폐함으로써 사회주의는 전쟁의 원인도 제거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투쟁은 사회주의의 실현을 위한 투쟁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죠. 따라서 어느 민족도 다른 민족을 억압할 수 없는 ‘민족자결권’과 ‘쇼비니즘 반대’는 모두 사회주의 실현을 위한 민주주의적 요구라는 맥락에서 보았을 때 모순 없이 읽힐 수 있습니다. ‘민족’을 어떤 맥락 속에서 보느냐에 따라, 즉 독립적인 항으로 따로 뚝 떼서 볼지 ‘사회주의 실현’이라는 맥락 속에서 볼지에 따라 행동 지침이 달라집니다.

세인트 레닌? 중력의 인간

부인이 남편을 회상하며 쓴 글이므로 애정에 기반한 어느 정도의 미화는 감안하더라도, 레닌은 상당히 성실하고 현실적인 사람인 것 같습니다. 레닌과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는 한쪽 팔을 쳐들거나 망치를 든 혁명가의 모습입니다. 뭔가를 부수는 이미지, 선동하거나 투쟁하는. 또는 이론가의 모습입니다. 혁명가는 유연하지 않을 것 같고, 이론가는 현실과는 유리되어 있을 것 같은데, 책을 읽으면서 그런 이미지들이 깨져 나갑니다. 그는 러시아라는 현장을 떠나 해외에 머물면서도 편지나 간행물, 사람들을 통해 러시아의 소식을 계속 듣고, 자신의 의견을 다양한 방법으로 전달합니다. 네트워킹을 통해 러시아와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오랜 망명 생활은 사람을 지치게 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책에서도 망명생활의 고단함이 전달되는데, 독립운동 당시 연해주나 사할린 등에서 활동하던 우리의 독립운동가들도 잠시 떠올랐습니다. 한편에서는 감시당하고 도망 다니는 삶이 계속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함께 하는 동지들중 누군가는 스파이일지도 모른다며 의심하고 감시하는 생활, 이 상황이 언제쯤에나 끝날지 모르는 불안함, 정신의 건강함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레닌은 ‘이렇게 중차대한 시기에는 온갖 미묘한 사안들의 의미를 최대한 규정하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의 볼셰비키가 사태의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동지로서 의견을 교류하고 끝까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민주적 원칙을 견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망명생활에 함몰되지 않고 발 딛고 있는 곳을 현장으로 삼아 자신이 할 수 있는 뭔가를 했기 때문입니다.

레닌의 삶의 태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소생 프로그램이 작년에 비해 좀 심심하게 느껴진다는 의견과 그에 따른 원인 진단이 있었는데, 레닌의 삶의 태도에 감명을 받은 윤순샘이 한마디 했습니다. 주제의식이 담긴 책, 내 입맛에 맞는 책은 따로 있지 않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책을 성실하게 읽다보면 어딘가 한 구석은 재미있는 곳을 발견할 테고 거기서 또 가지를 치면서 확장되고 주제의식도 찾게 된다는 거지요. 지금 내게 주어진 것들을 탓하고 외면하기만 하고 바깥에서 파랑새를 찾는다면 계속 파랑새를 찾다 한 세월 다 보낸다는 겁니다.

다음 시간은 혁명 이후의 이야기인데, 또 어떤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촛불 이후의 우리 삶이 뭔가 크게 바뀐 듯 바뀌지 않은 느낌인데,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인의 삶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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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17 15:40
    '레닌 없이 레닌을 사는 법'이 '레닌 없이 혁명을 지속하는 것'과 연관되는 것 같아요. 끄룹스까야는 레닌을 보내고 어떻게 혁명을 사유했는지 궁금하네요. 좀 더 이야기를 써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